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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Aug 14. 2021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걱정됩니다

내 감정 돌보기를 할 줄 몰라 남부터 챙깁니다

저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까?


 이지경이 되었지만, 나는 글로 쓰는 것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내 고충이나 고민을 말하고 다니는 편은 아니다. 내 검푸른 감정이 상대에게 전이되는 게 싫어서.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고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만 내 속마음을 터놓는다. 사실 전부 다 터놓는다고도 할 수 없다. 내 얘길 들은 사람들은 또 어쩌다 내 글을 보고 충격을 받거나 놀라기도 하는 걸 보면 그렇다.


 글을 쓰면서도 가끔은 지인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지 말 걸,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더 충격적이고 깊은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을 때도 있는데 상처가 될까 봐. 나는 보통 나보다 남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좀 더 이기적이게 굴고, 내 멋대로 해도 된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지만 그냥 내 성격이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행위'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진료를 받으면서도 생각했다. 정신과 의사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데. 저 선생님은 레일 위에 얹혀 들어오는 자동차 부품을 검수하는 사람처럼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리고 오작동 난 부품 같은 사람을 살펴야겠지. 벽에 금이 가 터져버린 댐처럼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분노와 우울을 듣고 있는 게 얼마나 저 사람에게 짐스러울까.

 하지만 이내 의사 선생님의 스카프와 가방이 비싼 명품인걸 보고, "그래, 저 사람도 돈을 벌려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중인 거지." 싶었다.



너한테 기대는 사람들 참 많다



 내 주변에는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내게 고민 상담을 하거나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은 내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고, 간혹 내 상태와 비슷하기 때문에 나에게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나는 '우울증 계의 선배님'이다. 병원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극복 방법을 묻기도 한다. 그런 걸 내가 다 알았으면 나도 이렇게 안 살지, 대답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또 이어나간다.


 며칠 전,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언니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언니 개인적으로도 지난 몇 해간 힘든 일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가방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언니 집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언니는 문을 열자마자 나를 꼭 안고 울었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언니는 많이 취해있었고, 한걸음에 달려와 줘서 고맙다는 이야길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만취한 상태였으므로.. 그 같은 말만 반복하길래 침대에 눕혀 놓고 집을 나왔다.


 내 가족과 친한 친구들은 그런 우울한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찾는 게 걱정된다 했다.

 나도 제정신이 아닌데 어떻게 남의 이야길 그렇게 듣고 위로하며 사냐고, 네가 그걸 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닌데 괜찮냐고. 난 당연하게도 괜찮다.

 나를 찾아주는 게 내가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위안이 될 때도 있다.

 다만 어떤 때에는 너무 마음이 무거워서, 주지도 않은 남의 짐짝을 내가 빼앗아 내 배낭 위에 얹고 걷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즘은 그래서 이런 고민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볼 것을 추천하고 있다. 내가 짐을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짐에는 물리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형상이라도 보인다면 트렁크에 캐리어를 함께 들어 올리듯 싣고 도망쳐 줄 수 있겠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은 없다.


 



 최근 몇 번의 고초를 겪고 느낀 점이 있다.

 나는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며 나 스스로와 내 인생을 갉아먹을 만큼 그의 마음과 인생을 생각해 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자, 갑자기 새로 시작하게 되는 것 같아서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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