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경비실 여전한 '황당' 이유…"일 안 할까봐"
※ 제목은 서울시의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이 있나요?> 포스터에서 차용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 동행했던 선배의 말에 따르면 - 작년에 했던 비슷한 내용의 취재 당시보단 확실히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가 많아졌다는 것.
그래서 아무 아파트나 들어가, 찍는 족족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돌아가는 무더운 경비실이
걸리는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여전히 많은 아파트 단지 경비원들은
폭염의 날씨 속 야외온도와 같은 온도의 경비실에서 업무를 본다는 것이다.
이 날은 목동과 성신동에 들렀다.
취재내용을 듣고는 나또한 땀 한바가지 쏟을 각오를 했었다.
많은 경비원들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거나
은근슬쩍 성사된 인터뷰에서도 에어컨 없는 경비실에 대해 불평하기 보단
경비실이라는 곳이 원체 그런거지 뭐, 하는 식이었다.
경비실 내부를 스케치하겠다고 하자
본인의 신원은 물론이고 해당 경비실, 해당 아파트단지가 절대 티나지 않게 찍어달라고
몇차례 신신당부를 했다.
찍은 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블러(blur)처리를 한다고 해도
중간중간 들어와 의자보나 책상 위의 책을 치웠다.
이후 다른 경비실을 둘러보는데
많은 경비실들이 비어있었다.
마침 주민분이 지나가시기에 어딜 가면 경비원을 만날 수 있는지 물었더니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더워서 아마 지하실에 계시는 거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지하실로 내려가자 경비원의 또다른 휴게공간이 나왔다.
직사광선이 비치지 않아 서늘한 지하공간이었다.
눅눅한 냄새가 났다.
"위에는 쉴 곳이 없잖아요"
지하실에서 만난 경비원은 이렇게 말했다.
공간이 있기는 있지만 폭염경보의 날씨와 같은 온도의 공간이니
그곳이 '쉴 곳'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이래야할까.
정말 이래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돌아다닌새 나와 선배의 옷도 젖어갔다.
경비원 몇 분을 만난 뒤 우리는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시원했다.
관리소장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는 동안 나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뉴스에 쓸만한 이야기들을 쏟아내주니 기쁘고 고마우면서도
정말 현실이 저렇구나, 하는 씁쓸한 분노.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되는 비용이나
에어컨 사용에 따른 전기비 모두 관리비로 부과되니
투표에선 늘 주민들의 대다수가 경비실 에어컨 설치에 부정적이라는 얘기.
경비실에 에어컨이 있는 아파트에선
주민들이 택배를 가지러 경비실에 들어갔다가 시원한 에어컨 공기를 맞고는
관리소로 득달같이 항의 전화들을 한다는 얘기.
경비원 숫자를 줄이자는 의견이 많은 판에
경비실에 에어컨을 달아주자는 공감은 쉽사리 형성되기 어렵다는 얘기.
경비원 당사자들은 짤릴까봐
덥다는 불평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얘기.
쓰다보니 또 열받네.
당신들이 저 경비실에 들어가
30분만 앉아있어보라는 다소 감정섞인 얘기를 하기 전에 (이 말도 하고는 싶지만)
그 주민분들에게 묻고싶다.
경비원들이 경비실에 있지 못하고 지하실 응달에 내려가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편의에도 득이 될 것 없지 않겠냐는 현실적인 질문을 하고도 싶고
(주로) 고령의 경비원들이 쉴 때만큼은 좀 시원한 곳에서 체력을 충전하는 편이
필요한 때에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기에도 더 유리하지 않겠냐는 질문도 하고싶다.
사실상 별 일 없이 있는 것 같은 존재들이
막상 없어졌을 때에 그 빈공간을 여실히 느끼는 경우들이 있다.
특히나 안전, 편의와 관련된 업무들은
평시엔 할 일이 없어보이고 별 일이 없어보이는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좋은 일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딱히 하는 것도 없어보이고
딱히 필요도 없어보이니
그 숫자를 줄이자는 생각보다
늘 바쁘고 늘 어디선가 생긴 문제를 다급히 해결하고 있지 않아도
별 탈 없는 아파트를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러다 정전이 나거나, 집에서 물이 새거나,
하다못해 재활용 쓰레기장이 엉망이 되거나 내 차 앞에 다른 차가 복도주차를 해놨을 때,
내가 시킨 택배가 우리집이 아닌 그들의 휴게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거나
차에서 옮길 장바구니가 너무 무거워 함께 들어줄 누군가 필요할 때,
그들이 있어 참 고맙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 좀 했으면 좋겠다.
이후 8월 19일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어제) 이문현 선배가
쓴 <푹푹 찌는 '찜통' 경비실…'4천 원'이 아까워서? > 를 보면
서울시에서 조사한 268개 아파트 단지 중
앞으로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할 계획이 없는 아파트 단지 100 곳의
평균 세대 수는 1천 1백 세대, 경비실은 15곳이다.
면적 5제곱미터 남짓한 경비실에 소형 벽걸이 에어컨을 달 경우 한 대에 30만원 안팎,
한 세대당 부담되는 가격은 약 4,090원.
하루 네시간씩 에어컨을 틀어 나오는 총 전기료는 약 23만 7천원인데
이 또한 1천 1백 세대가 나눠낸다고 가정하면 다달이 215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경비실 에어컨 구매에 드는 일회성 비용은 각 세대 당 4,090원,
다달이 부과될 전기료는 (운영방침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대 당 215원 꼴이다.
더이상은 할 말이 없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437140_246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