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는 퍼즐과 같다.
토익 700 또는 수능 3등급 이상이지만, 스피킹은 젬병인 독자에게 최적화된 글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는 다르다고들 한다. 그래서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
근데 잠깐, 다르다는 게 정확히 뭐가 다르다는 건가? 단어가? 문법이? 엑센트가? 그리고 다르면 반드시 어려워야 하나? 더 쉬울 수도 있지 않나?
오늘은 조합이라는 개념을 통해 위 질문에 답하고 회화가 안 되는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해외 경험이 있던 없던, 나이가 몇 이건, 영어를 언제 시작했던, 100피스 차리 퍼즐을 맞출 지능만 있으면 누구나 유창하게 영어회화를 할 수 있다. 5분 분량의 글에서 여러분이 깨달을 사실이다.
선행 글
조합이란 연상한 영어 단어들을 영어 규칙에 맞게 재배열하는 일이다. 아래 한글을 영어로 빠르게 말해보자.
모든 남자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저지르는 세 번째 실수는 / 이걸 정기적으로 닦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수 mistake / 저지르다 make / 닦다 clean / 정기적으로 regularly
The third mistake every guy makes with their phone is that they never clean it regularly.
필요한 단어는 모두 적어두었다. 즉, 모르는 단어도 없고 영어 스피킹의 첫 번째 관문인 연상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위 문장을 버벅거리면서 스피킹 한다. 왜 그럴까?
바로 조합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필요한 단어, third, mistake, make, phone, clean, regularly를 모두 떠올렸지만 이를 영어 순서에 맞게 빠르게 재배열하여 완벽한 영어 문장을 완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연상만 잘하고 조합에 젬병이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완벽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그냥 단어만 툭툭 던지는 수준밖에 안된다.
아래 예시를 보자. 오른쪽 남자분이 "Is the movie theater on the same floor?"라고 물었더니 왼쪽 남자분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단순히 Same floor 대신에 The movie theater is on the same floor이라고 완벽한 문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2 형식 (주어+동사+보어)를 몰라서? Theater라는 단어를 몰라서?
아니다. 알긴 알고, 떠오르기도 했을 텐데, 알고 있는 영어들을 빠르게 조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단어만 내던진 것이다.
이처럼 연상한 후에 조합을 빠르게 해야 비로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영어로 빠르게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문제는 연상 속도뿐만 아니라 조합 속도 역시 매우 느리다는 점이다.
1. 한글 조합 규칙≠ 영어 조합 규칙
영어와 한글이 다르다는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의 조합 규칙이 다르다는 뜻이다. 다음 예시를 통해 영어 조합 규칙이 한글 조합 규칙과 얼마나 다른지, 그래서 얼마나 조합하기 어려운지 느껴보자.
· 여기 주변에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카페 있어?
· 너는 원빈만큼 잘생겼어.
· TV를 많이 볼 수록, 너는 더 멍청해진다.
· Is there any cafe where I can study around here?
· You are as handsome as 원빈 is
· The more you watch a TV, the more stupid you become.
모르는 단어나 문법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위 문장을 영어로 말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문장만 뽑아 놓았기 때문이다.
관계대명사 where, as 형용사 as, the 비교급 the 비교급 영어 조합 규칙은 한글 조합 규칙과 매우 상이하다.
첫 예시에서 한글 문장은 '형용사절 [내가 공부할 수 있는] + 명사 [카페]로 배열되어있다. 그러나 영어 문장은 '명사 [cafe] + 형용사절 [where I can study]로 명사를 뒤에서 꾸며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요컨대, 영어의 조합 규칙은 한글의 조합 규칙과 정반대인 것이다. 나머지 구문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다른 조합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영어로 스피킹 시 관계대명사, as 형용사 as, the 비교급 the 비교급을 얼마나 써보았는지. 아마 거의 써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왜? 조합 규칙이 너무나도 달라서 영어 단어를 재배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 한국어 간섭 현상
비슷한 맥락에서, 영어 조합을 더 어렵게 하는 원인은 한국어 간섭 현상이다. 한국어 간섭 현상이란, 영어 조합을 적용하려고 할 때 자꾸만 한글 조합 규칙이 끼어드는 현상이다.
관계대명사를 말하려면 '명사+형용사' 순으로 배열해야 하는데 자꾸만 한글 조합 규칙인 '형용사+명사' 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문제이다.
그도 그럴게 우리는 이미 최소 20년 이상 한글 조합 규칙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니 갑자기 상이한 조합 규칙을 적용하자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무의식 수준으로까지 익숙해진 한글 조합 규칙을 버리고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는 이링 쉬울 리 없다.
한국어 간섭 현상 전형적인 예시를 보자.
사진 속 인물은 위 대사를 영어로 "I don't think nobody can teach you"라고 말했다. 이중 부정이 되어버려서 의미상 틀렸다. 이 실수가 과연 우연일까?
아니다. 위 실수에는 정확히 한국어 조합 규칙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부정 시 일단 '~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즉, 동사에서 부정을 한다. 하지만 영어에는 nobody라는 명사 자체가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글 규칙과 영어 규칙이 충돌해서 위와 같은 이중 부정 실수가 나온 것이다. 저 분만 그럴까? 위 분은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영어를 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nobody 자체를 애초에 떠올리지 못한다. 한글에는 없으니까.
3. 주어지 시간은 단 1초.
스피킹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스피킹 시 주어진 시간이 1~2초로 짧다는 점이다. 게다가 위의 조합을 머릿속으로 암산해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종이 위에 써도 어려울 판에 1초 내에 종이 없이 조합 규칙을 적용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무작위 숫자 10개를 작은 순서대로 암산하여 1초 내로 재배열한다고 생각해 보라. 영어 스피킹에는 조합 규칙이 여러 개 일 뿐더러 긴 문장일 경우 20개가 넘는 단어를 조합해야 한다.
위 예시만 버벅거릴까? 아니다. 의문문, 가정법, 정관사·관사, 현재 완료, 수동태, no matter~, 가주어 it, as 형용사 as, either A or B, one of the 최상급 등등 한글과 완전히 다르거나 존재하지 않는 조합 규칙이 영어에는 무수히 많다.
게다가 우리의 뇌에는 이미 한국어 조합 규칙 소프트웨어가 패치되어있다. 즉, 우리의 뇌는 한글 조합 규칙을 선호한다. 그래서 영어 조합 규칙을 적용하려 해도 한국어 간섭 현상 때문에 간단한 영어 의문문 조차도 빠르게 내뱉지 못한다.
서로 다른 조합 규칙 때문에, 우리는 영어회화를 못 한다. 정확히 말하면 느리고 버벅거리면서 말한다. 예상 독자라면, 시간만 무한정으로 준다면 충분히 영어 full sentence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느리다는 게 문제이다. 우리의 한글 조합 속도는 KTX급인 반면, 영어 조합 속도는 조선 시대 가마와 맘먹는 수준이다.
2가지 비유를 통해 회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해보자.
1. 회화 = 수학
첫째, 회화는 수학 암산과 같다. 여러 숫자(연상한 단어)를 특정 연산 규칙에 맞게 암산하여 (결합) 정답을 도출해낸다. 예컨대 f(x)=7x+4에서 f(10)을 종이 없이, 암산으로만 아주 0.5초 내로 계산해야 한다.
이 비유로 한글과 영어를 비교해 보자. 한글의 조합 규칙이 f(x)=7x+3이라고 치자. 우리는 f(10)=73, f(5)=38을 0.1초 내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영어의 조합 규칙은 이와 다른 g(x)=2x+5이다. 더 어렵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다르다. 따라서 같은 x값, 10, 5를 넣어도 g(10)=... 25, g(5)=... 15처럼 암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몇십 년 동안 f(x)만 계산하다가 갑자기 g(x)를 하려니 뇌가 적응을 못한다.
2. 회화 = 퍼즐
두 번째 비유는 퍼즐이다. 한 그림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퍼즐을 뽑아서 (연상) 적합한 위치에 두어야 (조합) 한다. 문제는 한글과 영어의 퍼즐 색깔이 다를뿐더러 (연상의 차이), 서로 맞물리는 조각 모양도 (결합의 차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같은 수의 퍼즐 조각 수로, 같은 그림을 완성하더라도 영어 퍼즐이 한글 퍼즐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조합 속도를 올릴 수 있을까? 먼저 하지 말아야 할 영어회화 학습법부터 살펴보자.
Not to do
∙ 개별 문장 외우기
단순히 문장을 외우는 건 회화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 이건 마치 g(x)=2x+5를 실제로 계산하지 않고 g(10)=25, g(20)=45로 외워버리는 것과 같다. 문제는? g(5), g(0.5), g(-100), g(1959) 등 수많은 문장을 다 외워야 한다. 그리고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어회화를 배우는 언어학적 접근」에서 @오뎅작가 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말하는 대부분의 문장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문장들은 우리가 전에 들어보거나 말해본 적이 없는 문장이다".
무한한 문장을 외울 수는 없다. 그 보다는 차라리, g(x)=2x+5 자체를 반복해서 계산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다. 다시 말해, g(x)라는 조합 규칙 자체를 체화시키면 g(x)의 모든 값을 도출할 수 있다.
∙ 큰소리로 소리 내어 읽기
영문 스크립트를 보고 반복해서 큰 소리로 따라 읽는 방식이다. 회화 향상에 도움? 1도 안된다. 왜냐하면 이건 말 그대로 소리 내서 읽는 연습이지, 실제로 문장을 만들어 보는 연습은 들어가 있지 않다.
이건 마치 수학 문제를 답지 보고 베끼는 거 랑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식으로 연산 능력이 올라갈 리 없다. 10번이든 100번이든 아주 큰 소리로 읽는다 한들 결합을 담당하는 당신의 뇌는 여전히 겨울잠을 자고 있다.
∙ Reading & Listening
미드, 영자 신문을 포함해서 단순히 영어를 읽고 듣는 건 회화에 1도 기여를 못한다.
스스로에게 질문 해보길 바란다. 첫째, 60분 미드 시청 시 실제로 말하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되는가? 둘째, 나머지 2분 동안 말을 하더라도 단순히 대사를 따라 읽는가 아니면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 보는가? 아마 58분은 리스닝에 쏟아부었을 것이고 (이게 어떻게 스피킹 공부란 말인가?) 둘째, 대부분 그대로 따라 읽었을 것이다.
수능, 토익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Full sentence가 완성되어 전달되기 때문에 단어를 연상할 필요도, 조합할 필요도 없다. 이런 학습은 스피킹이 아니라 리딩, 리스닝 공부이다.
그러니 아무리 수능, 토익을 잘해도 리딩은 잘할지언정 스피킹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To do
좋은 회화 학습법은 최소한, 아래와 같은 한 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 본다.
= 조합을 적극적으로 하였다
= 문법 지식이 아니라 문법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하였다.
= 암산을 하였다
= 퍼즐 조각을 일일이 맞추어 보았다.
글의 일관성과 분량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 해결책은 잠시 미루도록 하자.
영어 스피킹은 어렵다. 한글과 조합 규칙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름은 상대적 어려움을 의미하지 결코 불가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뒤에 다루겠지만, 조합 속도는 연습으로 충분히 원어민 수준까지도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익혀야 할 조합 규칙은 무한하지 않다. 모든 문법책은 15 챕터를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 실제로 자주 쓰이는 문법 규칙은 고작 해봐야 10 챕터를 안 넘어간다.
영어 스피킹은 분명 가시적이고 끝이 존재하는 학습 영역이다.
정리하자면, 영어 회화를 버벅거리는 주된 두 가지 이유는 첫 번째, 연상 속도가 느리고, 더 중요하게는 두 번째, 조합 속도가 느려서이다. 단어, 표현량이 적거나 문법적 지식 자체가 부족해서가 결코 아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여태까지 시도한 스피킹 학습이 조합 속도에 얼마만큼 기여를 했는지. 만약, no에 가까운 답이 나온다면 여러분은 스피킹에서만큼은 헛 공부를 해온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 속도를 높일 수 있는지, 즉 어떻게 하면 Fluency를 향상할 수 있는지 첫 번째 해결책에 대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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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심규열 소개
100% 국내파 영어 스피커.
제대로만 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영어 회화되더랍니다.
3년 동안 다녀본 회화 스터디만 얼추 50개.
열심히는 했지만, 대부분은 시간 낭비.
긴 길을 빙빙 돌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소중한 자원 낭비 없이, Fluency 80% 이상 도달할 수 있도록,
최고 효율의 영어회화 학습법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