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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Nov 19. 2019

하늘에서 본 촛불의 물결

국정농단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파 모였다



 10만이 모일 거라고 했다.

 


 비슷한 규모의 집회를 광화문에서, 여의도에서 커버 해본 적은 있었지만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이하 지검)과 대검찰청(이하 대검) 사잇길에 모인다니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다. 주최 측 예상 10만이라면 실제로는 몇 명의 사람들이 올지, 그 곳에 그 많은 인파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어찰 것인지, 그렇다면 어디에 올라가 부감을 찍어야 할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집회 취재가 예정된 하루 전, 토요일 근무가 예정된 나는 취재 배정을 받았다. 서초동에서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집회가 있단다. 그때까지 주요 언론과 여론은 조국의 사퇴 촉구, ‘범법자 조국’이 지배적이었다.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의 목소리를 내고자 촛불을 들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그곳에 모여 어떤 피켓을 들고 어떤 구호를 외칠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드론과 ENG*를 이용해 현장을 커버하라.” 나에게 떨어진 미션이었다. 집회의 대형과 실제 규모가 예상되지 않았던 탓에 회사 내부에서의 장고(長考) 끝 마련한 대책은 드론이었다. 18시에 시작하는 집회를 드론으로도 찍고 ENG로도 찍고 20시 뉴스에 맞춰 미리 송출까지 완료할 것. 눈앞이 캄캄했다.


 우선 ‘Ready to Fly’** 어플을 켜고 서초동 일대를 확인했다. 지도상 빨갛게 표시된 ‘비행금지구역’은 아니었고 해당 지역은 ‘비행제한구역’이었다. 내가 속한 부서는 매월 APS(Airline Business Plan Onestop Process System)사이트를 통해 ‘항공사진 촬영 허가’를 득한다. 항공안전법 127조, 항공법 시행규칙 308조, 항공안전법 시행령 24조에 따르면 이를 통해 비행금지구역, 국가보안시설, 군사시설 등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별도 승인 없이 기체 중량 12kg 이하의 기체로 최대 고도 150m이하에선 드론 촬영이 가능하다.


 고로 본 집회의 무대가 될 서초동 또한, 된다는 얘기였다. 캡***의 지시가 이론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부담은 막중했다. 드론과 ENG와 송출, 각 역할마다 따로 인원을 배정해달라는 말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저 그럼 오디오맨****이라도 한 명만 더…….” 토요일 나는 두 오디오맨과 현장으로 향했다.



ENG*(Electronic News Gathering) : 카메라부와 녹화부(VTR)이 결합된 일체형 카메라. 1972년부터 영상촬영에 실용화되었다. 영상기자들의 기본 취재장비로 활용된다.

‘Ready to Fly’** : 사단법인 한국드론협회가 제작한 어플로 드론유저들이 꼭 알아야 할 공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공역뿐만 아니라 드론의 기본 수칙 등을 볼 수 있다.

캡*** : 일선 기자들의 취재를 배정하고 현장에서의 여러 가지 사항을 조율⋅결정⋅지휘하는 부서 내 역할

오디오맨**** : 현장에서 취재하는 영상기자를 도와 장비⋅송출 등 전 방위에 걸친 보조업무를 담당하는 역할. 


190929 뉴스데스크 <국정농단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파 모였다>



 나는 숫자를 세지 않았다



 검찰개혁 촉구 집회와 관련돼 이 날 잡혀있는 리포트는 두 개였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인터뷰만을 모아 한 꼭지*를 만들고 현장의 취재기자를 연결해 라이브로 진행하는 한 꼭지. 현장의 한 팀은 집회 내내 최대한 많은 인터뷰를 확보하기 위해 배정됐다. 나는 그 외 모든 현장 커버를 해야 하는 셈이었다.


 지검엔 16시 30분경 도착했다. 본 집회가 예고된 18시까지는 한 시간 반이 남았는데 한쪽 차선만 통제하기로 돼있던 현장은 이미 양쪽 차선 모두 사람들로 빼곡했다. 지검 내부에서 울타리 너머로 현장을 관망했다. 규모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자그마한 무대차량 앞뒤로는 물론 서초역에서부터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몰려왔다. ‘이 규모를 빠짐없이 담아내야 한다.’ 머리가 아팠다.


 우리 회사의 보도국장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본인의 26년 ‘짬’으로 집회 규모는 ‘딱 보면 딱 안다’고 말해 '딱국장'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지만 이제 갓 입사 만 1년 반이 돼가는 나로서는 사실 어느 정도의 규모가 대략 어느 정도의 숫자인지 잘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날 집회 인파를 보면서도 이게 도대체 몇이나 되는 규몬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그건 나의 몫이 아니었다. 그저 왜곡없이 현장을 담아 전달했을 때 수용자들이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거기까지가 나의 몫이었다. 그런데 아무튼, 많아도 너무 많았다.


 도착 후 장비들은 꺼내지도 않은 채 30분정도 이리저리 다니며 집회장소를 지켜봤다. 드론으로 취재하는 것은 시간이 제한적이라 가장 임팩트 있는 순간을 기해 실시하는 편이 효과적이기 때문. 안전하게 이착륙할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후 머릿속으로 드론 촬영 시뮬레이션을 했다. 드론취재에 있어서는 이 과정이 실제 비행 못지않게 중요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비행을 할 것인지, 어느 방향에서 어떤 각도로 찍을 것인지, 여러 컷을 구성할 경우 어느 순으로 그 촬영을 시행 할 것인지 등. 이런 과정 없이 드론을 이륙시켰다간 멀리서 풀샷 한 컷을 찍고는 그 다음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생긴다. 장문의 글일수록 촘촘히 개요를 짜야하는 것과 마찬가지. 필요한 컷들을 미리 생각해놔야 실제 이륙 후 비행경로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꼭지* : 원고의 작은 묶음, 어떤 글의 제재 등을 일컫던 용어. 기자들 사이에선 흔히 뉴스의 순서⋅개수 등을 세는 단위로 쓰인다.


190929 뉴스데스크 <국정농단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파 모였다>



 5시 즈음 됐을 때 일단 테스트 비행 겸 드론을 띄웠다. 이착륙은 인파가 없는 지검 내부에서 실시했다. 또한 지검 내부에 즐비한 의경들에게 나의 모습을 노출시키고 드론 조종 중임을 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동행한 두 오디오맨은 각각 다른 위치에서 드론을 바라보도록 조율했다. 두 오디오맨들은 통화를 하며 기체의 위치를 공유했다. 이쪽 시야에서 사라지면 저쪽에서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오디오맨 모두의 시야에서 기체가 사라지는 위치가 가까워지면, 다시 보일 수 있는 범위 내로 불러와 비행했다.  


 인파의 끝에서부터 비행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인파의 한쪽 끝은 서초경찰서 앞 누에다리 쪽이었다. 누에다리 상공에서 예술의 전당방향으로 렌즈를 비추자 인파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더욱 실감나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휴대폰의 작은 화면 상 서초역 너머로는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부터가 도로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촛불을 켜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인파는 서초역을 기준으로 3방향으로 뻗어있었다. 제한 고도 내 드론을 최대한 높여봐도 한 프레임 안에 담기가 불가능한 구도였다. 누에다리에서 서초역 네거리까지 드론을 보낸 다음 교대역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며 찍었다. 그렇게 해야 겨우 모든 인파를 컷을 나누지 않고 담아낼 수 있었다. 작은 휴대폰 화면 속에서 수많은 촛불이 일렁였다.



190929 뉴스데스크 <국정농단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파 모였다>



 본 집회가 시작한 서초동 일대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마이크 하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외침이 합쳐져 서초동에 울렸다. 마이크를 든 진행자는 100만이 왔다고도 했고 150만이라고도 했다.


 이게 도대체 몇 명이지, 하는 생각은 그제서야 들었다. 가늠할 수 없었다. 아니, 가늠할 필요가 없었다. 일일이 셀 수 없는 수의 인파는 상공에서 내려다 본 내 화면에 모두 담겨있었다. 판단은 이후의 몫이었다, 보고 느낄 수용자들의 몫이었다.


 서초역 사거리를 직부감으로 비추고 있을 무렵 마침 빼곡한 인파 사이로 한줄기 길이 나고 그 사이로 앰뷸런스가 느릿느릿 지나갔다. 우연한 타이밍이었다. 몇 명의 사람들 사이로 어떤 일이 일어나 누가 탄 엠뷸런스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든 게 미지수였으나 백 수십미터 상공에서도 보이는 ‘홍해의 기적’은 참 감동적이여 보였다. 촛불로 만든 길이었다. 촛불이 만든 길이었다.





 어느덧 박명(薄明) 또한 얼마 남지 않았을 시점이 되어 나는 기체를 불러들였다. 마지막으로 착륙 지점으로 불러오며 드론으로 내려다본 모습은 참 예뻤다. 너무 순진무구하고 낭만적이기 짝이 없는 말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간 그 곳에서 내려다본 촛불의 물결은 참 아름다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드론을 내려 이제는 송출을 시작해야할 시점이기도 했다.


 노트북으로 편집해 송출할 여력도 없었고 별다른 장비도 없어 휴대폰을 통해 웹하드로 송출할 계획이었다. 드론에 들어있던 마이크로SD카드를 빼고 오디오맨의 휴대폰에 끼워준 뒤 나는 ENG카메라와 사다리 하나를 짊어진 채 지검 밖 인파 속으로 향했다.







 오디오맨은 5분을 달렸고, 5초를 내보냈다.



 인파 속에서는 시선을 가장 먼 곳으로 던져 봐도 인파였다. 눈앞의 피켓을 찍고 가장 먼 곳으로 줌을 찔러 넣어 봐도 같은 피켓이었다. 집회 측 트럭에도 올라가보고, 들고 간 사다리 맨 위 칸에도 올라보며 정신없이 녹화 버튼을 눌렀다.


 19시 반이 가까워오자 편집부와 나와 송출을 담당하던 오디오맨은 마음이 급해졌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데이터는 물론 통신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전체 영상을 다 송출하지 못하더라도 17시 20분이 되면 회사에 전화해 그때까지 보내진 영상을 인제스트* 해달라고 말해놓은 상태였는데, 회사에선 단 한 클립도 웹하드에 올라오질 않았다고 했다. 송출에 아무런 진척이 없는 채로 19시 20분, 30분, 40분... 애가 탔다. ‘딱 한 클립만 보내서 드론 그림을 한 컷이라도 쓸 수 있다면…….’ ENG로 지상 취재를 하면서도 마음은 드론 영상 송출에 가있었다.


 이후에 들은 바에 따르면 어쩔 줄 모르던 오디오맨은 마이크로SD카드가 꽂힌 휴대폰을 들고 최대한 인파에서 멀리, 검찰과 반대방향으로 두 블럭을 달렸다고 한다. 그러고 나자 겨우, 파일 업로드 상태 바가 차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고.


 그렇게 송출된 한 클립. 그 중에서도 5초짜리 한 컷이 당일 뉴스데스크에 쓰였다. 8시에 시작하는 첫 꼭지에 들어갈 소스인데도 거의 뉴스 시작 시간이 다 돼서야 보내졌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 컷이나마 어떻게 편집에 넣었는지도 신기할 따름이다.


인제스트* : 영상 취재 원본을 디지털로 변환하여 스토리지에 보관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 이 과정을 거쳐야 영상이 편집 가능한 형태로 변환⋅저장된다. 크게 외부에서 영상을 송출해 인제스트 하는 경우와 사내 인제스트실에 카메라 데이터 저장장치(P2, PFD, SD 등)를 직접 건네 처리하는 경우로 나뉜다.

190928 뉴스데스크 <촛불 집회…주최측 추산 1백만 명 모여>


 당시 현장에서 나는 여러 컷의 드론 영상들 중 어떤 클립을 송출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 클립도 올라오지 않았다는 인제스트룸의 얘기에 오디오맨에게는 아무 파일이나 짧은 걸로 하나 보내라고 해놓은 상태였다. 어떤 컷이 쓰이든 지상에서 찍은 풀샷보다는 규모를 더욱 정확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검찰개혁 집회 리포트들이 끝이 났다. 그날 뉴스데스크에 예정돼있던 현장 라이브 연결은 데이터망 상태 탓에 전화 연결로 대체 될 정도였다. 여러모로 아쉬웠다. 뉴스 이후 시간, 야간 그림을 보충 스케치 한 후 복귀했다.




 “왜 영상기자가 됐냐”는 물음에
이제 나는 2019년 9월 29일의 뉴스데스크를 보여주고 싶다.



 전쟁 같았던 토요일 당직근무를 마치고 일요일 아침 퇴근해 쉬고 있는데 점심 즈음 한 취재기자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보도국장 지침으로 어제 저녁 드론 영상만을 모아서 한 꼭지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집회가 하루 지난 그 시간엔 양 진영 간의 기싸움이 실제 집회 규모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불붙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취재해온 드론 영상이 어느 정도의 파급효과와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한 예상은 하지 못했었다.


 뉴스가 나간 뒤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폭발적이었다. 현장에 참여해 100만, 200만을 외치던 사람들은 영상을 퍼나르며 “이것 좀 봐라”했고 5만, 10만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다. 직접 참여했던 이들에게도 하늘에서 본 자신들의 모습은 새로웠다. 자신들이 만든 당일의 서초동을 본 시청자들은 “저기 보이는 촛불들 중 하나는 내가 밝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더불어 댓글들에 보이는 가장 많은 반응은 '고맙다'는 것이었다. 네티즌들은 ‘거봐 내 말이 맞았지’하듯 드론 영상을 고마워했다. 규모 속에 파묻힌 군중의 한 사람으로서 보아도 믿기 힘든 당시 상황을 상공에서 내려다본 화면으로 대신 전해준 영상이 고마웠던걸까. 유튜브 채널에서도 해당 리포트의 조회수는 해당 언론사의 뉴스 계정 중 역대 2위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 화제성이 뉴스의 ‘영상’에서 기인했다는 것에 뿌듯했다. 방송뉴스의 영상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기뻤다. 규모를 묘사하는 백 마디 수사구보다, 몇 십만이니 몇 백만이니 하는 숫자들보다 힘이 있는 영상을 보여줬다는 것에 자랑스러웠다. 10월 19일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정준희 교수는 해당 리포트가 ‘영상 저널리즘에 한 획을 긋는 보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각 언론사들은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집회의 규모를 비추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겼다. 지상파 3사는 헬기촬영 풀*을 짜 드론을 대체했다. 그 중 한 언론사는 크레인을 빌려 카메라를 달고 부감을 확보했고, 360도 카메라를 활용해 인파 사이를 걸으며 스케치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했다. 집회 인파 위를 지나는 와이어 캠**도 논의되었지만 기술적인 문제와 안전상의 이유로 실행되진 못했다.


 이 모든 노력과 시도들은 현장을 가장 효율적이고 생동감있게 보여주기 위한 영상기자들의 노력을 대변한다. 앞으로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새로운 장비와 도구들이 생겨날 것이다. 각각의 취재 상황에 가장 적합한 장비와 방식을 이용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보도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2019년 9월 28일은, 공영방송사와 한 영상기자가 눈앞에 펼쳐진 현장을 진실 되게 전하고자 노력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풀(Pool)* : 타 언론사들과 협동하여 취재하는 방식. 경우에 따라 시간⋅장소⋅일정⋅위치⋅방식 등을 나누어 취재하고 결과물을 서로 공유한다. 위 경우 각 언론사의 헬기가 모두 상공에 머무르며 촬영하는 것이 안전, 비용 등 면에서 비효율적이니 합의된 한 개 사에서 헬기 촬영을 담당하고 풀에 참여한 타 사들에 원본을 공유했다는 뜻이다.

와이어캠** : 특정 구역 상공에 줄(와이어)을 설치하고 카메라를 달아 조작하는 촬영 장비. 주로 축구 등 스포츠 경기 중계에 사용된다.









본 글은 <신문과 방송> 12월호 용 원고의 초안입니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20634_24634.html?menuid=nw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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