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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Jun 03. 2019

달려들던 날들

베트남 북미정상회담 출장기 <선발대 기간>

이후 18일부터 23일에는 OOO, OOO 선배가 선발대로 합류해 <선발대 기간>이 시작됐습니다. 이 즈음 비건, 김도훈 등 미국과 북한의 실무협상팀도 하노이에 들어와, 정부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김창선 이하 북측 의전팀만을 쫓던 저희의 취재는 파크 하노이 호텔이라는 새로운 포스트를 중심으로 양측의 실무협상팀까지 커버해야하는 설상가상의 형국이 됐습니다. 


말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선배들의 합류로 덜 맨 땅에 헤딩을 하고 덜 뻗쳐도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던 시간이 무색했다. 영상기자는 한 명에서 세 명이 됐지만 커버해야할 취재 포스트와 인물들은 훨씬 더 많은 비율로 늘어났다. 단순히 산수만 해봐도 더 '빡세'지는 상황이었다. 


190220 뉴스데스크 <1주일 남은 북미 정상회담…"의제 조율 본격화">


김창선이 비건을 찾아 파크하노이 호텔로 찾아왔던 여러 날들이 생각납니다. 뉴시스, 연합뉴스 등의 여러 인터넷 기사에 떴듯 당시의 파크하노이 앞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 번호도 잊히지 않는 4441, 4463, 4418번 벤츠가 보이면 모든 카메라가 달려들어 차를 에워쌌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사 영상기자 한 명은 뒤로 넘어지며 차량 앞바퀴에 발이 깔리는 불상사도 일어났습니다.


 김창선과 비건은 파크하노이 호텔에서 만났다. 김창선의 숙소인 베트남 정부 게스트하우스(이하 '정부 게하')와 비건의 숙소 파크 하노이 호텔 앞은 늘 장사진을 이뤘다. 정부 게하 앞의 영상기자가 김창선의 차량을 찍고 영상을 돌려보며 그가 타있는 것을 확인하면 단톡방을 통해 알리고, 파크 하노이 호텔 앞의 영상기자는 긴장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그의 차를 찍는 식이었다. 위에 쓴 보고서에서 언급된 상황도 그런 상황이었다. 심지어 당시 취재진이 에워쌌던 차에는 김창선이나 김혁철이 타있지도 않았다. 명백한 취재 과열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는 무의미한 경쟁이었다. 

 그날 4441 벤츠에 발등이 깔렸던 그 선배 발은 어떻게 됐을까. 그 후로 베트남에서 보지는 못했다. 치료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갔거나 한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았을텐데, 모두들 그 일은 쉬쉬하기에 바빴다. 그 선배의 부은 발등은 과열된 한국 언론의 취재 경쟁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190222 뉴스데스크 <전 세계 이목 '메트로폴' 호텔로…이 시각 하노이>
(좌) <김혁철을 찍어라!> / (우) <본격적으로 시작된 취재경쟁> [출처 : 연합뉴스]


 보고서엔 들어가지 않은 또하나의 웃지못할 상황도 있었다. 당시 베트남엔 일본 외무성 국장 가나스기 겐지도 입국해 있는 상태였는데 그 또한 카메라에 담기면 뉴스에 한 컷 쓰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를 기다리던것은 아니었고 비건이나 김창선, 김혁철 등이 실무 회담을 마치고 혹시라도 모습을 보일까 취재진이 파크 하노이 입구 앞에 뻗치고 있을 때 한 일본인이 밴에서 내려 입구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관광객처럼 보이지는 않는 풀 정장 차림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카메라가 그를 비췄다. 그러자 주위의 모든 카메라들이 일제히 그를 찍기 시작했다. 이어 모두는 우르르 그를 따라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갔다. "누구야", "누군데", "알고는 찍어야할 것 아냐", 본인이 찍는 피사체의 정체를 옆 카메라에 묻는 웃지못할 상황. 그 일본인은 화들짝 놀라며 "You're wrong", You're wrong"을 연신 외쳤다. (지금은 쓰면서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나도 당시엔 그 중 한 대의 카메라를 들고 있던 영상기자였고 그가 외치는 "You're wrong"이 '너희 지금 잘못된 사람에게 달려들었어'라는 의미가 아니라 '너희의 이런 취재 방식은 옳지 않아'라고 이해하고는 더욱 그가 겐지구나 확신을 했었다.) 

 예상했겠지만 그는 겐지가 아니었다. 사업차 베트남을 찾은 일본인인지, 단정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관광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나를 포함한 우린 모두는 wrong이었다. 



190222 뉴스데스크 <전 세계 이목 '메트로폴' 호텔로…이 시각 하노이>


 싱가폴 회담 당시 비건이 과열된 취재양상을 보며 “Don’t hurt yourself”라고 하여 당시 OOO 선배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었다던데, 2차 북미정상회담 취재현장에서는 다시 말그대로 ‘hurt ourselves’하고 있었습니다. 취재과열이었고 무의미였고 자해였습니다. 중한 것과 비교적 그렇지 않은 것, 몸을 불살라 취재할 가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 또한 부장에게 올리는 신입 기자의 출장 보고서에 실제로 들어있던 내용이다. 16일부터 길바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뻗치기를 하다가, 19일부턴 내가 들어본 한국의(또한 일부 일본과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사의 사진/영상 기자들과 함께 몸싸움을 하며 과열된 취재경쟁을 펼쳐야 하는 현실이 정말 지치고 힘들었었다. 그렇게해서 연예인의 밴 수준으로 썬팅이 돼있는 검은색 벤츠 안의 그를 한 컷 찍는다 한들 그것이 뉴스에 쓰이는 일도 드물었다.  

 결국 비건이나 김창선, 김혁철 등을 쫓았던 모든 이유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어디에 묵을 것이고 어디에서 회담할 것이며 어떤 의제들을 꺼낼 것인지 등에 대한 관심인 셈인데, 그러한 정보들은 이렇게 취재진들이 무리를 한들 그들이 우리가 안타깝다며 한마디 말해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며칠 뒤 김정은과 트럼프가 베트남에 오게되면 알게될 것들이었다. 취재라는 행위나 뉴스 수용자들의 알권리 자체를 폄훼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게 모두의 몸을 상해가며까지 1보 경쟁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봐야 확실한건 아무것도 없는채 추측으로 도배된 기사들을 말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열심히 김창선을 쫓으며 예측한 결과 김정은의 숙소로 거의 확정적이라던 메트로폴 호텔은 그의 숙소가 아닌 두 정상의 회담장이었고, 연일 보도에서 美취재진의 프레스 센터이기 때문에 김정은이 머무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던 멜리아 호텔에선 취재진을 모두 내쫓고 김정은 위원장이 묵었다. 



[미방분] 파크 하노이 호텔 차량 진입로 앞에 뻗치고 있는 한국 취재진



  




<본대 기간> 3편에서 계속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173139_24634.html?menuid=nwdesk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174941_24634.html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176282_246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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