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타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처음 본 건
아마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마츠코는 평생 타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친 인물이었다.
웃지 않던 아버지를 웃기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애쓰던 소녀.
그 장면이, 영화를 본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사랑받으려 하면 할수록 불행해지는 여자, 마츠코.
나는 그를 보며, 어쩐지 나 자신을 보는 듯했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갈망했다.
우연히 예쁘게 쓴 글씨, 어쩌다 잘 그린 그림 한 장에
어른들이 칭찬을 건네면, 그 말이 너무나 달콤했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했다.
선생님들의 시선이 마치 마약 같았다.
그 관심이 끊어질까 봐 악착같이 공부했고,
잘하고 싶었다. 잘 보이고 싶었다.
아물지 않는 상처
나는 그저 학생의 본분에 충실했지만,
또래 친구들은 다른 종류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었다.
1반 남자아이가 2반 여자아이를 찾아오고,
빼빼로데이에 인기 많은 친구들 책상엔
수북이 빼빼로가 놓여 있었다.
나도 그런 애정이 궁금했다.
중학교 시절 나는 내 짝꿍이 좋았다.
밝고 쾌활한 아이.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들어가던 아이. 내 지우개를 주워주고, 과자를 나눠주던 아이.
그런 그가 내게 “공부 잘해서 부럽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물었다.
“야, 너 박경림 알아?”
“응? 잘 모르는데 왜?”
“너 박경림 닮았어. 얼굴이 네모야.”
그 말은 내 어린 마음을 세게 쳤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 외모를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
외모 컴플렉스
그때부터 나는 단발머리만 고집했다.
앞머리를 길러 얼굴을 가렸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몸은 정직했다.
먹은 만큼, 그대로 불어났다.
‘사랑받는 외모’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외모를 포기했다.
여드름까지 속절없이 피어났다.
놀림거리
고등학교 1학년 때,
짖궂은 친구들이 반에서 가장 작고 하얀 남자아이를 놀렸다.
나는 그게 안쓰러워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교하는 길이 같았다.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손을 잡았다.
그 아이의 손은 내 손보다 작았다.
그저 그뿐이었는데, 아이들은 우리를 놀렸다.
“사겨라, 사겨라.”
그 놀림이 싫지 않았다.
같이 놀림거리가 되는 게,
그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혐오스런 나의 사랑
그 아이는 어느 날 말했다.
“너 폭신폭신해서 좋아.”
뚱뚱한 걸 좋아한다니 신기했지만,
그 말이 조금은 고마웠다.
그런데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아이의 어머니였다.
“효정이니? 나는 재현이 엄마야.”
“네, 안녕하세요.”
“재현이가 네 얘기 많이 하더라.
고마운데… 재현이는 아직 어려서 말이야.
여자친구를 만나본 적도 없고, 뭐 보는 눈이 있고 그러지는 않아.
좋은 친구로만 지내줬으면 좋겠어. 효정이는 똑똑하니까 알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자보는 눈이 아직 없어서 나를 만난 거구나.’
그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네.”라고만 대답했다.
2학년이 되어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에게 작고 하얀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 여자아이도 전화를 받았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더 애썼다.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애쓰다 제풀에 지쳐버리는 연애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