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레카야자 Jun 03. 2019

지키던 날들

베트남 북미정상회담 출장기 <본대 기간>


190223 뉴스데스크 <하노이까지 차량으로?…170km 도로 달려봤더니>  



본대가 들어온 23일부터 저는 김정은 특별열차가 들어올 동당역으로 ‘출장 중 출장’을 떠났습니다. 랑선 지역으로 향하며 고프로로 주행 스케치를 하고 김정은이 지날 도로를 롱테이크로 스케치 할 수 있는 포스트들을 찾아가며 이동했고 당일 제작 아이템 커버, 동당역 드론 스케치, 베트남-중국 국경지역 답사 및 스케치 등 예상과 달리 바쁜 일정들을 보냈습니다.


위 보고서 문장에서의 야마*는 마지막 문장의 '예상과 달리' 부분이다. 실제로 하노이에서 '누가 동당으로 떠날것인가'를 고민할 때, 동당은 하노이의 취재 열기를 잠시 식힐 수 있는 곳이고 수많은 취재진이 몰린 하노이에 비해 느긋하고 한적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뒤늦게 베트남에 온 선배는 (그래봐야 나보다 늦었다는 것이지 그또한 선발대 출장자였다.) 내가 진작부터 와 고생했으니 동당에서 좀 쉬엄쉬엄 지내다 오라며 날 동당으로 보냈다. 그 선배는 며칠 뒤 나에게 일이 이렇게 될줄 몰랐다며 사과했다. 



야마* ; 방송 현장 일본 속어. 야마란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 특종 등을 의미한다. 일본말로 야마는 산이란 뜻이다. 즉 평평하다가 갑자기 위로 솟구쳐 오른 것을 말한다. 돌출을 의미한다. '야마가 뭐냐'란 말은 '가장 중요한 장면이나 중요한 상황 등 가장 핵심 부분이 무엇이냐'란 것을 묻는 말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영상 콘텐츠 제작 사전, 2014. 9. 17., 이영돈)]



190224 뉴스데스크 <"26일 도착 예정"…분주해진 베트남 동당역>



25일 아침엔 동당역 맞은편에 세워진 프레스라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선점한 자리는 역사 안 열차가 서고 김정은이 내릴 플랫폼까지 훤히 보이는 정면 위치. 그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저는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비가 오는 길 위에서 도시락을 먹고 순간순간의 발생을 커버하며  ‘언젠가’ 들어올 김정은 전용 특별열차를 기다렸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뉴스데스크엔 라이브 C/T*가 있었고 잡아놓았던 자리에 사다리를 세워놓은 채 잠시 라이브 포인트를 찾아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C/T(Cross Talk)* ;  앵커와 기자가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의 리포트. 물론 실시간 중계에서만 가능한 포맷이다.



김정은이 동당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은 26일 새벽~아침이었다. 그에 앞서 25일 아침 8시경 공안들이 역 입구 맞은편에 빨간 줄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프레스라인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일단 그 라인 바로 뒤 중앙에 트라이포드를 놓고 자리를 잡았다. 


자사의 표식이 있는 트라이포드나 사다리를 세워놓는 것이 영상기자들 사이에선 일종의 암묵적 '영역표시'인데 때로는 그게 정확히 "어떤 어떤 것들만 인정된다"는 규칙이 없어서 때로는 가방을 놓고 그 위에 명함을 올려두기도 하고, 심지어 예전에 한 선배는 ENG카메라 배터리 하나를 땅에 놔두는 것으로 자리를 맡아놓기도 했단다.


이 자리를 잡는 행위는 영상 취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 '위치'가 사실상 취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상기자들은 현장에 늘 일찍 도착하는 것이 몸에 베어있다. 이번 동당역과 같이 극단적인 상황(북한의 수령이 최초로 불특정 다수의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도 불과 2-30미터 거리에서)에서는 몇십 분, 몇 시간 전이 아닌 며칠 전부터 현장에 와 현지 공안의 통제를 살피며 눈치싸움을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같았다면 트라이포드나 사다리를 세워놓은걸로 안심하고 자리를 비우기도 했겠지만 이번엔 경우가 경우인지라 식사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고 비가 오면 처마밑으로 이동하기보단 우비를 입었다. 뒤늦게 온 언론사들은 2열, 3열, 4열 계속 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공중전'으로 돌입하게 됐다. 어디서 구한건지 모를 높디 높은 사다리들을 구해와서는 그 위에 플라스틱 의자를 붙이는 등 각자의 방식을 찾았다. 사진 기자들은 서로 "서커스를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미방분] "높이, 높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취재진



그리고 마침 저희의 라이브 시간, 공안들이 들이닥쳐 프레스 라인을 약 10미터 뒤로 미뤘습니다. 눈으로는 카메라와 렌즈 앞 취재기자를 쳐다보면서도 모든 정신은 프레스 라인, 그리고 아침부터 지켜온 제 자리로 향했습니다. C/T가 진행되는 2, 3분여의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고 라이브가 끝나자마자 장비들을 오디오맨에게 맡긴 뒤 프레스라인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저희의 사다리는 의미없는 공간에 동그마니 놓여져 있었고 새롭게 설치 된 프레스라인 앞줄에는 기존 프레스라인의 한참 뒤에 서있던 외신들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대로 맨 뒤에 자리 잡는다면 그 날 종일의 시간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 탑포드**나 트라이포드 익스텐션 칼럼***이 없는 저는 이후 김정은이 들어올 순간의 취재 자체가 막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막막함에 소리치며 트라이포드를 라인 맨앞에 어떻게든 집어넣은채 일본 외신들에게 영어로 설명하고 부탁하고 애원해 다시금 정면자리를 찾았습니다. 위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취재상황에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한다는 걸 명심하게 됐습니다.



탑포드**(Top-(tri)pod) ; 최대한 펼쳤을 경우 일반적인 트라이포드보다 더욱 높이 올라가는 트라이포드. 

트라이포드 익스텐션 칼럼***(Tripod Extension Column) ; 일반적인 트라이포드의 헤드 부분에 설치해 결과적으로 높이를 늘릴 수 있는 장치.



프레스라인이 뒤로 밀렸다. 이유는 전혀 모르겠다. 공안들이 하는 일은 늘 그랬다. 이유는 답해주지 않고 소위 '유두리'가 없었다. "왜 라인을 뒤로 밀었냐고?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했으니까"하는 식이었다. 멘탈이 나갔다. 수많은 언론사가 있는 그 현장에서 나는 목놓아 "여기 원래 저희가 맨 앞에 있었던거 다들 보셨죠! 저기가 제 자리였던거 아시죠! 여기 한자리만 들어가게 해주세요, 저희 트라이포드 안높일게요!" 외쳤다. (신입의 패기였다며 아직도 선배들이 놀린다. 타사 기자들 모두가 나보다 선배였을텐데 거기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니!) 그렇게 일본 언론사들 사이로 트라이포드를 욱여넣고 중앙 맨 앞자리를 탈환했다. 진이 빠졌다. 주인공이 올 때까진 아직도 최소한 14시간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하노이의 날씨만 찾아보고 얇은 옷만 챙겨간 나는 반팔에 바람막이 차림이었는데 몇몇은 롱패딩을 입고 있는 날씨였다. 나는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오디오맨을 통해 근처 시장가에서 모포를 두어개 사와 나눠가지고는 싸매고 있었다. (자사 선배가 그런 내 모습을 찍어 베트남 출장팀 단톡방에 올리고는 대신 엄살을 부려줬다.) 밤이 되며 비까지 와 나를 포함한 많은 취재진들이 추위에 떨었다.



190226 뉴스투데이 <이 시각 동당역…삼엄한 경계>



 26일 오전 8시 반 김정은의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저와 OOO 선배의 스케치 그림이 그때그때 라이브로 나갔던 특보시간도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뉴스센터, 기재실, 사무실 등에 계시던 여러 선배들과 Unity Intercom으로 소통하며 선배들의 지시와 도움에 힘입어 김정은 도착 전까지의 라이브를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은이 탄 특별열차가 도착하기 약 1시간 정도 전부터 각 사들은 특보 체제에 돌입했다. 스튜디오에서 앵커와 몇몇 기자들이 담화를 나누고 중간중간에 현장 그림을 그대로 내보내며 그에 대한 중계를 하는 식이었다. 중계카메라 감독이 아닌 영상기자들이 수행하는 경우는 잘 없는 일이었는데 나름대로 스릴있고 재밌었다. 뉴스센터와 통화하며 컷 사인을 받고 그때그때 새로운 피사체를 찾아 앵글을 바꿨다.

 


190226 뉴스특보 <2019 북미정상회담 北 김정은 베트남 도착>



그러다 드디어 김정은의 특별열차가 동당역 방향으로 몸을 드러냈다. 그 장면은 인근 건물 옥상에서 밤새 밤이슬을 맞고 있었던 자사 선배가 단독으로 잡을 수 있었다. 그 선배는 그 장면으로 한국에 돌아와 상을 받았다.


 

[자사 타기자 촬영본] 190226 뉴스특보 <2019 북미정상회담 北 김정은 베트남 도착>



나는 더욱 바짝 긴장했다. 짧게는 지난 24시간, 길게는 지난 열흘을 기다려온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렌즈는 동당역 입구 너머 플랫폼을 비추고 있었고 라이브 화면은 열차그림에서 내 그림으로 넘어와 있었다. 김창선과 김여정이 한차례 열차에서 내렸다 들어가고, 다시 열차의 위치를 플랫폼에 정확히 맞추고, 이제, 김정은이, 들어오는 순간,



190226 뉴스특보 <2019 북미정상회담 北 김정은 베트남 도착>

내 MNG*****가 꺼졌다.


뉴스센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면은 VTV(Vietnam Television)****에서 들어오는 그림을 받아 넘겼다. 다중 통화 중인 수화기 너머로 당시 부장의 탄식이 들렸다.


MNG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김정은이 내 뷰파인더 안에 있었다. 라이브는 VTV에 맡기고 렉버튼을 누른채 그를 맞았다. 중계화면은 VTV에서 받아 잘 나갈 것이었고 시청자들은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아팠다. 아픈 실수였다. 


그러던와중 김정은이 열차에서 내려 역사 입구로 걸어 나옴과 동시에 제가 운용하던 MNG기기의 전원이 꺼졌습니다. 눈앞에서는 밤새 기다리던 김정은이 걸어 나오고 있었고 제 그림은 더 이상 서울로 전해지지 않는 상황. REC을 눌러놓고 배터리를 교체했으나 한 번 꺼진 MNG는 켜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고 혼란스러웠고 아쉬웠습니다. 김정은에게 잠시만 나오지 말고 서있으라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오디오맨과 함께 서있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장비들의 배터리를 미리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었고 처음 진행되는 스케치 라이브에 모든 정신이 촬영에만 쏠려있었던 탓이기도 합니다. 이번 실수를 앞으로의 모든 현장 현장에서 확실한 반면교사로 삼겠습니다.

 


MNG(Moblie News Gathering)***** ; 인터넷망(LTE)를 이용한 실시간 영상 송출 장치 (때문에 현장에서는 MNG장비를 그냥 LTE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로 기존 SNG중계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취재한 촬영원본을 회사로 송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중계차가 갈 수 없는 상황과 장소, 동시에 여러장소에서의 라이브, 무빙을 하며 라이브를 해야하는 현장성이 중요한 라이브 등등) 실시간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기존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MNG는 베트남 북미정상회담 당시 1인 1MNG를 도입해 뉴스특보 등 상황에 여러 포스트에서의 동시다발적 라이브를 가능케했다. 


190227 뉴스특보 <2019 북미정상회담 3부>


그렇게 그는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차를 타고 하노이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동당-하노이 간 경로 곳곳에 배치된 선배들이 맡아줄 것이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김정은은 이제 막 도착했고 트럼프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난 북미정상회담이 모조리 끝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당역 앞에서 밤을 지새운 자사 및 타사 선배들 모두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왔을때 친구들은 나에게 김정은을 실제로 본 소회에 대해 묻곤 했다. 크게 할 말은 없었다. MNG가 꺼진 순간 내 뇌도 꺼졌던 것 같다.





VTV(베트남어 : Đài Truyền hình Việt Nam)**** ; 1970년 설립된 베트남 국영방송사로 이번 북미정상회담 방송의 key사였다. vtv에서 촬영되는 중계화면들은 일정 중계 수수료를 받고 각 방송사들에 전달되어 자유로이 사용됐다. 









<정상회담 기간> 4편에서 계속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177583_24634.html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178734_24634.html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1400/article/5179634_24623.html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180285_24634.html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today/article/5180559_24616.html


http://imnews.imbc.com/replay/newsflash/5181031_17783.html?menuid=newsflash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182090_24634.html?menuid=nwdesk

매거진의 이전글 달려들던 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