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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열 Apr 18. 2018

25년째 제자리걸음인 수능 영어 上편.

수능 영어, 이제 바뀔 때도 되자 않았니?

토익 750 또는 수능 3등급 이상이지만, 영어회화는 젬병인 독자에게 최적화된 글입니다.



1등급


필자가 2010년도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받은 등급이다. 가장 높은 등급이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외국인이 길을 물어볼 때나 수업 중 영어로 발표를 할 때는 이 성적표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비단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도, 내신 1등급을 맞은 학생도 스피킹 영역에서는 다 고만고만하다. 최소 12년 동안 영어를 공부했는데 말 몇 마디 못 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과연 이것이 정상이란 말인가?



오늘의 이야기


영어 커뮤니케이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수능 영어를 비판하려고 한다. 특히 '회화'라는 렌즈를 통해 수능은 어떤 시험인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분석한다. 마지막에는 수능을 포함해 영어 공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해결책을 제시하겠다. 






1. 수능 영어란 무엇인가?


수용적 영어와 생산적 영어의 틀을 가지고 수능을 분석하려 한다. 전 글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두 가지 영어의 종류를 간단히 요약하고 가자.


1) 수용적 영어와 생산적 영어


먼저 수용적 영어 (Passive English)란 영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수동적 영어이다. 리딩과 리스닝이 이에 해당한다. 영자 신문을 읽고 영어 미드를 시청하는 학습은 정보를 단순히 일방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수용적 영어이다.


이에 반해 생산적 영어 (Active English)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 학습자 스스로 영어 문장을 생산해내야 하는 적극적 영어이다. 스피킹과 라이팅이 여기 포함된다. 말하고 싶은 영단어를 애써 떠올려야 하고 문법 규칙에 맞게 조합해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수용적 영어는 양적 차원의 지식인 반면 생산적 영어는 영어 문장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 낼 수 있냐 하는 질적 차원의 능력이다. 차차 살펴보겠지만, 수능 영어는 순도 100% 수용적 영어를 테스트한다.



2) 수능 영어 = 100% 수용적 영어


백문이 불여일견. 아래는 2018년도 수능 영어 영역 문제 중 하나이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8년도 수능


수능 영어는 약 70%가 리딩, 30%가 리스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이팅? 스피킹? 현재 수능 출제 방식에서는 평가하지 않는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수능은 이해와 암기를 테스트하는 수용적 영어의 전형이다. 단어, 문법 등 오로지 지식만을 평가한다.


지문의 길이나 문제의 유형만 조금씩 다를 뿐 45문제 모두 읽기와 듣기 능력만 테스트한다. 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단어를 암기하고 지문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영어 문장을 만들 일이 전혀 없다.


스피킹, 라이팅이 엉망진창이어도 수능에서는 괜찮다. 과거의 필자처럼 꿀 먹은 벙어리라도 고득점 할 수 있다.




3) 수능 영어의 장점


수능 공부를 통해 영어 이해 능력은 기를 수 있다. 내용과 난이도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읽고 듣는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읽고 듣는 수용적 영어가 정확히 수능이 테스트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학습자 입장에서 수능의 장점이라곤 정말로 이것밖에 찾지 못하겠다. 물론 한 가지 장점이 더 있다. 평가 체계로서 수험생들을 '줄 세우기'에는 이만큼 좋은 평가 방식은 없다는 점이다.




2. 수능 영어의 한계점


12년 공교육 결과,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수능의 한계는 스피킹 실력을 전혀 늘릴 수 없다는 점이다. 당연한 결과이다. 아직까지 귀가 트이면 자연스럽게 입도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영어회화가 안 되는 원인: 수용적 vs 생산적 영어」를 읽고 오길 바란다.


12년 간 공부했지만, 언어 학습의 본질인 의사소통을 못 한다. 스피킹 향상에 수능 영어의 기여도는 0을 넘어서 마이너스이다. 다시 말해, 수능 영어는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 남아 스피킹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국제 공용어 중 하나인 영어를 '말하지' 못 하면 직·간접적으로 많은 기회를 놓친다. 필자보다 경험이 많은 인생 선배들이 더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최소 12년 동안 수능 영어식으로 공부한 우리다. 우리는 수용적 영어 학습법을 완전히 내재화했다. 새로운 걸 마주치면 자동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외우려 하고, 정리하려고 한다. 


스피킹 향상을 위해서는 영어 문장을 스스로 많이 써보고 말해보는 생산적 영어 접근을 취해야 한다. 이해와 암기와는 완전히 다른 능력의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피킹을 수능 영어 공부하듯 접근한다. 수용적 학습의 관성 탓에 스피킹을 향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피킹을 잘 하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정작 공부할 때는 또 리딩, 리스닝 공부를 한다. 중요 단어에 밑줄 치고  노트를 정리하고 외운다. 그런데 배운 것을 말해보는 실제 학습의 5%도 안된다. 


수능은 과정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스피킹의 적이다. 스피킹 관점에서 수능은 쓰레기 보다도 못한 존재이다.




3. 문제의 원인 : 수능 영어는 왜 이렇게 지식 지향적일까?


정리하자면, 수능 영어는 반(反) 스피킹·커뮤니케이션이다. 수능 영어는 스피킹에 어떠한 기여도 못한다. 외국어 학습의 본질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수능은 뜯어고쳐져야 한다. 


누구나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세태이다. 그럼에도 왜 수능 영어는 말하기 능력 평가 중심의 시험으로 바뀌지 않는 걸까?



1) 국가 차원에서 줄 세우기 편하다.



수능 영어는 100% 객관식이다. 몇 개 맞았고 몇 개 틀렸는지 명확히 측정되는 점수를 가지고 1등부터 100등까지 쉽게 등수를 매길 수 있다. 채점도 OMR 기계가 자동으로 해준다.


또한 객관적인 정답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험의 공정성을 지킬 수 있다. 지식적 영어 테스트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객관적이므로 비용 측면과 공정성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험 방식이다.


하지만 스피킹이나 라이팅 같은 생산적 영어는 애초에 객관식으로 출제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채점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게다가 전체적 가이드라인은 있을지언정, 객관식처럼 '맞다 틀리다'로 이분화할 수 없다. 보다 정교한 채점 기술이 필요하며 비용도 많이 든다. 게다가 수치화·점수화 기준이 객관식보다 애매해 공정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2) 선생님 입장에서 가르치기 편하다.



문법으로 대표되는 수용적 영어는 전달하기 쉽다. 1:1이든, 1:30이든 문법적 원리를 칠판에 적으면서 설명만 하면 된다. 때로는 한 번에 천 명 단위까지 수강하는 토익 강의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평가 방식도 간단하다.


이에 비해 스피킹과 라이팅은 전달하기가 까다롭다. 아니 '전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스피킹은 능력의 영역으로 학습자 스스로 연습해야만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 따라서 선생님이 학생 한 명 한 명을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지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평가도 까다롭다. 스피킹을 테스트하려면 짧게 라도 1:1 테스트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학습자가 말을 하게 하려면 적절한 주제와 형식의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해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비유를 들자면, 체육을 이론으로 가르치는 거보다 실기로 가르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이유와 같다. 농구 실기 평가를 하려면, 한 명씩 테스트를 해야 한다. 1시간을 어떻게 분배하며, 기다리는 사람은 뭘 하게 하고, 점프는 높은데 자세가 안 좋은 학생은 어떤 점수를 줘야 하는지 모두 고안해야 한다.



4. 영어 교육의 목적


해결책으로 넘어가기 전 영어 공교육, 수능 영어의 목적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혹자는 수능은 대학 입학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100% 객관식이 공정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가장 적합한 시험 형태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질문. 여러분들은 왜 영어 회화를 배우는가? 현실에 발을 딛고 생각해보자.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영어 회화 학습의 근본적인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외국인 친구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출장 가서 외국인 동료들과 회의를 하며, 여행 가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



수능을 포함한 영어 공교육은 언어 학습의 본질인 커뮤니케이션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은 무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직 대학 입학만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대입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수능 영어의 가치는 무엇인가? 특히 의사소통, 스피킹적 측면에서 어떤 학습을 제공하는가? 아무것도 없다. 수능은 어휘, 문법, 독해만 다룰 뿐이지 실제 커뮤니케이션 향상에는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한다.


교육의 최고 목적은 줄 세우기가 아니다. 인재 선별은 어디까지나 교육의 부수적 기능에 머물러야 한다. 교육의 본질은 학습자가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어가는 과정이다. 영어 교육에서 그 무언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의사소통 능력이다. 


따라서 공교육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인 스피킹을 반드시 교육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수능을 개편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책은 「25년째 제자리 걸음인 수능 영어 下편」에서 마저 다루겠다.


「25년째 제자리 걸음인 수능 영어 下편」 보러 가기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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