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이 안에 담겼던 하루의 풍경
김장철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큰 붉은 다라이를 보다가, 문득 오래된 시간이 함께 따라 나왔다.
요즘은 김장이라는 말보다 ‘구매’라는 말이 더 익숙해졌는데, 그 다라이만큼은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크고, 투박하고, 유난히 붉어서 눈에 잘 띄던 그 다라이.
아주 예전에는 집에 샤워실이 따로 없었다.
목욕은 늘 부엌에서 이루어졌다. 가스레인지 위에 큰 냄비를 올려놓고 물을 데우고, 그 뜨거운 물을 붉은 다라이에 붓던 풍경.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는 늘 말했다.
“물 아까우니까 빨리 씻어.”
그래서 우리는 순서대로 다라이 앞에 앉았다. 먼저 씻은 사람의 물에 엄마가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부어주면, 그다음 차례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지만, 그땐 그게 당연했다. 물은 귀했고, 따뜻함은 나눠 써야 하는 것이었다.
다라이는 단순한 대야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하루의 피로도, 아이들 웃음소리도, 엄마의 한숨도 함께 담겨 있었다. 물 위로 튀는 작은 물방울 소리, 겨울밤 부엌에 퍼지던 따뜻한 습기, 그리고 다 씻고 나와 입던 두툼한 내복의 감촉까지.
지금은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뜨거운 물이 바로 나온다.
샤워실은 집 안에 당연히 있고, 혼자서 마음껏 물을 쓴다. 아무도 “물 아깝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편해졌고, 깨끗해졌고, 훨씬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끔은 붉은 다라이 앞에 앉아 있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불편했지만 함께였고, 부족했지만 따뜻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손길이 늘 곁에 있었다. 물의 온도를 손등으로 먼저 확인하던 모습, 너무 뜨겁지 않게 살짝 식혀주던 그 조심스러움.
김장 다라이를 보며 떠오른 건 사실 다라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꺼내 쓸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물 위에는, 아무 말 없이도 가족을 챙기던 엄마의 등이 비친다.
세월은 이렇게 편리함을 주는 대신, 어떤 장면들을 조용히 데려가 버린다.
붉은 다라이는 아직 남아 있는데, 그때의 엄마와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추억 속에만 있다.
그래서 오늘은 다라이를 보며 잠시 멈춰 섰다.
그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그 물을 데워주던 엄마에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