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봐야 얼마나 아픈 줄 아니까요
귀 피어싱 하러 왔어요. 왼쪽 다섯 개요.
단짝 B의 귀는 늘 수많은 피어싱으로 빛났다. 이리저리 조합을 맞춰가며 '귀테리어'(귀 인테리어)를 하는 걸 보고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한편에 있었는데 너무 아플 것 같아 지레 겁을 먹고 참고 있었다.
신림에서 B를 만나 저녁으로 마라샹궈를 먹고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며 피어싱 샵에 들어갔다.
신림역 앞 피어싱 가게 문을 열고 카운터로 직진했다.
하고 싶었지만 사회적 시선이나 괜히 스스로 찔리는 마음에 참고 있었던 것들을 다 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고, 더 이상 고민과 걱정의 시간으로 내 젊음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왼쪽 귓불에 세 개, 이너컨츠 하나, 귓바퀴에 하나 할게요."
세 명의 점원들이 놀란 눈을 하며 묻는다.
"한 번에 다 하시게요?"
"네. 그냥 한 번에 아픈 거 다 해버리려고요."
피어싱을 고르고 막상 시술 자리에 앉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서 시술해주시는 선생님에게 많이 아프냐고 묻자 심호흡 크게 하라고 했다.
스읍, 후우-
숨을 크게 내쉴 때마다 '퍽, 퍽'하며 살이 뚫렸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막상 해 보니 별 거 아니네.' 싶었다.
선생님에게 안 아프게 빨리 뚫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고, B도 너무 예쁘다며 칭찬해 주었다.
"하나도 안 아프던데?"
말하자마자 귀가 조금씩 붓고 욱신거렸다.
"너 귀 지금 엄청 빨개."
"응, 나 지금 오른쪽 귀 안 들리는 기분이야."
이제 집에 가면 아빠, 엄마가 내 귀를 볼 텐데. 뭐라고 할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엄마는 내 귀를 보더니 잠깐 눈이 커졌지만 이내 "예쁘긴 예쁘다"했다.
피어싱은 자해와 비슷하다고 하던데. 내 몸에 고통을 주면서도 통쾌한 기분이 들어 예쁘게 자해한 거네? 싶어 거울을 계속 들여다봤다. 속이 다 시원했다.
트라거스에도 하나 더 뚫을 걸. 아니, 이 위쪽에다가도 더 뚫을 걸.
다음에 가면 두 개 다 뚫어 버릴까?
왼쪽으로 돌아누워 잘 수 없어 오른쪽으로 누워 자다가도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워 또 예쁜 피어싱 쇼핑을 하려 인터넷을 뒤적였다.
지나고 나니 다 별 거 아니더라
이것저것 도전도 많이 하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나에게도 언제나 두려움은 존재한다.
'이걸 하면 아프지 않을까?'
'내가 이 사람에게 말을 꺼내면 이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을까?'
'이렇게 행동하면 이 사회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이런저런 일들에 마음을 다치거나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속에 다 담아두고 살았다.
그러다 그 풍선이 부풀어 펑 소리를 내며 터지고 말았고, 온 가족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며칠 밤을 지새우며 나만 쳐다보게 되었다.
"나 지금 이렇게 말하고 커피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 나 하루를 살아도 내가 하고 싶은 거 참지 않고, 나를 위해 살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큼 행복했으면 좋겠고, 내가 행복한 만큼 상대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기도 어렵고, 그걸 숨기고 살다 결국 곪아 터질 즈음이면 어떤 것도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요 며칠 잠 못 이루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몇 시에 자도 새벽 네시쯤이면 눈이 떠져서 그때부터 책을 읽거나 인터넷 쇼핑이나 새로 시작할 운동을 찾아보고, 날이 밝아질 즈음엔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카페로 향했다.
뭘 해야 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하루가 너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타투 시술을 예약하려고 SNS에서 도안을 찾아보고 있었다.
"엄마, 나 여기 손가락 옆면에 타투할까?"
엄마가 "아니."하고 단호하게 말을 하길래 '역시, 우리 부모님 세대가 문신을 좋게 볼 리 없지.' 생각하던 찰나, 엄마가 말했다.
"그거 아프잖아. 이왕 아픈 김에 더 잘 보이는 데다 예쁜 거 해. 고통을 참았는데 잘 안 보이면 좀 억울하지 않나?"
반려 사유가 문신이 싫어서도 아니고 잘 안 보여서라니!
내가 이런 어른이 된 게 이상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