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id Kang Jan 12. 2021

호주흔적#14

사진으로 말해요 : 고양이의 날(내 이름은 노스키)

모처럼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늦은 아침을 만들어 먹는다
가볍게 동네 산책에 나선다
호바트의 라벤더는 프로방스의 것 만큼이나 유명하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당보충을 넉넉히 한 뒤
장을 보러 나선다
저 멀리 제주의 오름같은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의 집 마당에 놓인 귀여운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풀 잎에 가려졌지만 역시나 귀여운 것들이다
장을 봐 온 것들로 이른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고향 생각이 딱히 나지는 않지만 실패없는 맛이다
이윽고 저녁 산책 길
내 눈을 의심한다
저 앞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형상이 고양이가 맞는가?
고양이가 맞는냔 말이다!
호주에는 분명 길고양이가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리봐도 고양이고(그러거나 말거나 핥 핥)
저리봐도 고양이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고양이를 만났다
조심스레 코 인사를 시도해본다
고양이는 너무너 고양이답게 일단 후퇴하고
잠시 망설인 뒤
쓰담 쓰담을 허락해준다
손 길이 마음에 썩 들었던 탓인지
과감하게 배를 보여준다(아낌없는 발라당 시전)
"여보세요"
"우리 방금 만났잖습니까"
"거, 있는 댁 자제분 같은데.."
"아스팔트에서 함부로 배를 까고 그러시면..."
"역시나 가정이 있는 고양이였군요"
"실례지만... 어데 노씹니까?"
그렇게 한참을 뒹굴거리던 녀석을 배웅까지 해주고
다시 산책길을 나서는데
또 고양이를 만났다
또 또 고양이를 만났다
경계심 많은 녀석들이라 가까이 갈 순 없었지만
나의 흥분 지수는 이미 최고치에 달했다
베터리 포인트에 오길 정말 정말 잘했다
오늘은 고양이의 날
작가의 이전글 호주흔적#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