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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Dec 13. 2019

홍콩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나가는 중이었다.

홍콩 출장기 <1>

지난 10월 11일부터 16일에는 홍콩 출장에 다녀왔다. 

우리 부서에서만 벌써 9번째 홍콜 출장자였다. 


심해지는 갈등이 수그러들면 출장자들 불러들여왔다가

이내 다시 심해지면 또다시 일주일 단위로 출장자를 파견하는 식이었는데

이맘 즈음엔 홍콩 시위에 경찰이 실탄을 사격하기 시작했고

'복면금지법' 시행으로 시위대의 저항이 더욱 격렬해져 다시금 출장자를 보내게 된 상황이었다. 


출장 전 기재실에서는 취재에 필요한 촬영 장비들 외에

영상기자, 취재기자, 오디오맨, 현지 코디 총 4벌씩의

방독면과 방탄조끼, 군용헬맷, 형광색 프레스조끼 등을 챙겼다. 


늘어난 짐을 갖고 비행기에 올랐다.

전 출장자들의 더위에 대한 경고를 익히 듣고 갔음에도 

홍콩에 내리자마자 후끈한 날씨에 당황했다.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휴대폰 데이터가 터지자 마자 쏟아지던

회사에서의 취재 지시였다.

 


191011 뉴스데스크 <"경찰이 성폭행" 공개 고발…홍콩의 분노 더 커져>



홍콩의 한 바닷가에서 15세 소녀의 시신이 나체로 떠올랐고, 
또다른 여학생은 경찰조사 중 있었던 성폭력 피해를 공개 고발했다고 했다. 



호텔에 급히 짐을 푼뒤 취재 장비를 꾸려 곧바로 시신이 발견됐다던 바닷가로 향했다.



(좌)191011 뉴스데스크 <"경찰이 성폭행" 공개 고발…홍콩의 분노 더 커져> / (우)[미방분]15세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 바닷가



도착한 바닷가에는 물론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곳에서 뉴스에 사용될 '그림'을 만들어내야 했다. 

바닷가의 전경과 지나가던 홍콩 해경의 배 등을 스케치했다.

이후 취재기자를 세워두고 두가지 버젼의 스탠드업*을 찍어 MNG** 를 이용해 송출했다. 

취재기자는 기사도 현장에서 바닥에 쪼그려 앉은채 작성했고 그 오디오 또한 현장에서 송출했다.


홍콩에 착륙한 시간이 현지시간 12시 30분 정도였으니 

취재와 스케치, 기사작성, 스탠드업, 송출을 모두 포함해 

착륙 후 약 6시간만에 그 날 보도될 리포트를 제작했던 것. 


홍콩의 더위와 숨가빴던 일정 탓에 이미 온몸이 다 젖어 있는 채로 첫날의 일정이 끝나가나 싶을 무렵

현지 코디를 통해 근처 쇼핑몰에서 사망한 15세 소녀와 관련된 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탠드업* ; 기사의 특정 부분을 취재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화면에 나와 전하는 방식. 기사 중간에 들어가는 스탠드업을 브릿지(Bridge), 끝부분에 들어가는 스탠드업("OOO뉴스, OOO입니다"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을 클로징(Closing)이라고 한다.

MNG**(Mobile News Gathering) ; LTE데이터를 이용해 취재한 원본 영상을 회사 서버로 송출하는 기기. 송출뿐 아니라 실시간 생중계도 가능하다. 



191012 뉴스데스크 <"진실을 규명하라"…인간띠 잇기로 '항의'>



급히 찾은 쇼핑몰에서는 각 층마다 삼삼오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고 특정 시간이 되자 

우르르 몰려 쇼핑몰 1층 기둥에 저마다의 추모 글귀를 써붙였다. 

일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일부는 소리쳤고 일부는 눈을 감은채 침묵했다. 


이들은 이후 쇼핑몰을 나와 15세 소녀가 발견된 바닷가까지 추모 행진을 벌였고 도착한 바닷가에선 

향을 피우고 가짜돈을 태우며 홍콩의 방식으로 소녀를 추모했다. 



191012 뉴스데스크 <"진실을 규명하라"…인간띠 잇기로 '항의'>



소녀는 시위에 자주 참여했었다고 한다. 

경찰에 잡혀가는 시위대는 이미 너무나 많았고 이제는 시신으로 돌아오는 일마저 생긴 것이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그들은 집으로 숨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거리로 나왔다. 


다음날 첫 일정은 노인들의 48시간 연좌농성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완차이에 위치한 홍콩 경찰청 앞에서 노인들이 48시간동안 침묵시위를 펼친다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의 패기넘치는 전면전을 보며 자기네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48시간 농성 전 있었던 연설에서 한 노인은 말했다. 



191012 뉴스데스크 <"진실을 규명하라"…인간띠 잇기로 '항의'>



당시 홍콩 시위는 점점 심해지는 경찰의 압박을 피해 산발적으로, 급작스레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일시와 장소 등을 그때 그때 공지하고 

모이는 인원만으로 일단 시위를 진행하는 식이었다. 


때문에 그때그때 벌어지는 모든 시위현장을 커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외신인 AP통신과 로이터(REUTERS)통신의 

송출영상을 사용할 수 있게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커버하는 현장은 제외하고 나머지 일정을 커버하는 식으로 취재를 해나갔다. 


매일 여러 현장을 커버하며 우리 취재진과 현지 코디는 동시에 

중문대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학생 소니아 응과의 접촉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었다. 

코디를 통해 홍콩의 한 언론사 기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 기자를 통해 소니아의 텔레그램 아이디를 받았으나 

취재기자가 보낸 인터뷰 요청에 곧바로 답이 오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시위는 각종 쇼핑몰들과 길거리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때쯤 트럼프가 홍콩의 상황에 대해 시위가 수그러들고 있고 이 갈등이 조만간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말을 해 홍콩 시위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191013 뉴스데스크 <홍콩 시위에 '찬물' 끼얹은 트럼프…시위대 '분노'>



이맘때 홍콩 시위대는 젊은 남성 위주로 구성된 폭력 시위대가 여기저기서 게릴라전을 펼쳤고

다수의 시위대는 노래부르기, 색종이 붙이기, 대규모 학종이 접기 등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는 등 

두가지 노선을 모두 펼치고 있었다. 



[미방분] 침사추이 지역에서의 대규모 색종이 접기 집회



침사추이 지역에서 있었던 대규모 학종이 접기 집회는 가히 장관이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각기 다른 크기와 색의 색종이로 학을 접었다. 

홍콩인들은 모두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홍콩의 자유를 염원했고 싸워나가는 중이었다.



191014 뉴스데스크 <성폭행·의문사 의혹에 불붙은 홍콩…'동시다발' 시위>




그리고 그 날 저녁 소니아 응으로부터 텔레그램으로 응답이 왔다.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것이었다. 


소니아 응은 홍콩 경찰로부터의 성폭력 피해 폭로로, 

홍콩 내에서는 물론 홍콩의 상황에 주목하는 세계인들에게 엄청난 화제의 인물이었으나 

그때까지 외신 어디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홍콩 출장기 <2>  '피해자 소니아 응은 당당했다'에서 계속. 








관련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1895_24634.html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3237_24634.html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3238_24634.html?menuid=nwdesk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4288_24634.html?menuid=nwdesk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6239_24634.html?menuid=nw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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