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우월이 학문적 우월보다 더 직선적이었다
첫 학기 초에 재밌는 공연이 하나 있었다. 티베트승려들의 기도 공연이었다. 내가 처음 칼아트에 우연히 들렀을 때 마주했던 그 넓은 중앙 홀에서 열린다고 들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학교가 술렁댔던 것 같다. 나는 그날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어서 참석은 못했다. 그런데 그 공연이 미국아이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 주었다. 여기저기 스님들의 그림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하얀 친구가 그렸던 티베트불교의 원색적이고도 근엄한 분위기를 잘 잡아낸 스님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왜 디즈니 칼아트에 티베트스님들이?
한 번은 건물 하나짜리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건물 뒤편 쪽인가에서 악기소리가 들렸다. 현대 서양악기는 분명 아니었다. 챙챙 챙챙챙~~ 하는 동양의 소리였다. 한국 것은 아니다. 코너를 돌아보니 진풍경이 펼쳐졌다. 발리댄스를 추는 장면이었다. 발리 원주민 같은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발리댄서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아니 칼아트에 왜 발리댄서들이?
다분히 표면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현상이기는 했다. 그러나 디즈니 칼아트가 동양에 열려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고무적이었다. 동양의 이야기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형식에 넣어보면 어떨까? 현대에서 가장 대중적인 언어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재핵석된 동양의 신화! 사실 이런 발상을 가지고 칼아트에 갔었으니까.
아이디어도 있었다. 불교신화에서 가장 움직임이 많았던 캐릭터 앙굴리말라 산도적도 움직여 보고 싶었다. 깊은 숲 속에 숨어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극악무도한 산도적!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는 붇다를 잡으려다 오히려 지쳐나가떨어져 출가했다는 아주 불교적 이야기이다. 여기서 붇다의 마법에 의해서 아무리 뛰어도 천천히 우아하게 걷는 자신을 못 잡게 만든 장면이 애니메이션으로 떠올랐다. 열을 극도로 받은 앙굴리말리의 초 스피드 뜀박질과 느긋한 붇다의 발걸음이 대조를 이루면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주목을 받던 이철수 판화에도 영감을 받은 상태였다. 철수님의 '소리'와 '별'이란 이미지가 합쳐져서 이야기가 생겼다. 일부러 동양의 젊은 스님을 캐릭터로 삼았다. 스토리보드 초안이 한 끝에 쏟아져 나왔다. 고무된 마음으로 그날 아침,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학과장님을 찾아갔다. 내 스토리보드를 보여드렸다. 그런데 그분 하시는 말씀이 청천벽력 같았다.
"Why do we need to watch the images unfamiliar to us?"
왜 우리(미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를 봐야 하지?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러면 칼아트에 들여온 동양문화는 다 뭘까? 혹시 '우리 학교도 다문화를 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쇼윈도 디스플레이였나?
이런 먹먹한 마음을 가지고 쏜살같이 달려간 곳이 필름 도서관이었다. 졸업작품 목록을 뒤졌다. 거기서 미국문화 이외의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만든 역대 선배들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작품이 하나 있다. 라틴계 영웅 이야기였다. 신화라기보다는 전설에 속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작품을 만든 학생이 자기 문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그렸는지가 느껴졌다. 좀 길긴 했다. 아무도 스토리보드를 봐주지 않은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여기 깊은 도서관 속에 파묻혀있었다. 갑자기 현타가 왔다. Where Am I?
그랬다. 나는 미국문화의 주도자인 디즈니 한가운데 와 있었다. 애니메이션이란 새로운 대중예술을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Snow WHite and Seven dwarves] 함께 탄생시킨 그 디즈니였다. 이들의 문화적 우월감은 하늘을 찔렀다. 사실은 자기 것 이외의 문화에 대하여 무척 배타적이었다.
시대를 의식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자기네 문화에 한계를 느꼈던 것일까? 슬금슬금 동양문화를 겉핥기식으로 맛보기 시작했다. 그때 디즈니 사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인 미와자기 하야시의 [센과 치이로의 모험] 들여와 배급한 것도 그 한 예이다. 여기서 디즈니사가 배급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칼아트에서는 유럽 애니메이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인지 유럽인지 어느 쪽이 더 문화적 콤플렉스를 느끼는 알 수 없으나 문화 주도권을 가지고 신경전을 하는 것은 분명했다.
학과장이 왜 동양색채 강한 내 작품에 그런 거만한 태도를 보였는지 알았다. 물론 나는 외국인 학생과에 가서 불만을 토로하였다. 학과장이 문화적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작품을 못하겠다라고. 그들이 취한 조치는 이러했다. 5세기 불명이란 고승이 쓴 소승불교 경전 [청정도론]이 있다. 당시 불교에 심취해 있던 소수의 교직원이 이 경전에 나온 명상에 필요한 인성분류법을 강의하면서, 동양의 지혜를 캐릭터 기획에 쓰라고 했다. [청정도론]이 이렇게 쓰일 줄은 내 평생 상상도 못 했다. 대단한 제스처였다. 이렇게 문화우월주의였던 학과장은 비겨갔다.
그때 이 작품을 그대로 진행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문화의 중심지에 와서 굳이 동양의 이미지를 어색해하는 관객에게 떠 먹일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영어에는 아직 문제가 있었다. 이젠 서양으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붐을 이루기도 하였다. 동양신화 이야기에만 익숙했던 나에게는 서양의 이야기가 오히려 신기했다. 호기심을 많이 자극했다. 미국 문화 우월주의는 그다지 건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니까
그 뒤로 나는 미국의 문화 우월주의를 여기저기서 경험하고 목격하였다. 학계에도 이런 우월주의가 있기는 하다. 이성적인 학계에서는 지적인 반성들을 항상 동반을 한다. 오리엔탈리즘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니까. 반면, 문화계에서 우월주의는 무척 감정적이다. 영어로 안 좋은 뜻으로 emotional 했다.
내가 칼아트를 졸업할 때 즈음에는 캠퍼스 한 구석에서 아주 이상한 노랫소리도 들었다. 분명 영어인데 발성의 기법이 기묘했다. 동양의 창법이었다. 영어로 창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 미국의 문화는 정체인가? 아니면 정체만 한 것이 아니라 적체일까? 이런 실험적인 시도들이 과연 미국에 새로운 형식의 대중예술을 탄생시킬까?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미국은 자기 문화에 많이 지겨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 10년즈음 지나 한류가 미국을 강타한 것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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