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부답' 귀국…3년 전에도 '불법촬영' 빠져나가
2019년 3월 12일 인천공항의 입국장 B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국내 온갖 언론매체들은 물론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기 위한 사람들까지.
지상파 방송사는 지상파끼리, 종편은 종편끼리, 신문사는 신문사끼리 위치 풀(Pool)*을 짰다.
입국장은 양갈래 길이었다. 양쪽에 각각 두 사씩을 배치하고 가운데에 한 사, 그리고 그 모두를 관망할 수 있는 윗층 부감 장소에 한 사가 배치됐다.
나는 입국장B의 한 가운데에서 익스텐션 칼럼(Extension Column)**을 끼운채 사다리에 올라있었다.
위치 풀(Pool)* ; 약속된 각 언론사끼리 위치를 나눠 각자의 위치에서 촬영한 뒤 서로의 원본을 나누는 취재 방식. 여러가지 풀 취재 방식 중 한가지 종류이다.
익스텐션 칼럼(Extension Column)** ; 트라이포트의 헤드부분에 끼워 일반 트라이포드의 길이를 늘리는 장치이다. 그 자체가 높이 올라가는 탑포드와 달리 일반적인 트라이포드에 장착해 사용한다.
10명 이상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유포한 -당시엔 혐의를 받고있던- 정준영이 미국에서 들어오는 날이었다.
정준영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 몰라 영상기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긴장하고 있었다. 과연 정말 이리로 나올까. 나온다면 포토라인에는 설까, 서면 대답은 할까, 혹시 몰래 빠져나가는 건 아닐까.
내 자리에선 입국장 자동문으로 다가오기 한참 전에서부터 그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평범한 맨투맨을 입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러 영상기자들이 함께 각도와 거리를 계산해 표시해둔 포토라인이 무색하게
그는 자동문을 나오자마자 방향을 틀었고 포토라인 앞에서 질문을 준비하던 취재기자들은
그를 졸졸 쫓아가며 대답 없는 공허한 질문들을 던졌다.
경호원들은 곧장 그를 에워싸고 입국장을 지나갔다.
그가 방향을 틀고 나서도 원래의 자리에서 그를 어느정도 찍던 나는 카메라를 뽑아들고
그의 경로상 전방으로 뛰어갔다.
이미 수많은 언론사 카메라들이 모여있었고 뷰파인더나 LCD를 볼 새도 없이 모두 머리위로 카메라를 쳐들고 그를 찍고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경호원의 바로 앞에 섰다.
내가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온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런 찌질이들이 싫다.
여자들을 자신의 리비도의 분출 대상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그걸 기록하고 공유하는
이런 새끼들이 정말 괘씸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취재에의 의지가 불 타올라 그럴 수 있었던건지 모르겠다.
밀려나오는 취재인파 중심에서
약10kg의 ENG카메라를 머리 위로 쳐들고
경호원의 코앞에 붙어
한 발, 한 발.
밀린다기보다는 속도를 맞춰 뒤로 걷는다는 느낌으로 붙었다.
주위 사진/영상기자들이 여럿 넘어졌다.
발이 계속 밟혔다.
하필 이런 날 신고갔던 흰신발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넘어지지 않고 견뎠다.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텼다.
풀 그림을 함께 송출하며 타사 선배들이 탄성을 질렀다.
"(타사 그림 필요없이) 네 그림만 써도 되겠는데!" 한 선배가 말했다.
뿌듯했다.
여기저기 밟힌 내 흰 신발은 빨면 다시 깨끗해지겠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그가
더 우스꽝스럽고 더 굴욕스럽게 보여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래 사진은 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가 수상한 제 195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수상작이다.
이 사진이 실린 인터넷 기사 아래 가장 많은 추천수를 기록한 댓글은
"찍히고 싶지 않은데 찍히는 기분이 어때?" 였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01281_246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