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어실력은 조선에서 어느정도일까? (1)

by 기네스

조선시대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어 열풍이 불었다. 이 열풍이 시작되기 전, 당시의 조선 상황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조선은 서구 열강과 빠르게 수교를 추진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부족했다. 결국 청나라 관리의 도움을 받아 1882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 이듬해, 방미사절단인 보빙사 일행이 통역사를 대동해 미국 순방길에 나섰다. 이들은 신문물에 감탄한 후 귀국했고, 이를 접한 고종은 미국의 강력한 무력과 기술력을 확인하며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재차 깨달았다.

조선은 이에 대응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을 설립해 영어 교육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40여 명의 학생들에게 지리, 수학, 역사 등 다양한 과목을 영어로 가르쳤다. 고종은 각국과의 교류에서 언어가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판단하고, 나이 어린 영민한 학생들을 선발해 영어를 배우게 했다.

당시 교육은 철저하게 '교이영문영어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는 알파벳부터 시작해 단어, 문장, 나아가 근대 학문까지 모든 과정을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apple은 사과입니다"라는 단순한 연결 대신, 영어로 "This is an apple"이라는 문장을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훈련받았다. 이 과정을 지도하기 위해 프린스턴 대학과 다트머스 대학 등 해외 명문대 출신의 원어민 교사들이 초빙되었다.

영어를 익힌 젊은 관리들은 서양 문물을 배워 조선의 개화에 기여했으며, 그중 일부는 헤이그특사로 파견되어 국제사회에 조선의 독립 의지를 알렸다. 영어는 그들에게 단순한 언어를 넘어, 조선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도구가 되었다.

육영공원의 설립과 함께,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도 문을 열었다. 이들 학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으며, 영어 교육을 통해 출세를 꿈꾸는 많은 백성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심지어 여성들까지 영어를 배우며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 조선인들이 영어로 회화를 할 수 있는 정도로 공부하는 기간은 6개월~1년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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