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응원 '한파' 녹여…"최선 다한 네가 챔피언"
연중의 많은 행사들이 1년주기로 돌아온다.
때문에 선배들은 영상기자의 많은 일정들이 1년을 주기로 반복된다고 했다.
작년 늦봄무렵 입사를 한 뒤 두번째 11월, 두번째 수능이었다.
영하 3도. 어김없이 11월 치고 매서운 추위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작년에는 취재 허가를 받은 학교 대부분에 영상기자들이 배치돼
총 10팀 가까이가 새벽부터 열띤 응원 열기를 취재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나와 동기 단 둘만 각각 개포고등학교와 동성고등학교에 배치됐다.
여섯시까지 개포고에 도착했다. 아직 응원단도 오지 않은 시각이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기자와 함께 챙겨야 할 그림과 인터뷰를 상의하고 있을 무렵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트럭이 한 대 학교로 들어갔다.
수십만 학생들의 당락을 결정지을 수능 시험지와 답안지였다.
카메라를 들고 따라 뛰어들어가 관계자들이 시험지를 박스째 교무실로 옮기는 모습을 촬영했다.
다시 교문으로 나오자 삼삼오오 응원단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긴장되는 마음에 잠을 설쳤을 수험생들도 벌써부터 하나 둘 학교로 도착했다.
어머니와 함께 시험장에 도착한 학생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다.
그 어느날보다 떨릴 수험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직 입실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인터뷰를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행여나 딸에게 부담이 될까 "시험 잘 봐라"는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어머님의 인터뷰를 들으며
9년 전 같은 시각 수능장에 도착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부모님도 수능당일은 물론
평소 시험날에도 시험 잘보라는 얘기는 하시지 않는 편이었다.
수능장에 내려주고는 함께 긴장되셨을 마음을 감추며
주먹을 불끈쥐어 들어보이고 쿨하게 뒤돌아서던 모습이 떠올랐다.
날이 밝아오자 뜨거운 응원열기와 함께 수험생들이 몰려들었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렸다가 어깨에 들쳐맸다가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하며
응원단과 수험생들을 쉴새없이 찍었다.
내가 있었던 개포고등학교에는 시험 시간이 다 되어
오토바이나 경찰차 등을 타고 부리나케 들어온 학생은 없었다.
입실종료 시간이 되고 학생들이 교실에 모두 들어갔을 무렵
취재 비표를 부여받은 몇몇 취재진들도
약 10분 정도 허용되는 시간동안 시험장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스케치 하기 위해
학교 건물 1층에서 감독관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수험생이 아닌 입장에서 시험장으로 올라가본건 처음이라 덩달아 나도 긴장됐다.
창문너머로 교실을 찍을 때 수험생 자신이 찍히는게 의식되면 시험에 지장이 있을까
아주 작은 소리도 나지않게 조심했다.
약속된 시간이 끝나고 취재진은 모두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수능 취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수능 날에는 전국의 성당, 교회, 절에서는 시험 시간 내내
수능 수험생 학부모들이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규모가 큰 곳을 가려고 처음엔 조계사를 갈까 했으나
조계사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우리 회사 취재진의 출입을 금하고 있어 (할많하않)
다른 곳을 섭외하던 중 개포고 근처에 도곡동 성당을 발견했고
혹시나 싶어 들어가봤더니 역시나 그곳에서도 수능 기도회가 있었다.
성전 밖에 나와계신 신부님께 명함을 드리고 취재 협조를 부탁드렸다.
("저도 천주교 신자입니다. 미카엘입니다, 신부님"하는 걸 빼먹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세례와 견진을 받은 압구정 본당의 신부님과 친구라시던 도곡동 본당 신부님은
-금세 말을 놓으시며- 흔쾌히 협조해주겠노라 하셨다.
심지어 신부님께서 오전 기도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맞아 나오는
수험생 어머니 한 분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며 애쓰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섭외를 도와주신 덕에 인터뷰도 해낼 수 있었다.
그 사이 봉은사에 협조를 구했다는 취재기자의 연락을 받았는데
상의 끝에 결론적으로 성당에서 이미 커버를 마쳐 그곳에는 갈 필요 없겠다고 판단했다.
리포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위 어머님에게 내가 물은 두번째 질문은
오늘 수능을 마치고 자녀분이 어떤 학생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냐는 물음이었고
어머님은 "여태까지 보여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수능이 끝나고 학생들이 시험장을 빠져나올 무렵에는 이미 밖이 어두컴컴했다.
많은 수험생들이 울었고
많은 수험생들이 웃었다.
시험을 끝내고 나왔을 때의 기분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가 마중을 나왔던 걸로 기억난다.
논술전형을 준비하던 나는 수능이 끝나고도 몇주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주말마다 이리저리 대학교들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도 수많은 시험들이 있겠지만
이 날 하루 인생의 정말 큰 봉우리를 넘은 수험생들.
이날의 긴장감과 그걸 이겨냈던 경험이
앞날의 많은 문턱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수능은 참 이상하다.
수능을 본지는 10년이 가까이 지났고 살면서 고작 한 번 본 시험인데.
아마도 내 자녀가 다시 입시를 준비하게 될 때까지는
나와 사실 직접적으로는 크게 상관도 없는 시험인데도
수능날은 덩달아 긴장이 되고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들을 보노라면 그렇게 짠하고 안타깝다.
생각보다도 너무나 많은게 달려있는 하루라는걸
시간이 지나 사회에 나오며 더 여실히 깨닫게 됐기 때문일까.
그 하루에 그렇게나 많은 게 무겁게 달려있다는게 너무하다 싶어서일까.
수시와 정시의 비율이 다시금 화제다.
수년 전 대폭 늘린 수시 비율을 줄이고 다시 정시로 돌아가야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입시나 교육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무엇이 맞다고 단정짓듯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만 12년의 학창시절이 그 날 하루에 판가름 나버리는 건,
그 하루가 그 수험생의 이후 삶을 너무 많이 좌우하게 되는 건
글쎄,
몇 년 뒤 입시를 준비해야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울 것이다.
입시제도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수능 날이 대단한 취재거리가 아닌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수험생들의 부모가 수능 100일 전부터 108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고
영하의 기온을 기록한 11월의 날씨에 교문 밖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물 일렁이는 눈으로
자녀의 뒷모습을 무겁게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수능 날 컨디션이 안좋았더라도, 12년의 학창생활을 의미있게 기억할 수 있는
실수로 답안을 밀려썼더라도,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기를.
그러나 수시 비율이 굉장히 높은 현재의 입시제도에도 여전히
수능은 너무나 무거웠다.
191114 뉴스데스크 <뜨거운 응원 '한파' 녹여…"최선 다한 네가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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