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 침몰' 수색·인양 상황은?
사건사고 출장은 처음이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해 부다페스트에는 6월 5일 저녁에 도착했다.
짐이 오질 않았다.
나와 선배들 셋, 오디오맨 둘까지 총 6개의 개인짐과
수하물로 부쳤던 카메라 트라이포드 일체가 모스크바에 남겨졌다.
시작부터 고됐다.
항공사 측에 고가의 취재 장비들임을 밝히고 바로 다음 비행편에
꼭 실어다 줄 것을 당부했다.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밤중이었다.
풀 짐도 없던 선배와 나는 사고 현장과 주요 취재 포스트들을
미리 둘러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페스트 쪽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약 5분정도를 걸어 머르기트 다리에 다다랐고
다리 위에서 금방 태극기와 꽃, 양초를 발견했다.
울타리 너머 왼편 국회의사당과 오른편 어부의 요새가 뿜어내는 빛이 찬란했다.
그리고 그 아래, 흐르는 물 아래 어딘지 모를 곳에
여전히 가라 앉은 배와 사람들이 있었다.
자고 일어나 새벽부터 선발대에 합류했다.
5월 30일 출근길에 사고 소식을 접하고 바로 짐을 싸 출국했던
동기와 선배를 머르기트 섬에서 만났다.
간단한 인사 후 취재지역과 역할분담, MNG* 운용,
한국과 헝가리 구조본부와 정례 브리핑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머르기트 섬에는 한국과 헝가리 측의 구조 베이스캠프가 있었고 오전 10시마다 정례 브리핑이 열렸다.
또 해당 섬 끝자락으로 가면 머르기트 다리 아래 사고지점에 떠있는 바지선이 가장 가까이서 보였다.
(다만 부분부분 교각에 가려 촬영하기에 수월한 위치는 아니었다)
MNG* ; Mobile News Gathering의 이니셜로 휴대용 영상 송출 장비를 가리킨다. LTE망을 통해 데이터를 송신하며 휴대성과 경제성으로 최근 실시간 라이브 등에까지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섬에서는 기본적으로 한국 구조본부의 브리핑을 챙기고 다리 아래 수색 및 인양 준비 작업을 주시했다.
그리고는 구조, 수색작업에 새로운 장비가 동원되거나 새로운 움직임이 생길 때마다 스케치했다.
후발대로 도착한 내가 취재를 시작한 날, 처음 포클레인이 강 속에 머리를 담가 그 모습을 스케치 했다.
그리고 나는 헬기를 타러갔다.
그날 갑자기 잡힌 일정이었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취재였다.
내가 헝가리에서도 헬기를 타게 되다니.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헬기를 타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수하물에 들어있는 카메라 다리가 오지 않아 지상에서 취재하기에 제약이 많았고,
다른 선발대 취재진들은 이미 각자 하고있던 취재가 있었으며
내가 한국에서 자사 헬기취재 가능인원 중 한명이라는 이유였는데,
조이스틱을 이용해 씨네플렉스**로 촬영하는 한국의 헬기취재와 달리
원초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헬리콥터에 올라타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기존 한국에서의 헬기 취재를 할 줄 아냐 모르냐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신체적으로 힘든건 둘째치고 물리적으로 헬기의 그 진동을 스테빌라이져*** 없이 오롯이 손으로 견뎌내야했는데 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정말이지 편집해 사용하기 어려울만큼 화면이 흔들렸다.
씨네플렉스** ; 취재용 헬리콥터 하단부에 부착된 카메라. 아주 강력한 짐벌기능과 줌을 갖췄다. 헬기 내부에서 스틱을 잡고 카메라를 조종해 촬영한다.
스테빌라이져*** ; 카메라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장치(또는 기능)
헬기로 머르기트 부근에서 시작해 하류 132km지점까지 내려가며 스케치했다.
한국에서 헬기 취재를 할 때는 기장님들의 역할이 아주 크다.
자사 소속의 직원들이니 열정이 기자들 못지 않고
취재를 위한 비행에 도가 튼 분들이시니 경로나 동선을 가장 효율적으로 짜는건 물론,
촬영하기에 용이하게 속도와 방향과 거리를 설정하고 비행한다.
는 것을 헝가리에서 헬기를 타며 새삼스레 느꼈다.
헝가리에서 급하게 섭외한 아주 작은 4인용 헬기의 기장님은
기자들이 요구하는 피사체를 헬기의 직각 아래에 두고 회전을 한다거나
(바닥은 투명하지 않으므로 엉덩이 밑은 찍을 수가 없다)
굽이치는 강을 따라 주행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최단거리로 직선주행을 한다거나
(우린 강과 강변을 찍으러 헬기에 오른건데)
이동과 촬영용 비행이 속도가 같아 (=너무 빠르게 주행해)
피사체를 담을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식이었다.
결론적으로 헬기위에서 유의미한 그림을 담기에는 무리였다.
애초 헬기에 오를때에는 개를 이용해 수색하는 모습이 보이는지,
시신들이 발견된 지역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이 있는지 등을 관찰/촬영하려는 의도였는데
결국 말그대로 "헬기에 타서 현장을 둘러봤다"는
소위 '간지'를 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상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 할 수 있는 취재는 아니었으나
헝가리가 당시 뉴스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으니
현장을 다방면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긍정왕)
원래 소문대로라면 그 주 평일 내로 인양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수심이 내려가질 않아 상류방향에서 내려오고 있는 크레인선 클라크아담호가
머르기트 다리 아래를 지날 수가 없다고 했다.
크레인선만 도착하면 인양은 어렵지 않을텐데,
모두가 수심이 내려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클라크 아담호가 오는 예상일은 수요일에서 금요일로, 금요일에서 일요일로 자꾸만 미뤄졌다.
한국 언론은 미뤄진 날짜를 각자 매체를 통해 전했고 그에 맞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8일 토요일, 한/헝의 공동 기자회견을 커버하고 있는데
머르기트 섬 남단에 가 다리 아래를 소위 '뻗치며' 바라보고 있던 VJ가 카톡방을 통해
"클라크 아담호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이지?
더 늦춰지면 늦춰졌지 예고도 없이 클라크 아담호가 도착했다고?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응? 왜들 그래 무슨일 있어?" 하듯
클라크 아담호는 유유히 머르기트 다리 아래를 지나 이미 사고현장 부근까지 다가가 있었다.
직후 마련된 한국 구조대측 긴급 브리핑에선 난리가 났다.
어째서 헝가리 측의 계획을 한국 구조대 측은 모르고 있었냐,
서로 간의 협의가 잘 안 이루어지는거냐,
이런 식이면 인양 예정일도 기존과 달라지는 것 아니냐,
각 사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질의를 진행하는 송순근 대령은 적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본인도 분명 헝가리측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스러웠을 터이다.
이전까지가 클라크 아담호가 오기를 기다리는 날들이었다면
이 날부터는 클라크 아담호가 사고선 허블레아니호를 들어올리기를
기다리며 각 사의 능력껏 리포트를 제작하는 시기였다.
며칠전 하늘을 날았던 나는 이번엔
실종자 수색대원들과 함께 물위를 달리러 갔다.
여전히 7명의 한국인 실종자들이 물 속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수색구조 작업은 인양 작업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했다.
대원들은 맥도날드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매일같이 고무보트에 타
하류에서 상류로 오르며 강변 수풀지역을 수색했다.
동행했던 수색작업에서 새로운 실종자는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실종자는 7명.
클라크 아담호가 들어오며 9일로 예정됐던 인양작업은 또다시 미뤄졌다.
하루하루 종잡을 수 없는 기다림이 계속됐다.
다음편에서 계속
해당 리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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