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ero Aug 07. 2021

처음 정신과에 갔던 날

정신과에 가 볼지 말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제발, 나랑 딱 한 번만 병원 가보자


 처음 정신과에 갔던 건 스무 살 때였다.

 내 발로 직접 간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인 M이 나에게 사정하듯 빌며 제발 병원 좀 같이 가보자고 내 손을 이끌고 일산의 한 정신과에 데려갔다.


 그즈음의 나는 항상 유서를 들고 다녔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바로 내 유서를 완성시킬 모든 준비물이 완성되어 있었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한참을 앉아 있기도 했고, 8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해 볼까 생각도 하고, 3호선  지하철 역사에서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며 선로 아래로 몸을 누가 밀어줬으면 하는 기분으로 노란  위에  있기도 했었다.


 섭식장애도 함께 겪고 있어서 며칠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매일 보는 M  위해 김밥이나  같은  사다 주기도 했지만 나는 먹는 족족  토해버렸다.


 정신과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도 뭔가 문제가 있는  알겠는데, 이걸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은 우울증이 맞습니다. 환자분,  챙겨 드세요.’라는 선고를 받고 나면 그때부터 진짜 아픈 사람 취급을 받게   같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한참을 앉아 있던 어느 , M 울면서 사정을 했다.

 그 바람에 나는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다.



학습지 또 하기 싫어



 정신과의 현관문을 열고 발을 내딛고 “초진이에요.”라고 말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도 내가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가며 느끼는 점은 - 초진 때 주는 두꺼운 학습지 같은 심리검사지가 정말 귀찮고 싫다.

 사는 것도 귀찮고 먹는 것도 귀찮은 나에게 어릴 적 매주 화요일까지 풀어야 했던 구몬이나 재능 학습지 같은 두꺼운 심리검사지를 채워 오라니.

 이미  질문을 되풀이하는 듯이 다시 묻는 수백 개의 객관식 문제와  문장을 보고  문장을 마음대로 채우라는 주관식 문제까지.


 이런 교재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나 같은 무기력한 인간에겐 이걸 푸는 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죽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여하튼 심리검사지를 들고 가야 하는 날 오전에 꾸역꾸역 검정 펜으로 대충 휘갈겨 체크하고 의사 선생님의 반응을 살핀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답을 한다. 우울증이 맞단다.

 그때부터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했고, 두어 달쯤 지나서 그냥 밥도 맛있게 느껴지고 기분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내 마음대로 진료 약속을 어기고 단약을 했다.


 단약은 환자 스스로의 판단으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어디가 아파서 항생제를 처방받게 되면  나은  같아도 받은 항생제는 끝까지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 - 보이지 않는 염증과 상처 멋대로  나았다고 판단하고  아프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했다.


 최근 1년 간 정신과를 또 다니면서 서너 군데 병원을 옮겼다.

 정신과 환자에게는 내 치료에 잘 맞는 의사와 적절한 약 처방이 필수다. 그래서 잘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한 병원만 계속 다녔다가는 큰 차도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단다.


 작년 첫 번째로 만났던 의사 선생님은 너무 AI 같았고, 두 번째 갔던 정신과는 동성의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나의 모든 사연을 털어놓기 어려웠다.

 그래서 또 찾고 찾아서 지금 왕십리의 한 병원에 다니고 있고, 예약이 어려운 이유가 이해될 정도로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그간의 학습지 되풀이에 지친 탓도 있고, 지금 꽤 만족하며 다니고 있어서 당분간은 옮길 필요도 없고, 내 마음대로 단약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했다.



다친 줄 몰랐을 때엔 아픈 줄 몰랐다


 간혹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 ‘나도 살 이유를 모르겠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털어놓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이런 감정은 처음엔 작은 생채기 같다.

 엄지손가락 주름 사이에  작은 생채기는 따끔거리고 불쾌한 기분을 준다. 그러다 내가  손가락 마디 사이의 주름을 보다 상처를 발견하고 나면  정신이  생채기에 쏠려 뭐만 해도  전보다  따끔거리는 기분이 든다.

 사실 연고만 바르면 낫는데, 알면서도 연고를 바르지 않으면 언젠가 아물지언정 그전까지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

 어떤 때에는 그 상처가 더 깊게 벌어져 피를 한 번 봐야만 아차, 싶기도 하고.


 그대로 두다 결국 병원에 갔을 때에 나는 파상풍 진단을 받고 더 오랜 시간과 돈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자존심 때문에, 아니면 이게 아픈 건지 아닌 건지 헷갈려서, 또 그게 아니면 본인이 굳이 병원에 가야 할 만큼 ‘비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정신과에 가는 게 꺼려진다면, 생각보다 문턱은 높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신, 아주 귀찮은 학습지를 해야 할 각오 정도는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다 보니 정우성 님께 위로 메시지를 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