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 제일 자주 마시는 ‘술’은 맥주다.
맥주를 처음 마신 날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아아 옛날이여. 내 비록 지금은 소심쟁이로 추락했소만 소싯적엔 청소년 보호법을 비웃으며 주지육림에서 음풍농월하던 제법 그럴싸한 양아치...였던 건 아니다. 그날 내가 맥주 캔을 딴 이유는 친구 아버지의 명령(이었다고 고의로 곡해한 게 맞지만)에 대한 순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1년에 한두 번 친구 A와 함께 친구 B의 집에 가서 잤다. 연례행사 치르듯 주기적으로 남의 집에 민폐를 끼치게 되는데 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우리 셋은 교회 유치부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쭉 알고 지내지만, 사는 동네가 다른데다 멀기까지 해서 애당초 불시에 문을 두드리며 “야!!! 나와!!”식으로 만나는 게 불가능했다.(그땐 별로 안 친했기도 했고...)
와중에 B는 초등학생 때 돌연 캐나다로 나가더니 중학생이 되어 돌아왔고, 고1 때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그 때문에 셋이 모여 놀기 위해선 몇 가지 문제가 꼭 해결돼야 했다. B의 학교가 방학을 해야 했고, 그가 한국행 항공권을 구해야 했고, 귀국 후 일가친척 집 순회를 마쳐야 했고, 마지막으로 세 명의 일정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한마디로, 어려웠다.
그 어려움을 뚫은 경우가 일 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이었다.
오랜만에 모여 놀다 보면 금세 밤이 됐다. 그런데 미성년자는 오후 10시를 기점으로 집 밖의 거의 모든 곳에서 불청객이자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하는지라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쿨하게 “재밌었어! 안녕!! 썩 꺼지렴!^^” 하고 다시 일 년을 기약하기엔 항상 너무 아쉬웠다. 셋 다 예상하던 바다. 그래서 예약해뒀잖은가. 자, 그럼...
‘가자, X박스 360과 위닝일레븐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B의 집으로.’
그날도 B의 집은 편했다. 대문을 여니 요크셔테리어 L이 푸다닥 달려와 맹렬히 짖어대 잠깐 당황하긴 했다. 하지만 L은 그로부터 10분 뒤 내 무릎 위에서 배를 드러내고 누울 만큼 작고 귀엽고 착한 개였다. B의 방에 들어서자 그가 멀리서 왔다는, 그리고 곧 다시 멀리 떠날 거라는 증표 같은 커다란 택배 상자가 한 편에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그 방은 사내놈 세 명이 뒹구는 데 지장 없을 만큼 넓었다. 방안에서 수다도 떨고 게임도 하며 이곳이 남의 집인지 나의 집인지 잊어갈 무렵, 방문이 열렸다.
“나 왔다! 어, 너희들 왔니?” 주말 라운딩을 마치고 귀가하신 B의 아버지였다.
느슨해졌던 긴장이 일순간 바짝 조여졌다. 내가 B의 아버지를 유달리 무서워한 탓이다.
우락부락한 분도 아니셨고, 여느 친구 부모님이 그렇듯 자식 친구들에겐 한없이 친절하신 분이셨다. 그래도 무서웠다. 위험을 감지할 때의 공포감은 아니었다. 근데 뭐가 문제냐고?
‘위엄’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만들면 아저씨의 모습이 될 것 같은 분이셨다.
굉장히 단단한 인상이셨고, 낮은 톤과 큰 성량의 목소리 때문인지 음절 하나하나 또렷한 발음 때문인지 모든 말끝이 느낌표인 것 같았다. 내가 아저씨에게 느낀 무서움이란 그 특유의 오라에 기가 눌린 것이다.
다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심신이 경직되는 느낌, 마치 임원과 마주한 인턴의 마음 같은 것을 왜 친구 아버지에게 느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이제 와 보니 어쩌면 신기였을지도...)
아무튼, 방문은 다시 닫혔고 그 안에서 또 한참 놀았다. 아무래도 한 방에 오래 있자니 답답해져 바람도 쐴 겸 과자도 사 올 겸 다 같이 방문을 나섰다.
불 꺼진 거실에선 아저씨가 소파에 앉아 홀로 축구를 보고 계셨다. 그때였다.
“너희들”
“네...?”(1차 놀람)
“냉장고에 맥주 있다. 한 캔씩들 마셔도 돼. 음... 부족하면 두 캔까지.”
“네...??”(2차 놀람)
한국인은 삼세번이랬다. 이미 두 번 놀랐지만 역시 세 번째가 압권이었다.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만한 명언이었다.
맥주는 술이 아니야! 아침에 (교회)늦지 말고.
그 말씀을 끝으로 아저씨는 안방으로 퇴장(입장인가?)하셨다.
장담하건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가 누구든, 그날의 그 뒷모습만큼 아름답진 못할 거다.
나와 A의 시선은 닫힌 안방 문에서 B에게로 옮겨갔다.
침묵이 흘렀다. 잠시의 정적은 미성년자다운 대화로 깨졌다.
- 뭐냐 이거... 테스트야?
- 그런가? 아닐걸?
- 진짜?
- 맥주가 뭔 술이냐. 괜찮다잖아. 근데 하나만.
- 그치? 마시라고 하신 거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 고.
맥주만큼이나 어른의 말씀도 따라야 제맛이라 정말 한 캔만 마셨다. 그리고 잠들었다.
A와 B가 쿡쿡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더니 두 놈이 인사를 해줬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했다.
“Good morning Tiny” 이게 무슨 소리였는지는 그들이 웃던 이유와 함께 알게 됐다.
나갈 채비를 하며 양말을 갈아 신는데 발가락 다섯 개에 각기 다른 표정이 그려져 있었고, 발바닥엔 알파벳이 큼직하게 쓰여있었다. ‘TINY’
그제야 깨달았다. 간밤에 내가 잠이 아니라 알코올에 취한 거라는 사실을.
성령, 아니, 유성 매직으로 잉태된 ‘Tiny’의 가르침도 있었다.
맥주는 술이란다. 너한테만
집에 돌아와 아세톤을 들이붓고 발을 박박 문지르는 동안 다섯쌍둥이와 그들이 남긴 교훈도 함께 지워졌다. 뒤에 적겠지만 Tiny의 격언이 다시 떠오르는 데까지는 10여 년이 걸렸다. 청소년에서 그 무거운 ‘소’자를 떨어뜨림으로써 ‘민짜’에서 벗어났을 땐, 빌어먹을 ‘가오’ 때문에 소주파가 된 까닭이다. 20대 초중반 남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행태라 큰 부끄러움 없이 적자면 대충 이러했다.
술집에서 소주병 피라미드를 4단 미만으로 쌓으면 계산할 때 ‘가오’가 떨어진다는 친구가 있었고, 맥주 500CC 한 잔을 주문하면 남자로서의 의리뿐 아니라 하반신 일부가 없는 놈이라는 조롱이 먹히는 분위기가 있었고,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객기 도수 98%의 신조를 지키려던 우리가 있었다. 정말 주접 싸고 앉아 있었다.
실제론 돈도 가오도 없던 시절이다. 그게 아니라면 육수를 이미 세 번이나 리필한 탓에 또 달라고 하긴 민망해서 급기야 물까지 부은, 그리하여 부대찌개 ‘였던 것’을 안주랍시고 퍼먹고 있진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