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출장기 <번외편>
<본대 기간>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혔듯 김정은 위원장이 동당역으로 들어선 순간 나의 불씨는 거의 꺼져버렸다. 김정은 특별열차가 돌아간 뒤 빈 레일 위에서 스탠드업 하나를 찍고는 도로 통제가 풀리자마자 하노이로 돌아왔다.
돌아온 하노이에는 후발대까지 와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이날부턴 거의 모든 언론사가 특보체제로 하루종일 TV에선 스튜디오와 현지 라이브가 이어졌다. 모든 기자들은 각자 맡은 포스트에서 뻗치다가 시간 맞춰 라이브를 하고 또 뻗치고 라이브하고 뻗치고…를 반복했다.
첫 정상회담들의 만찬이 있던 날 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인 멜리아 호텔 앞을 맡았다. 호텔은 입구 앞 도로를 원천 봉쇄했다. 접근 가능한 가장 근접한 거리에선 줌을 최대한 넣으면 간신히 호텔 입구가 보였지만, 그마저도 표지판 기둥과 수시로 드나드는 차들에 가려지는 상황이었다. 그나마의 앵글도 중요한 각 언론사들은 사다리 위에 겨우 한 명이 서있을 공간만을 확보해가며 공간을 채웠다. 라이브를 하러 자리를 비우거나 두 정상의 귀가 후 퇴근을 할 때도 사다리는 그 자리에 묶어두거나 붙여두고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JW메리어트 호텔을 나섰다는 소식이 들렸고 이내 회담장인 메트로폴 호텔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제 곧 김정은 위원장도 나갈 것이 분명한 시간이었다. 어제 아침 동당에서 봤던 그 얼굴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다시 뉴스센터 등 회사와 긴밀히 통화하며 상황을 말로 전했다. "김정은 차량이 정문 앞에 섰습니다", "북측 영상기자들이 보입니다", "경호원들이 탑승 했습니다" …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의 타사들에게 참 많이 방해가 됐을 것 같아 미안하다. (김정은이 떠나고 상황이 끝난 뒤 타사 선배가 초단위로 보고를 하더라며 열심히 한다고 격려해줬는데, 지금에 와 그것이 일종의 '쿠사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괜한 우렬까?)
아쉽게도 동당역에서 제정신을 못차리고 떠나보낸 김정은을 또한번 볼 기회는 없었다. 하기사 김정은이 어떤 차에 올라타는지 언론에 보일만큼 허술하다면 저리 긴 차량 행렬을 준비할 이유도 없겠지.
일단 두 정상이 숙소를 떠나 만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백악관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맡아 취재할 일이었다.두 정상이 만나 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밥을 먹으러 갔다. 두 정상도 만찬을 함께 해야할 거고, 각종 의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최종 합의문을 채택하고 또 악수를 나누고 하다보면 대충 이정도 시간이 되겠지, 생각하고 모처럼 여유롭게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는데…
단톡방이 심상치 않았다. 아직 회담은 한참 남았는데 트럼프의 캐딜락 '야수(The Beast)'가 출발 준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뭔소리야 이게. 나는 이제 막 반쎄오의 쌀가루 반죽을 찢는 중이었다. 음식을 입안에 욱여넣고 일단 나왔다. 나온다고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일단은. 똑같이 아무 정보도 없는 현장의 기자들에게 곧 라이브를 연결할 수도 있다는 무책임한 얘기는 슬슬 현실화 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협상 결렬. 아무런 선언문도 나오지 않은채 트럼프는 예정보다 빨리 본국의 '하얀 집'에 돌아가고 김정은은 베트남에 남았다.
아쉬웠다. 평화에 한발 내딛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될 것 같았고 충분히 회담 전까지의 분위기는 그랬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다는 자부심이 길이길이 기억돼 아들래미 딸래미한테도(없다) 자랑할 날이 오겠지 싶었는데. 이건 뭐. 현장 기자들 사이에선 결국 둘이 만나 그냥 밥 한 번 먹는데 이 난리를 부린거냐, 하는 볼멘소리들이 나왔다. (맞다. 내 입에서 나왔다.) 김첨지가 생각났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아참, 앞서 밝혔듯 <북미정상회담 출장기> 포스팅은 출장을 다녀와 부장에게 올리는 출장 보고서를 바탕으로 쓴 거였다. 그래서,
마무리는 이랬다.
위에 무슨 선배, 무슨 선배는 사회생활이고,
마지막 줄은 진심. 진심으로 잊지 못할 출장이었고 훌륭한 경험이었고 많은 배움의 장이었다.
언젠가 3차 회담이 열리겠지?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