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뜨거운 흙…바람 불면 다시 '화르륵'
새벽 6시쯤 전화가 왔다.
출장 준비를 해 출근을 하라는 캡*의 지시.
당일인지, 자고오는지, 2박 이상을 하는건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강원도 지역에 큰 산불이 났구나, 그곳에 가는 거구나 정도를 파악한 뒤
백팩에 1박2일 용 정도의 짐을 싸고 회사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엔 올라가지도 않은채 회사 차량을 타고 바로 강원도로 향했다.
한밤중 떠난 팀들도 두 팀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불씨가 꺼진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어딘가 잔불이 있다면 최대한 불길이 보이는 지역으로 가라고 했다.
벌건 불을 배경으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캡* ; 현장 기자들의 취재 배정, 업무 지시 등 취재 전반에 걸친 통제 및 지시를 하는 역할
그렇게 찾아간 곳이 강릉 '옥계'였다. 밤 중에 출발한 팀은 물론 아침에 함께 출발한 다른 팀들도 모두 '고성', '속초' 등으로 향했는데 나와 취재기자 선배 한 명만 옥계에 도착했다. 여전히 산 위로 불긋불긋 불이 보이는 곳은 그 시각 옥계가 유일했다.
도착하자마자 연기가 솟는 곳을 좇아 산을 올랐다. 길도 아닌 곳으로 올랐다. 정오 경 강원도 산불 관련 뉴스특보가 예정 돼 있었다. 취재기자 뒤로 불길이 보이면서 MNG**가 터지는 곳을 겨우 찾았다. 트라이포드를 놓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MNG** ; Mobile News Gathering의 약자로 이동식 송출/중계 장비이다. 휴대폰에 들어가있는 것과 같은 유심카드를 여러장 꽂아 LTE망을 연결하여 사용한다.
그런데 그 자리는 바람에 따라 연기에 휩싸이는 곳이었다.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면, 눈을 뜨기는 커녕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도저히 라이브 연결이 안될 것 같다고 말하려치면 또 바람 방향이 바뀌어 살만해졌고 이내 또 수십초 안에 눈도 못뜰 상황이 반복됐다.
라이브를 하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견뎠다. 뷰파인더를 보느라 억지로 뜨고있던 오른쪽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어쨌든 카메라는 그대로 들고있었다. 그리고 한차례의 라이브가 끝났는데 그림이 괜찮았다며 몇 분 뒤 또 연결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산 건너에 남아있던 불씨는 바람을 타고 취재기자 약 20m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위치를 이동해 가며 특보동안 총 3차례의 라이브를 연결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갔다가 몇 시간 뒤, 뉴스데스크 라이브를 하러 그 산을 다시 올랐다.
총 4차례의 라이브 연결을 그 산에서 했다.
2019년 식목일의 대한민국 뉴스는 언론사를 막론하고 온통 타들어간 강원도에 대한 얘기였다.
이튿날 나는 속초로 이동했다. 옥계에 남아 한꼭지를 제작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속초에 있는 본대에 합류해 '도깨비 불'을 주제로 리포트를 만들러 다녔다.
도깨비 불은 산불에 강한 바람이 합쳐져 불티가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현상을 말했다.
인근 마을들의 피해는 산불이 직접 옮겨붙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도깨비 불에서 비롯되는 일이 파다했다.
그래서 같은 마을 내의 불과 수 미터 간격의 집들도 어떤 집은 홀랑 타버린 반면, 어떤 집은 하얀 페인트가 전혀 그을리지도 않은채 남아있기도 했다.
그래도 눈으로 보지 않고는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불티가 함박눈처럼 날릴까, 그 작은 불씨들이 이렇게 건물을 통째로 불태울 수 있을까.
현상에 있는 나도 잘 믿기지 않는 현상을 시청자들이 잘 이해하긴 힘들터.
도깨비 불 현상이 있었던 지역을 다니며 cctv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당과 주민센터 두 곳에서 야외 모습이 담긴 cctv 녹화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산불이 났던 시점으로 돌려보며 도깨비불의 실체둘 찾았다.
그렇게 찾아낸 도깨비불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처음 하나 둘 날리는 도깨비불은 반딧불이처럼 연약해 보였는데
바람이 불며 더욱 세력이 커지자
흩날리는 도깨비불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겉잡을 수 없었다.
주택이 타버린 주민들이 피난처겸 한데 모여있던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은 우리와 함께 cctv 녹화본을 시청했다. 그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깨비 불이 옮겨붙은 주민센터 옆 정자가 불에 타 폭삭 주저 앉을 때, 주민들은 저도 모르게 "아 -", "아이고 …" 하는 탄식을 뱉었다.
혹시 저 광경을 실제로 보신 분이 계시냐는 내 질문에 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며
저걸 어떻게 지켜보고 있냐, 도망치기 바빴다,고 답했다.
나같아도 미쳤다고 저걸 두눈으로 지켜 보고 있었을까. 멍청한 질문이었다.
그들은 살기위해 도망쳤고
불이 꺼진 후 다시금 살기위해 돌아왔으나
살던 곳은 모두 재가 돼 사라져버렸다.
불은 꺼졌지만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아니 이제 막 타들어가고 있었다.
둘째날 뉴스데스크가 끝났다.
강원도 모든 지역의 진화율은 100%에 가까웠다.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과 남겨질 사람들이 나눠졌다.
나는 서울로 복귀하는 명단에 들어있었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36387_24634.html?menuid=nwdesk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37691_24634.html?menuid=nwde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