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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Aug 27. 2021

저더러 절필하래요

건강한 글쓰기 아닌 유해한 글쓰기 따로 있나!

글을 계속 쓰시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딱 두 달 되었다. 그 사이 감사하게도 구독자 수가 내 인스타그램 운동 계정보다 많이 늘었고, 어떤 날은 하루에 3만 뷰, 브런치 전체에 등록한 글은 도합 14만 5천 뷰를 기록했다.


 내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시작한 글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힘을 얻었다는 말을 남겨 주신 덕에 지금은 하루에 꼭 하나라도 쓰자!라는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처음에는 아이패드에 조악한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들기다 손목을 주무르다가를 반복하다가, 이제는 아예 맥북을 사 버렸다. 뭐든 장비가 있어야 기분이 나는 법이다.


 내가 글을 '발행'하면 달려와서 '좋아요'나 '댓글'을 예전부터 꾸준히 눌러 주시는 독자님들도 있다. 그분들의 아이디가 내 아이폰 알림 센터에 뜨는 걸 보면, "와! 오늘도 봐주셨구나." 하는 마음에 또 하루가 뿌듯해진다. 나를 아는 모두가 내 글쓰기를 응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작가가 되어 보겠다는 내 꿈을 밀어주겠다는 사람이 많다.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길 한참 듣다가 말했다.

 "처음에는 저도 응원했지요. 글을 쓰면 사람의 감정 정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글을 계속 쓰시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글 쓸 때 행복하고 즐겁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들리는 모든 활자들을 마음에 단단히 새겼다가 키보드 앞에서 토해낸다고 말했다. 그러니 이만한 창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되물었다.


 "일단, 쉬라고 했는데 Enero님 쉰다는 얘길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요. 자꾸 운동하시고, 글 쓰시고, 그림 그리시고. 도대체 언제 쉬세요? 사실 제가 보기에는요, 지금 이렇게 열심히 글 쓰시는 게 사는 원동력이 되는 건지 아니면 마지막 발악인지 잘 판단이 안 서서요."


 사실 나는 항상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다. 그래서 내가 우울증이란 걸 알고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변에 너만큼 밝고 열심히 사는 애가 없는데, 그런 애가 어떻게 우울증에 공황장애일 수 있냐고. 우습게도 나는 상담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웃는다.


 "남들은요,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엉엉 우세요. 근데 매일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니, 누가 알아주겠어요. Enero님, 정말 괜찮은 것 맞으세요?"


 사실 글을 그만 쓰라는 듯 들려서 한 귀로 흘려버리고 또 웃었다.

 "네, 저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글 쓰는 게 하루의 낙일 정도로 정말 즐거워요."

 "그러시다면 일단 계속해 보세요.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뵈어요."


 그냥 연애 소설만 쓴다고 할 걸 그랬나? 괜히 내 감정 털어놓는다고 해서 전염성 짙은 바이러스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여하튼,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절필할 생각이 없네요. 다음 달이면 제 필명이 인쇄 활자로 나오고, 이미 제 손목에는 필명 타투가 새겨져 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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