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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Jun 20. 2019

불이 꺼지고 남은 것은 타들어가는 마음이었다

아직도 뜨거운 흙…바람 불면 다시 '화르륵' 


새벽 6시쯤 전화가 왔다.

출장 준비를 해 출근을 하라는 캡*의 지시.

당일인지, 자고오는지, 2박 이상을 하는건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강원도 지역에 큰 산불이 났구나, 그곳에 가는 거구나 정도를 파악한 뒤 

백팩에 1박2일 용 정도의 짐을 싸고 회사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엔 올라가지도 않은채 회사 차량을 타고 바로 강원도로 향했다. 

한밤중 떠난 팀들도 두 팀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불씨가 꺼진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어딘가 잔불이 있다면 최대한 불길이 보이는 지역으로 가라고 했다. 

벌건 불을 배경으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캡* ; 현장 기자들의 취재 배정, 업무 지시 등 취재 전반에 걸친 통제 및 지시를 하는 역할


190405 뉴스데스크 <아직도 뜨거운 흙…바람 불면 다시 '화르륵'>


그렇게 찾아간 곳이 강릉 '옥계'였다. 밤 중에 출발한 팀은 물론 아침에 함께 출발한 다른 팀들도 모두 '고성', '속초' 등으로 향했는데 나와 취재기자 선배 한 명만 옥계에 도착했다. 여전히 산 위로 불긋불긋 불이 보이는 곳은 그 시각 옥계가 유일했다. 


도착하자마자 연기가 솟는 곳을 좇아 산을 올랐다. 길도 아닌 곳으로 올랐다. 정오 경 강원도 산불 관련 뉴스특보가 예정 돼 있었다. 취재기자 뒤로 불길이 보이면서 MNG**가 터지는 곳을 겨우 찾았다. 트라이포드를 놓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MNG** ; Mobile News Gathering의 약자로 이동식 송출/중계 장비이다. 휴대폰에 들어가있는 것과 같은 유심카드를 여러장 꽂아 LTE망을 연결하여 사용한다. 

190405 뉴스 특보 <속초 화재 특보>

 

그런데 그 자리는 바람에 따라 연기에 휩싸이는 곳이었다.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면, 눈을 뜨기는 커녕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도저히 라이브 연결이 안될 것 같다고 말하려치면 또 바람 방향이 바뀌어 살만해졌고 이내 또 수십초 안에 눈도 못뜰 상황이 반복됐다. 


190405 뉴스 특보 <속초 화재 특보>



라이브를 하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견뎠다. 뷰파인더를 보느라 억지로 뜨고있던 오른쪽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어쨌든 카메라는 그대로 들고있었다. 그리고 한차례의 라이브가 끝났는데 그림이 괜찮았다며 몇 분 뒤 또 연결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산 건너에 남아있던 불씨는 바람을 타고 취재기자 약 20m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위치를 이동해 가며 특보동안 총 3차례의 라이브를 연결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갔다가 몇 시간 뒤, 뉴스데스크 라이브를 하러 그 산을 다시 올랐다.

총 4차례의 라이브 연결을 그 산에서 했다. 


2019년 식목일의 대한민국 뉴스는 언론사를 막론하고 온통 타들어간 강원도에 대한 얘기였다.

 


190405 뉴스데스크 <아직도 뜨거운 흙…바람 불면 다시 '화르륵'>



이튿날 나는 속초로 이동했다. 옥계에 남아 한꼭지를 제작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속초에 있는 본대에 합류해 '도깨비 불'을 주제로 리포트를 만들러 다녔다. 



190406 뉴스데스크 <이 집은 타고 이 집은 멀쩡…곳곳 할퀸 '도깨비불'의 공포>




도깨비 불은 산불에 강한 바람이 합쳐져 불티가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현상을 말했다. 

인근 마을들의 피해는 산불이 직접 옮겨붙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도깨비 불에서 비롯되는 일이 파다했다.

그래서 같은 마을 내의 불과 수 미터 간격의 집들도 어떤 집은 홀랑 타버린 반면, 어떤 집은 하얀 페인트가 전혀 그을리지도 않은채 남아있기도 했다. 



190406 뉴스데스크 <이 집은 타고 이 집은 멀쩡…곳곳 할퀸 '도깨비불'의 공포>


그래도 눈으로 보지 않고는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불티가 함박눈처럼 날릴까, 그 작은 불씨들이 이렇게 건물을 통째로 불태울 수 있을까.

현상에 있는 나도 잘 믿기지 않는 현상을 시청자들이 잘 이해하긴 힘들터.

도깨비 불 현상이 있었던 지역을 다니며 cctv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당과 주민센터 두 곳에서 야외 모습이 담긴 cctv 녹화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산불이 났던 시점으로 돌려보며 도깨비불의 실체둘 찾았다. 


그렇게 찾아낸 도깨비불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처음 하나 둘 날리는 도깨비불은 반딧불이처럼 연약해 보였는데 

바람이 불며 더욱 세력이 커지자

흩날리는 도깨비불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겉잡을 수 없었다.  



190406 뉴스데스크 <이 집은 타고 이 집은 멀쩡…곳곳 할퀸 '도깨비불'의 공포>



주택이 타버린 주민들이 피난처겸 한데 모여있던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은 우리와 함께 cctv 녹화본을 시청했다. 그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깨비 불이 옮겨붙은 주민센터 옆 정자가 불에 타 폭삭 주저 앉을 때, 주민들은 저도 모르게 "아 -", "아이고 …" 하는 탄식을 뱉었다.  


[미방분] 주민센터 외부 cctv 녹화본을 시청 중인 주민들


혹시 저 광경을 실제로 보신 분이 계시냐는 내 질문에 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며 

저걸 어떻게 지켜보고 있냐, 도망치기 바빴다,고 답했다. 


나같아도 미쳤다고 저걸 두눈으로 지켜 보고 있었을까. 멍청한 질문이었다.


그들은 살기위해 도망쳤고 

불이 꺼진 후 다시금 살기위해 돌아왔으나

살던 곳은 모두 재가 돼 사라져버렸다.


불은 꺼졌지만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아니 이제 막 타들어가고 있었다.




[미방분] 불이 꺼진 뒤의 옥계면 마을











둘째날 뉴스데스크가 끝났다. 

강원도 모든 지역의 진화율은 100%에 가까웠다.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과 남겨질 사람들이 나눠졌다. 

나는 서울로 복귀하는 명단에 들어있었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36387_24634.html?menuid=nwdesk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37691_24634.html?menuid=nw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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