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간다] 탈 땐 '비명' 내릴 땐 '한숨'…"9호선 지옥철 여전"
태풍이 오는 때엔 비바람이 가장 강한 곳에
불이 났을 때엔 피해가 가장 막심한 곳에
더울 땐 가장 더운 곳, 추울 땐 가장 추운 곳에
가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다.
과장과 연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영상기자는 그 현장들을 찾아 시청자들의 간접체험을 돕는다.
우리나라 지하철 중 가장 악명 높은 9호선 급행열차를 탔다.
물론,
가장 붐비는 시간, 가장 혼잡한 구간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칸.
첫 날엔 아침 06시 30분까지 회사로 출근해 장비를 챙긴 후 염창역으로 향했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각. 사람들도 아직은 많지 않았다.
오디오맨과 함께 승강장 높은 곳에 액션캠을 설치하고 미속촬영*을 시작했다.
우리의 취재계획은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출근 시간 급행 열차를 타고 고속터미널까지 가며
내부 스케치와 승객 인터뷰 등을 하는 것이었다.
슬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만하면 많구나 하며 스케치를 하는데 끊임없이 사람들이 더, 더, 더 내려왔다.
찍어놓은 장면이더라도 사람들이 더 몰려든 시간을 기해 다시 찍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다.
미속촬영*(Time Laspe) ; 간헐 촬영, 완속 촬영이라고도 한다. 미리 예정된 일정한 간격에 따라 한 번에 한 프레임씩 촬영함으로써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긴 지속시간을 건너뛰면서 일련의 진행 과정을 촬영하는 방법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 중에서도 확실히 계단 바로 앞 쪽에 사람들이 가장 몰렸다.
형광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각 문마다 균일하게 사람들이 설 수 있도록 안내했다.
플랫폼 스케치를 모두 마친 뒤 출근인파가 가장 정점에 이르는 열차를 타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사람들이 길게 줄서있는 곳을 찾아 나와 선배와 오디오맨도 지하철에 탑승..
하려 했으나 너무 많은 인파 탓에 오디오맨이 결국 탑승에 실패했다.
협소한 공간을 대비해 이 날 장비는
내가 핸디캠을, 취재기자와 오디오맨이 각각 액션캠을 하나씩 가지고 타기로 했는데
오디오맨의 탑승 실패로 열차 내부에서 쓸 카메라가 한 대 줄었다.
내부에서는 우리 모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일테니
나와 선배는 주변 승객 인터뷰를 위주로 하고
오디오맨이 긴 막대에 액션캠을 달아 들고 풀샷 위주의 그림을 확보할 작전이었는데
할애된 공간은 예상보다 더 비좁았고 내가 맡을 역할은 더 늘어난 상황이었다.
나중에 돌아와 녹화본을 보니 취재기자가 들고있던 액션캠도
없는거나 마찬가지 수준의 그림이었다.
손을 최대한 위로 뻗으니 지하철 천장에 손이 닿았다.
그 상태로 카메라에 달린 LCD모니터 각도를 낮춰 올려다보며 찍었다.
카메라 앵글과 방향을 달리하고 싶어도
쭉 뻗은 팔 끝에 달린 손목 외에는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없었다.
취재기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마주보지도 못하는 옆사람에게
속삭이듯 인터뷰를 진행했다.
눈높이에서 인터뷰를 찍으면 도저히 투샷이 안나오니 이 또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내려다 찍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지하철 내부는 워터파크의 파도풀이 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신나는 함성소리가 아닌 괴로운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것.
급행열차를 기다렸는데도 인파가 몰려 열차 내 파도풀로 다이빙하지 못한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날에는 노량진 역을 찾았다.
염창역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탑승한다는 곳이었다.
이 날도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과 장소를 기해
취재를 진행했다.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찾아가 미속촬영 용 액션캠을 달아놓고
점점 차오르는 승강장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앞 선 급행열차들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은 대기인원이 생긴 열차를 기해 함께 올라탔다.
당연히 탑승한 열차 내에서는 옴짝달짝 못 할 상황이었다.
오디오맨에게 오늘은 꼭 올라타라고 신신당부를 해놓아 이날 열차 내부에 카메라는 도합 세 대였다.
내 예상외로 승객분들은 낯선 기자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해주었다.
오히려 여유로이 길을 거니는 시민들을 붙잡고 인터뷰 부탁을 할 때보다도 성공률이 훨씬 높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겠구나 싶은 것이,
늘 9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승객들이라면
이 지옥철에 대해 참 할 말이 많겠구나 싶었다.
취재를 위해 단 몇 번을 경험해봐도 이렇게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데
매일같이 이런 출근길이라면 누구에게든 무슨말이든 토로하고 싶을 것 같았다.
같은 날 퇴근 시간에 고속터미널 역을 찾았다.
취재를 가는 길에 오디오맨과 나는 "퇴근시간은 출근시간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대화를 나눴다.
출근 시간은 대부분이 9시이고, 꼭 그 시간에 맞춰 가야하는 반면
퇴근 시간은 잔업량에 따라 각자가 조금씩 다를 수 있고
귀가를 해야하는 시간이 꼭 정확히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니
승객들이 많이 나눠 타지 않겠나했던 것.
오산이었다.
오히려 더 붐볐다.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알아봤다.
"아까 아침에도 있더니 또 있네"했다.
출근길에도 나를 봤던 모양이다.
출퇴근길 모두 나를 봤다는 얘기는
정말이지 그 날 하루 가장 붐비는 시간의 지옥철을 타셨다는 뜻일텐데,
어디 그날 하루 뿐이겠으며 그런 사람이 그 분 한 분 뿐이겠나, 싶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아주 많지는 않은 열차에 올라타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사람들이었다.
퇴근 시간에는 승강장에 안전요원이 배치돼 매 열차마다 적정 인원이 탑승하면
긴 줄을 중간중간 잘라 다음 열차 탑승을 유도했다.
그러니 올라타는 과정에서 미식축구를 하거나
마지막 탑승객의 팔다리 등이 튀어나와
문이 수차례 여닫히는 경우는 출근시간에 비해 적었지만
열차 내부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장 취재 이후 취재기자는 서울시의 도시철도 과장을 만나
지옥철이 변함없이 지옥철인 이유를 물었는데
열차가 4량에서 6량으로 길어졌고 편성도 바꿔 혼잡도가 서서히 줄고있다고 답했다.
매일같이 9호선을 타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과거 상황과 바뀐 것을 체감하냐고
물었을때 들었던 말들과는 다소 다른 대답이었다.
덧붙여 서울시는 승객들에게 급행열차만 고집할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일반열차를 이용할 것을 권장했다.
몇몇 구간에서는 일반열차를 탑승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올 급행열차보다
목적지까지 더 빨리 도착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2022년까지 열차를 6대 더 구입하고 6량 열차를 8량으로 늘릴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9호선이 지나는 8개역을 재공사 해야한다는 걸림돌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총 세 번을 탄 뒤 9호선 취재를 마쳤다.
'고작' 세 번이다.
매일같이 이 열차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 하락은 누가 책임져야할까?
의정부에서 상암으로 출퇴근을 하던 내 동기 형이 얼마전 일산으로 이사를 했다.
퇴근 후 함께하는 저녁자리에서 요즘 형의 낙이 뭐냐, 물었더니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확 바뀌어 퇴근 후 형수와 손 붙잡고 산책을 하는게 낙이라고 했다.
회사나 업무장에서의 환경만 나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 집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집으로 향하는 그 길이
근로자들의 삶의 질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 취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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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645031_288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