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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Oct 08. 2019

돼지열병, 넌 어디서 왔니?

東으로 東으로 '진군'…"북한서 유입 가능성 높다"



지난 달 중순 전 언론사의 첫 꼭지엔 돼지가 나왔다.

폐사율 100%. '일단 걸리면 다 죽는다'는 말은 상당히 셌다.


인터넷으로 속보를 보자마자 마트에 가 냉동 돼지고기를 사오셨다는 친구네 어머니도 있었고

앞으로 한동안 돼지고기는 못먹겠구나 하며 당장 그날 저녁에 삼겹살을 구웠다는 친구도 있었다.


(다행히 별 일 없었고 난 그제도 삼겹살을 먹었다)


어쨌든 이제 막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9월 17일

나와 여럿은 파주로 향했다.


그 날은 돼지열병과 관련해 잡혀있는 리포트가 여러 꼭지였다.

그 중 내가 만들어야 하는 그림은 '이 돼지 열병이 도대체 어디서 유입됐나'하는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190917 뉴스데스크 <東으로 東으로 '진군'…"북한서 유입 가능성 높다">



그때까지 추측 가능한 경우의 수는 크게 북한에서 돼지열병을 가진 숙주가

-혹은 숙주와 접촉한 다른 생물이- 남동쪽으로 병을 옮겼을 가능성과

한강을 통해 실개천을 따라 열병이 옮겨왔을 가능성으로 좁혀있었다.


(농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돼지열병이 발생한 타 국가에서 옮겨왔을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노동자 중 그 누구도 최근 해외에 나간 적이 없어 그 가능성은 금방 일축됐다)


위 그림은 북한과 한강, 발병농가의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멀찍이 파주 출판단지 부근에서 드론으로 찍은 화면이다.



190917 뉴스데스크 <東으로 東으로 '진군'…"북한서 유입 가능성 높다">



이후 직접 발병농가로 향했다.

앞서 말했듯 돼지열병에 관해 여러 리포트가 예정돼있었고

현장에 간 영상기자 인원수보다 예정된 리포트 수가 많았기 때문에

'그림 품앗이'를 해야되는 상황이었다.


두 명이 찍은 그림과 자료그림을 합해 8~9개의 리포트를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발병농가 근접에서의 그림도 쉴새없이 담았다.



190917 뉴스데스크 <東으로 東으로 '진군'…"북한서 유입 가능성 높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큰 통을 실은 트럭이 통제된 농가 안으로 들어가기에

저기에 죽은 돼지들을 담아오나보다 하며 헐레벌떡 찍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대의 트럭이 드나들었다.

(헐레벌떡 달려가 찍을 필요는 없었다는 얘기. 우씨.)




190917 뉴스데스크 <국내 방역망 '결국' 뚫렸다…4,700마리 '살처분'>



트럭은 이미 여러대가 들어갔고 수백마리의 돼지를 담을만큼의 통도 들어갔으나

돼지는 한마리의 그림자도 안보였다.


가스통들을 실은 트럭 한 대가 들어가 축사 옆에 놓여졌고 그곳에 알 수 없는 장치들이 연결됐다.

아마도 그 곳안에 돼지들이 있었을 것이다.



[미방분] 가스통을 실은 트럭이 축사 옆에 위치해있는 모습



이후 인근 농민 인터뷰를 하고 스탠드업을 찍는 동안에도

돼지가 실려나오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꾸엑꾸엑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


돼지 살처분 작업은 어딘가 분주히, 그러나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190917 뉴스데스크 <東으로 東으로 '진군'…"북한서 유입 가능성 높다">



일몰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작업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제는 슬슬 회사로 돌아갈 인원과

끝까지 남아 돼지의 꼬리라도 한 컷 찍고 돌아올 인원이 나눠질 시간이었다.

 


[미방분] 살처분 된 돼지를 묻을 공간을 확보 중인 작업 모습



나와 함께 나란히 선 영상기자들과 각 신문사들의 사진기자들은

살다살다 돼지 묻히는걸 다 기다려본다며 푸념했다.


서쪽으로 거의다 내려앉은 해였지만 정면에서 내리쬐는 햇빛은 여전히 따가운 날씨였다.

우산 없이는 꽤나 힘든 '뻗치기'였다.


사진기자 분들이 들고 있는 망원 렌즈는 여타 현장에서 봤던 것들에 비하면  

아주길고 두꺼웠다.



[미방분]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모두는

죽어서 묻히게 될 돼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9월 26일에는 돼지열병 의심신고가 들어온 돈가와 또다른 확진 판정이 난 돈가를 돌며 스케치했다.

19일 파주에서와 달리 현장에는 아무 타사도 없었고 나 혼자 통제표시 근처를 헤집고 다녔다.

의심 신고가 들어온 돈가 앞을 지키는 방역본부 직원은 돈가의 모습이 뉴스에 나가면

단지 '의심'스러운 돼지들까지 돼지열병이 걸린냥 보여진다며 걱정했다.


그래도 끊임없이 보도를 하고 관심을 가지게 해 더 큰 피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제 밤에는 자기 전 충남 지역에서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보고 '아 내일은 또 충남에 가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다행히 음성 판정이 나 취재를 가진 않았다)


당분간은 간간히 돼지열병 소식을 접할 것이다.

늘, 음성이길 바란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00032_24634.html?menuid=nwdesk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00036_246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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