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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ang May 28. 2021

호주흔적#15

사진으로 말해요 : 별 보는 밤

아침이 밝았다
허기를 살짝 달래고
집(숙소) 근처 카페를 찾는다
우유 거품의 온도와 밀도 따위는 봐주기로 한다
몹시 단 것도 한번 시켜 본다
내일 한번 더 찾기로 한다
오늘도 자기 주장을 멈추지 않는 하늘과 웰링턴 산이 보인다
호바트 투어 버스를 만난다
태극기가 반가웠지만 타지는 않고 구경만 한다
광합성 효과로 해때문에 와인 쇼핑을 가기로 한다
베터리 포인트를 품고 있는 성공회 교회를 잠시 보고 가자
고흐의 그림에서 익히 본 듯한 나무도 한번 보고 가자
베터리 포인트를 마주하고 있는 산 마을도 한번 보고 가자
공연히 마음을 흔드는 굴뚝 풍경도 한번 보고 가자
동네 하나 있는 리큐르 샵에서 낚아 온 녀석을 테이스팅 해보고 저녁을 준비한다
완성된다
육고기 못먹는 사람과 물고기 못먹는 사람의 적당한 타협이 적용된 저녁상이다
파스타 삶을 때 발생하는 과도한 면욕심은 전 지구적 국룰임을 깨닫는다
저녁 산책에 나선다
아름다운 구름이 반긴다
고흐의 그 나무도 반긴다
꽃 검색 결과 라.넌.큘.러.스.도 반긴다
마냥 걷다 보니 호바트 메인 시티가 우릴 반긴다
지름길이 있었다는 것도 도착해서야 깨닫는다
며칠 후 투어에서 만날 귀염둥이 악마가 우릴 반긴다
귀염둥이 입간판도 우릴 반긴다
뒤늦게 발견한 지름길을 따라 다시 마을로 귀환한다
어느새 밤이 내렸고 교회가 불을 밝힌다
하늘과 대조되는 빛의 온도로 밝힌다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마을의 껄렁이들은
불 밝힌 교회를 이정표 삼아
마을 끝 해변에 도착한다
어둠에 빛이 수를 놓는다는 뻔한 수식어를 내뱉는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서
엔딩 요정을 꺼냈지만
오늘 밤 별이 잘 보일 것 같단 괜한 말을 던진 탓에
물고기를 먹지 못하는 친구와 육고기를 먹지 못하는 친구는
밤 새 번갈아 별 구경을 하느라 잠을 반 쯤 포기한다
자 이제 진짜로 불을 끌 시간
오늘의 엔딩요정은 착한 사람 눈에는 보일 별 사진으로 대신한다
밤이 내린 베터리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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