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 왜 거기 다니게 되었냐면1.

by 엔프피 직장인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아주 고리타분한 말이 있다.
본래 의미는 모든 노동은 가치가 있다는 뜻이지만, 요즘 시대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제는 어떤 일이 노블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잘 버느냐 못 버느냐로만 구분되니까.
그야말로 직업 자체에는 귀천을 따질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 거다.
돈이 된다면 뭐든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시대에 그냥 중간 정도 연봉을 받는 회사원으로 분류된다.




고시촌 5년


왜 어쩡쩡한 회사원이 되었냐면, 조금 변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나중에 망한 시험 이야기도 더 풀겠지만,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장래희망이 없었다.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했고, 친구들 따라 고시촌을 오가다 보니 어느새 5년이 흘러 있었다.


마지막 사법고시를 보기 전날쯤, 고시원에서 엄마랑 통화한 기억이 난다.

“엄마, 이거 대체 언제 끝나?”
나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이제 시험을 그만 보라고 했고, 나는 그날을 내 인생에서 정식으로 패배를 인정한 날로 새겼다.




고시낭인이 된 날


장렬하게 시험에 지고 고시원을 나온 나는, 말 그대로 고시낭인이었다.

그 시절에도 흔히들 갖고 있던 토익 점수조차 없었다.
이쯤 되면, 당연히 이렇게 예상할 것이다.

‘아, 이제 여기서 고군분투해서 실패를 극복하는구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고군분투도 안 했고, 실패를 극복하지도 못했다.




망조의 서막


학교에서는 계속 졸업하라고 난리를 쳤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없는 나이 든 졸업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채용해줄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할 일 없이 SNS를 서핑하던 중, 작은 인권단체에서 활동간사 구함이라는 게시글을 보았다.

그렇게 나는 180만 원 월급이 나오는, 책상 4개뿐인 퀴퀴한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고,
망조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프롤로그> 명문대 나와서 겨우 이러고 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