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자퇴를 고민하게 했던 것이 있었다!
칼아트에 입학한 첫 학기에 가장 당황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기싸움이었다. 기싸움이 시작된 것은 칼아트 첫 학기 첫날 첫 수업 아침 9시 필수 라이프 드로잉 Life drawing 수업이었다. 라이프 드로잉 스튜디오는 팔레이스 Palace라고 불렀다. 이외로 크지 않았다. 명성이 자자한 칼아트지만 시설은 매우 겸손한 편이었다. 이 작은 공간에 각 지역에서 각국에서 온 그림 좀 한다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구석까지 메우며 켜켜로 꽉 차있었다.
첫날 모델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타잔 캐릭터가 된 모델이었다. 진짜 타잔 같은 얼굴과 몸을 가진 모델이었다. 실제 사슴을 스튜디오에 놓고 밤비 캐릭터를 만들어냈듯이 타잔 캐릭터도 실제 인물에서 나온 것이다. 의외로 몸집은 작았지만 날렵해 보였다. 그런 그가 커다란 스크린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스크린에는 거대한 고릴라 사진이 떠있었다. 고릴라의 모습과 타잔 모델의 말없고 무뚝뚝한 얼굴은 스튜디오에 꽉 찬 긴장감을 은근 고조시키고 있었다.
모두들 자기 종이 앞에서 다소 긴장하고 있었다. 음악은 남이 들을 때까지, 글도 남이 읽을 때까지 남의 작품을 알 수 없지만 그림은 다르다. 남이 볼 수 있는 오픈된 조건이라면 곁눈질만으로도 남의 수준이 단박에 파악되기 때문이다. 잠시 뒤면 서로의 수준이 다 드러날 판이다. 젊은 아티스트들은 이젤 앞에 서서, 의자 이젤에 앉아서, 혹은 바닥에 거의 누워서 시험대 위에 올라온 신세로 빼도 막도 못하고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 거의 동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때 '우쉬'하는 기운이 스튜디오를 순식간에 휘감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수천만 명이 들썩이면서 떠드는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에너지가 어찌나 대단한지 이러다 연필을 놓을 것 같은 압도감이 엄습을 했다. 실제 하는 기운이 생생하게 나를 지배해 왔다. 내 옆에 소심해 보이던 한국여학생이 절박하게 '언니'를 살짝 외친다.
그때 80세 노장 사부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의 기운을 사용하여 자기 그림을 그려라! Use other people's energy for your drawings!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맞다. 정신을 차리자. 남의 기운에 말리면 안 된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그럴 땐 그 기운을 내치지 말고 역으로 받아서 내 것으로 쓰는 거야. 사부님은 이미 도인이셨다.
사부님의 말대로 하니 서서히 내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 에너지에 남의 에너지를 담아 내 그림으로 흘러들어 가게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혹은 지금 그림을 즐기고 있다, 이런 의식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 사치였다. 그냥 땅바닥에 엎드려 온전히 그리는데 빠져있었다는 기억만 있다.
이렇게 한차례 기운을 빼고나니 첫 번째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얼른 그 공간에서 도망쳐 나왔다. 숨을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 적지 않게 놀랐다. 어쩐지 하와이의 늘쩍한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리던 나의 허니문 시절은 완전히 종료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이 새로운 분위기가 엄청 낯설기만 했다. 이게 뭐지! 경쟁! 경쟁이었다. 나는 '상업'예술의 최전방에 와 있던 것이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돌아오니 내 그림이 없어졌다.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부님이 걷어다가 벽에 붙여 놓으신 것이다. 오! 첫날부터 선택을 당하다니 일차경쟁을 통과한 것일까?
젊은 아티스트들의 기싸움은 한 학기 내내 수업마다 계속되었다. 새로 만난 아티스트들 사이에 이고싸움이 정리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학교에 다니다 보면, 새 학기 시작할 때마다 없어진 동료들이 생긴다는 소문도 들렸다. 비난할 일만은 아니었다. I don't blame them! 경쟁의 분위기가 그만큼 심각했다. 또한 조금 잘한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의 소리도 들렸다. 누가 너의 보스가 될지 아무도 모르다. You never know who is going to be your boss! 이것도 진심 맞는 소리였다. 이런 상업적인 분위기가 그때 내가 받아들여할 새로운 현실이었다.
내가 받아들여할 또 하나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맘 속에서 질문이 하나 웅성대었다. 문제는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였다. 미국 애니메이션 상업예술의 장은 좁다. 괜히 말 잘못하면 금방 사장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실 칼아트가 예술학교가 되기 전에는 디즈니 스튜디오에 입사하기 전 인턴을 훈련시키는 곳이었다고 한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온전한 학교라기에는 뭔가 어수선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행히 선생님 같은 백인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 나 같은 유학생이나 이민자 학생들을 잘 배려해 주시는 분이셨다. 어느 날 이 분하고 면담을 하게 되었다. 기회다 싶어서 용기를 내서 질문을 했다: 여기서는 아무도 아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네요. No one is talking about children here at all. 이 질문에 대한 사부님의 대답은 간결했다:
오, 너 엄한데 와있어,
Oh, You are in the wrong place!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디즈니는 아이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형태는 움직이는 만화였지만 내용은 어른 동화였다. 그때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영화들이 왜 대중성이 있는지 다른 각도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단적인 예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주된 캐릭터가 여성인 까닭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것과 바비전통의 연관관계도 보이기 시작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마지막 장면도 긴 잠을 자고 일어나니 잘 생긴 남편과 평생 먹고 살 재산이 한꺼번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냉소적인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도! 디즈니 황금기에는 이런 전통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조금 있었지만 역시 벗어나지 못하는 기본 틀이기도 했다.
디즈니에 대한 비판은 많이 돌아다녔지만 나는 이 사실을 거기 가서야 알게 되었다. 아직 인터넷이 느리고 디지털발달이 더디고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 섬에 있어서 정보력이 약했던 탓일까? 그때 실망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느껴진다. 내가 너무 실망을 하니까 사부님도 더 이상 말을 못 하셨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대답을 해주신 사부님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그 뒤로 생각이 많아졌다. 뒤늦은 나이에 디즈니 칼아트에 도전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칼아트를 나와 디즈니사 말단이라도 취직하면 좋겠다. 처음에 해야 할 일이 회사 한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하는 색칠작업이라도 좋다. 연봉 5천만 불로 시작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이 일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다. 애니메이션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만 일이 있는 직업이다. 일이 없을 때는 모아놓은 수입에 기대어 내 작품활동도 조금씩 할 수 있을 거란 소박한 계산도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이런 현실적인 바람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무너진 것이다.
디즈니는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만화를 움직이는 기술로 개발하여 대중예술로 시스템을 굳힌 회사였다. 내가 생각한 그런 차원 높은 명분을 가진 회사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이윤과 관계되었다. 애니메이션 창작과정에서 제일로 가치는 있는 것은 돈이었다. 시간도 결국 돈으로 환산되었다. 창작물도 궁극적으로 돈으로 환산되었다. 창작물도 디즈니가 원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창작물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의 창작물이 디즈니에 돈을 가져다주는가가 중요한 곳이었다.
따라서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제 동양문화를 벗어나기 시작한 내가 디즈니 구미에 맞는 창작물을 내놓을 수 있을까에 있었다. 갭이 너무 컸다. 갭이 큰 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또 한 번 딜레마에 빠졌다. Where am I? What am I doing here? 동양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접했을 보다 더 심각했다.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하나 있었다. 칼아트에 있어야 할 결정적인 이유를 하나 찾았다. 그것 때문에 거기서 배우고 졸업을 했다. 지금도 그것은 후회를 하지 않는다. 그것도 언어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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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