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레카야자 Dec 19. 2019

피아노보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이 날

인터뷰 말미 아저씨가 흘리시던 눈물이

꽤나 자주 생각났다.




우리가 헬스장에 가서 무산소 운동을 할 때

들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무게가 얼말까?

다리와 허리와 팔 등 온몸의 근력을 총 동원해 어떤 자세로든 말이다.


바벨이나 덤벨처럼 손잡이가 있지도 않은 형태로

200kg정도 되는 물체가 있다면 몇이나 그걸 들어옮길 수 있을까?


여기 그 일을 매일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형폐기물 처리업체 노동자들이다.



191202 뉴스데스크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환경부에서는 대형폐기물 상하차 업무를 최소한 2인 1조로 수행해야한다고

지침을 내놓았지만 무용지물.


인천시 폐기물 처리업체 노동자들을 동행 취재했다.




191202 뉴스데스크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그 날 그의 업무는 첫 판부터 '끝판왕'이었다.

영창피아노에서 폐기한 피아노를 실어옮겨야 하는 일.

시작도 전부터 한숨이 나오는 크기와 무게였다.


혼자서 들어옮기기엔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보고

피아노 가게 사장이 나와 손을 보태 겨우 실을 수 있었다.


다음 장소에는 피아노는 없었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롱과 서랍장 등을 일일히 분해해 실어야 제한된 적재공간에 최대한 많이

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얇은 합판의 장롱을 해체하던 과정에서 발이 끼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191202 뉴스데스크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다음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갔더니

이번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업무과정에서 정강이 살이 찢어지고도 스스로 응급처치를 한 뒤

그 날의 업무를 마무리 하고서야 병원을 찾아 수 바늘을 꿰맸다고 했다.



191202 뉴스데스크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그것은 그 날 그 날 정해진 입고 수거량이 있기 때문.

그 수거량을 맞추고 나야 성과급제에 따라 지급되는 월급을 받게되는데

대형 폐기물에 따라 차등으로 매겨지는 수수료의 75%를 회사가 가져가고

나머니 25%만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191202 뉴스데스크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기사에 언급된 계산을 옮겨적어보자면

"다달이 최저임금을 받으려면 775만원의 매출을 올려야하는데,

수거료 만 1천원짜리 소파나 피아노를 약 700대 정도 옮겨야 하는 수준."

수거량을 맞추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따라다니며 찍기만 하는데에도 송글송글 땀이 날만한 업무강도였다.

보기만 해도 허리와 팔과 어깨가 아팠다.


따라다닌 두 노동자 모두 다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다치지 않는 날이 '운이 좋은' 수준이었다.



191202 뉴스데스크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산재는 커녕 아파서 일을 쉬는 날에는

그놈의 일일 수거량을 하나도 맞추지 못한 것이니

그 달 월급이 깎인다고 했다.


그렇게 받게되는 돈은 최저시급에도 못미치는 액수.


그 외에도 업체 사장은 노동자들 본래의 업무 외에도

여러가지 잡무들을 시킨다고 했다.

하지 않으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며 그날 폐기물 수거 순번을

가장 늦게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갑질을 해댔다.


이러한 여러 불합리한 요구들에도 그들이 뭐라고 항의할 수 없었던 것은

"폐업해버리겠다"는 협박때문.


고용이 불안정한 두려움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그는 눈시울을 붉혔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족들 생각이 먼저 난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는 참던 눈물을 흘렸다.



191202 뉴스데스크 <[바로간다] 2백kg 혼자 '끙끙'…대형폐기물 '신음'하는 노동자>



이미 트럭은 내가 보기엔 아슬아슬 할만큼 차있었지만

인터뷰 후에 그는 서둘러 다음 장소로 향했다.

그 곳에는 어떤 대형폐기물들이 얼마만큼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것들을 어떻게든 쌓아올리고 들어간 그는 오늘의 수거량을 맞출 수 있었을까.

내일은? 모레는? 그렇게 한달을 쌓아올려 그가 받게 될 액수는 얼마일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날 잠시 엿본 그들의 업무환경은,

그들이 업체로부터 받는 대우는 분명히 '천'했다.

하늘 아래 누가 과연 그들을 그렇게 대우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들으면서도 과연 정말 그 정돌까 싶은 조건과 환경 하에서 업무를 하는,

들으면서도 눈물이 날 것만 같던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취재를 한 이후로 수개월이 지나 계절은 한겨울이 됐다.

겨울철이 되면 손가락 마디끝에 동상이 걸리곤 한댔는데..


어제도,

오늘도,

무탈하셨기를.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다시 한 번 들어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여러차례 쉬게 됐다.


뭘 보길래 그렇게 한숨을 쉬냐는 선배의 물음에

그제서야 내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관련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633183_24634.html



매거진의 이전글 어김없이 추운 날이었고, 무거운 날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