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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Dec 14. 2019

피해자 소니아 응은 당당했다

홍콩 출장기 <2>

홍콩 출장기 <1> '홍콩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나가는 중이었다'에서 계속 



텔레그램으로 인터뷰에 응한 소니아 응과의 만남은 그러나

예상대로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후 4시경에 인터뷰를 진행하고 MNG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송출한 뒤

당일 저녁뉴스로 보도할 계획이었으나

소니아 응이 점심 즈음 텔레그램으로 "sorry" 한마디를 남긴 채 연락이 두절된 것.


나와 취재기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연락이 두절된 채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

이것을 회사에 보고를 해야 하는지로 선배와 나는 약간의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일 뉴스에 잡혀있으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회사에 현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나와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는 취재기자 선배의 의견.


이후로도 몇 시간 동안 소니아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아 회사에 보고하고

우리는 어쨌거나 기약 없는 만남을 위해 중문대로 향했다.

당초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어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약속 시간을 두어 시간만 미루자는 것.

혹시나 불안한 심경에 인터뷰를 할 수 없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우리는 그 정도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과 장소를 포함해 모든 사항을 그녀의 요구에 맞춰 다시 약속을 잡았다.

보도 시점보다는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훨씬 중요한 상황이었다.


중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만나자던 그녀는 그 이후로도

장소를 두어 차례 바꾼 뒤에야 우리를 만났다.



191015 뉴스데스크 <[단독] "성적 수치심 지금도 악몽"…홍콩 '성폭력' 증언>



실제로 보니 더 앳되고 자그마한 체구의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신변을 보호받고자 숙식 등 모든 생활을 중문대 내에서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만나고 중문대 내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한국 영화들을 좋아한다며 특히 <1987>을 감명 깊게 보았다고 했다.


1987년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박종철의 죽음과

수영선수였던 15세 소녀가 바닷가에서 발가벗은 시신으로 떠오른 일이 겹쳐져 보였던 걸까,


박종철군의 죽음을 두고 "책상을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당시 한국 대공수사처장의 말과

시위에 활발히 참여하던 15세 소녀가 아무런 동기도 말도 없이 자살해버렸다는 홍콩 경찰 측의 발표가

닮아 보였던 탓일까.


자그마한 체구로 홍콩 경찰의 반인권적인 조사를 받고 나온 여학생이 언급한 한국 영화로 인해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191015 뉴스데스크 <[단독] "성적 수치심 지금도 악몽"…홍콩 '성폭력' 증언>



인터뷰 장소는 학교 내 기숙사 건물에 위치한 한 공간이었다.

소니아 응과 취재기자가 마주 보고 그 뒤로 통역을 맡아줄 코디가 앉았다.

나는 고프로와 핸디캠, ENG카메라 총 세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이 의미 있는 인터뷰를 촬영했다.


인터뷰를 하며 인상 깊었던 것은 소니아 응의 태도였다.

소니아 응은 주눅 들거나 위축되지 않았고 중문대학교장과의 간담회장에서 보였던

당찬 태도에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많은 것이 두려울 상황에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고발자인 대학생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191015 뉴스데스크 <[단독] "성적 수치심 지금도 악몽"…홍콩 '성폭력' 증언>



사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피해자는 주눅 들고 숨을 필요가 없다.

피해자가 당당하고 가해자가 주눅 드는 모습이 당연한 것이다.


소니아 응의 이 당연한 모습을 보며

나는 이 당연한 일이 당연시되지 않는 세상,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그녀는 잘못이 없었으므로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드러냈고

그녀는 숨길 일이 없었으므로 취재기자의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들을 쏟아냈다.


묻지 않은 사실을 새로이 폭로한 것도 있었다.

같은 구치소에 있었던 남고생은 경찰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당사자한테서 직접 들었다며 그녀는 이런 일을 당한 게 비단 자신들뿐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191015 뉴스데스크 <[단독] "성적 수치심 지금도 악몽"…홍콩 '성폭력' 증언>



소니아 응의 용기 있는 모습이 비단 홍콩의 시민들 뿐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전해져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니아 응이 아직 중문대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것이 두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빠지지 않았으면.

스스로가 망가졌다고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으면.

피해자들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고개 숙이고 주눅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숨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가해자를 향해, 세상을 향해 어깨를 폈으면 좋겠다고.










인터뷰 영상은 ENG카메라에 연결된 MNG를 통해 실시간으로 회사 서버에 송출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남과 동시에 인제스트 된 영상을 잘라 한국에 섭외해둔 광둥어 번역가에게 보낸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길어지면서 MNG에 꽂혀있던 6개의 유심칩이 모두 소진돼

인터뷰 뒷부분은 실시간 송출이 되지 못했다.

여분의 유심칩을 준비하지 못했던 불찰이었으나

다행히도 대부분의 인터뷰 내용이 송출되었었고

뒷부분에서 꼭 써야 할 만한 멘트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 외에도 인터뷰 다음날 리포트 제작 당일이 되어서

회사 내 편집자와 기술적인 내용에 대해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원하던 대로 3대의 카메라 녹화분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실제로 리포트를 보면 소니아 응의 인터뷰는

고프로로 찍은 여러 종류의 풀샷들과 ENG카메라로 찍은 정사이즈 인터뷰로 구성되었는데

핸디캠으로 찍은 소니아 응의 얼굴 타이트샷이 쓰이지 못했다.


대다수 시청자들이 눈치챌 만큼의 단조로움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찍은 사람으로서는 소니아 응이 눈물을 글썽이며 경찰들의 무자비한 행태를 폭로할 때에는

핸디캠으로 찍은 원본이 사용됐으면 더 심도 있는 화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말은 이렇게 점잖게 해도 보도 당일 제작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홍콩에서 나는 사실

편집부장, 전날 인터뷰 원본을 번역가에게 보낸 편집자, 당일 리포트 편집자, 데스크 등에게 전화를 하며  

고군분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 편집자는 각기 다른 원본들의 싱크*를 맞추는 작업을 해내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현장에서 취재를 맡았던 일선 기자들의 아쉬움이었고

리포트를 본 회사 내에서는 칭찬들이 전해졌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현장의 인터뷰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신경 쓰던 국제부장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 언론은 물론 홍콩을 제외한 외신들 중 처음으로

당시 화제의 인물이었던 소니아 응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8038_24634.html?menuid=nw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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