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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 Apr 27. 2024

도서관, 이렇게 만들었어요.

마을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4.

2007년 5월17일(목)     


어제 오후 늦게부터 비가 쏟아졌다. 덕분에 아침이 맑고 상쾌하다.     


 "여러분은 무슨 재미로 사세요?"   
  

생활나눔시간에 도서관사업지원을 맡고 있는 김정숙씨가 물었다. 사는 재미, 글쎄... 아이들 키우고 일하면서 여행도 가끔 하고 살면 재밌지 않을까. 여기저기 사는 재미들이 나온다. 내가 사는 재미는 무엇일까, 다들 자기 생활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한 신문사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수도권20대 후반에서 40대중반 남녀 5백여 명을 설문한 결과 기혼자의 경우 ‘아이키우는 재미'가 ‘돈 버는 재미'를 앞질렀다고 한다. 그 아이들의 행복한 공간이 될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려고 하는 우리들의 일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 예쁜꽃으로 피어났으면.  

   

▲ ‘예쁘지 않은 꽃은 업~따' 로 끝나는 노래 뒤에 ‘그·렇·다'를 꼭 집어넣는 정봉현 반디.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꽃은 참 예쁘다/풀꽃도 예쁘다/이꽃 저꽃 저꽃 이꽃/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조별로 모둠이 정해지고 우리는 모둠별 이름과 서로에게 부르는 호칭이 필요했다. 모둠이름은 모둠에서 알맞은 이름으로 정하고 우선은 호칭을 어떻게 부를까, 몇가지 이름들이 모아졌다. ‘아랑, 반디, 홀씨, 풀무, 길벗'     

아랑은 아이들사랑을 줄인말이다. 반디는 반딧불터의 이름도 있지만 깜깜한 밤에 불빛을 깜빡이며 주변을 빛낸다. 홀씨는 민들레 씨가 널리 퍼져나가듯 우리가 하는 일들이 널리 쓰임받는 뜻으로, 풀무는 쉽게 타지 않는 것에 도움을 주어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는 뜻에서 지어졌다. 길벗은 말 그대로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친구라는 의미이다. 이중에서 반디와 풀무 두 가지가 좁혀졌다.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이름도 예쁘고 부르기 좋은 ‘반디'로 결정이 되었다. 이제 서로의 이름 끝에는 반디를 붙여기로 한다.     


도서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해뜰 마을어린이도서관'은 지난 4월 18일에 개관했다. 도서관이 만들어지기전의 ‘반딧불터'같은 교육 자체도 없었던 때였다. 물론 대전에서 이미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는 ‘알짬, 짜장, 짝꿍, 또바기 등이 모두 같은 경우다.  

▲ 관저동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동영상에 담겨 있다.

    

▲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순하게 잘도 논다.

      

▲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장 조학원씨.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뜻이 있는 엄마들 9명이 모여 마을어린이도서관 ‘해뜰'을 열기까지 조학원(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장)씨의 설명이 덧붙이면서 그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해뜰'은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는가? 작년 6·7월, 관저동과 근처의 가수원동 사람들이 모여 관저동에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엄마들은 이런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용수철처럼 튀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뜻을 모아 ‘알짬'을 찾아가 조언을 듣고 자원봉사자와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았다. 9월 말쯤 설문지를 만들어 마을 동장을 찾아가 면담을 하고 구의원을 만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동네주민들을 만나 설문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와 유치원을 찾아가 ‘이런 뜻에서 도서관을 만들려고 한다, 도와달라'고 했을 때는 복사물과 배포에 직접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파트에 비어있는 경노당 건물을 동장추천으로 제의받았지만 흥정과 조율의 과정이 계속되었다.


9명의 엄마들은 총무나 사서 등 각자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다. 그러는 중에 테마기획사업의 서류에 당첨되었다. 그러나 장소가 확정되지는 않았다. 다시 참여연대와 ‘알짬'의 조언이 필요했고 구청장 면담이 이어졌다. 구청의 결정이 내려지자 소극적이던 동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노당 건물을 어린이도서관으로 쓰기까지 건물주(경노당)와의 흥정은 계속 진행중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주민들 20여명의 참여로 그림책 읽는 엄마들모임이 있었다. 관저동은 전체 인구 5만여명이다.     


1월 넷째주, 드디어 경노당의 허락이 떨어지면서 12월중에 도서관 운영계획과 회칙을 마련했다. 새해가 되고 건물 내부설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4월 18일 마침내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이 열렸다. ‘해뜰'은 하루 30~40여명이 이용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해뜰'은 화장실을 포함해서 20여평이 채 안되는 공간이다.     


해뜰도서관장 조학원씨는 도서관을 만들기까지의 많은 일들을 만나면서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반디'들에게 먼저 걸어간 이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공공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생각들을 계속 이어나가고, 공공기관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으며 어린이도서관 ‘상(像)'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변의 이웃들을 만나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이야기를 충분히 대화하고 의견을 좁혀나가며, 설문을 하면서 동네의 특성을 자세히 조사하고민해야 한다.      


빠르게 앞만 보고 거침없이 달려 온 ‘해뜰'도서관은 지금 무엇을 검토하고 있는가? 원활한 의사소통에 대해 같이 일을 하면서 받는 상처가 있다. 사고구조나 언어형식의 다름을 인정하고 체계적인 의사소통구조를 정리하고 신경써야 한다. 개인적인 차이로 인해 오해가 생길 경우 중재할 사람도 필요하다. 일을 하면서 분기별로 혹은 월별로 평가작업이 있어야 한다. 일을 끊어가면서 다시 시작하고 힘을 모아야 하는 리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뜰'이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먼저 만들어져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알짬'의 틀거리가 있어서 이룰수 있었던 일이었다. 기존에 있는 ‘마을문고'와 어린이도서관은 서로 마찰없이 잘 활성화되는 쪽으로 되어야 한다.   

  

▲ '알짬'에서 자원봉사하는 김은주 반디.

     

"저는 1, 2학년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요. 떠드는 건 기본이고 벽에 낙서를 하지않나, 책장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도 해요. 아마도 그건 아이들의 변화가 가장 빠르다는 것이겠죠."     


‘알짬'에서 온 김은주 반디가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을 얘기하는 시간이다.      


"처음부터 의도된 계획으로 아이들을 만난 건 아니었어요. 석교동 쪽으로 도서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알짬'이 생기고 봉사를 하면서 내 안의 잠재된 면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청소도 하고 책을 읽어주고 정리도 하면서 아이들이 나를 따라하는 것을 볼 때, 아 나는 도서관사람이구나, 나는 도서관에서 일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1년동안 도서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거칠고 막무가내인 아이들이 순하게 변하는 걸 확인할 때 행복합니다. 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그런 아이들로 내가 행복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김은주 반디는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넉넉하고 편안하다. 알짬에서 봉사하며 만나는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떠들 때는 어떻게 할까 궁금하다.      


"저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 아이를 꼬옥 안아주면서 꼬집어줘요."   
  

모여 있는 반디들이 모두 웃는다. 왠지 김은주 반디에게 꼬집히고 싶은 표정이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떠들어요, 어떻게 할까요?' 라는 모둠토론주제가 나왔을 때 ‘뚜껑이 열릴때까지 참는다'고 말했던 반디이다.     


점심을 먹고 모둠별로 정해본 생활수칙을 서로 나누었다. 모둠이름이 정해진 팀을 우선으로 어떤 내용이 나왔을까?     


‘나들목'-들고 나는 일들을 뜻하며 모둠의 반디들은 아침에 인사하고, 사회자를 정한다. 생활기록지를 읽고 하루를 시작하자. 밥이 너무 맛있는데 꼭 밥 먹고 가자.     

‘물꼬글꼬'-물꼬를 트듯 글길도 트자는 뜻이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자, 다른 모둠 사람들 이름을 3명이상 부르고 인사하자, 아침 생활나눔에 충실하자.     

‘강아지똥'-점심때 설거지를 도와주고 아침 교육시간 전에 청소를 하자. 자기컵을 가져오자. 다른 모둠과 교류하자.     

‘아이사랑'-반디들의 주소를 적어 나눠보자. 설거지와 뒷마무리를 하자. 모둠의 변화를 주자       

▲ 김성훈 반디.

    

오후 교육으로는 김성훈 반디의 ‘도서관 모니터링 활동' 내용을 설명하며 진행되었다. ‘모니터'란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디들의 의견이 나왔다. ‘살펴보다, 비교, 제안, 분석, 조사하다...'    
 

우리가 만나면서 교육훈련 ‘워크샵'을 하는데 ‘워크샵(work shop)' 은 또 뭘까? 워크(work)는 일, 상상력, 아이디어, 개설 등의 의미가 있고 '샵(shop)'은 상점, 가게, 진열하다의 의미가 들어있다. ‘워크샵'은 그래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 나온 얘깃거리를 어떻게 잘 배열할지 여러 생각들을 모자이크화(공동작업)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워크샵'은 누구의 생각이든 모든 의견들을 필요로 하는 사업초기에 필요하다. 지나가는 어떤 말이라도 그것이 중요할 수 있다.  
     

도서관 모니터지를 만들기 위해 워크샵의 뜻과 의의, 방법, 실습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6하원칙(누가, 무엇을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에 따라 모둠별로 전지크기의 종이를 한 장씩 받아 내용을 채우기로 했다. ‘저렇게 큰 종이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반디들의 표정이 막막해보이기도 한다. 시간을 정하고 우리는 서로 머리를 모았다.  

   

▲ 각 모둠별로 발표하는 반디들.

      

도서관 모니터링은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공공도서관이나 마을어린이도서관, 민간도서관을 직접 찾아가 도서관이용방법과 운영비, 프로그램과 체계 등을 조사해보는 것이다. 면담대상은 도서관 담당자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모니터링은 좋은 도서관을 만드는데 기여하며 제안하고 자료의 가치로 활용된다.     


처음에 막연했던 내용들이 가닥을 잡혀가면서 ‘아빠의 참여도'와  ‘도서목록선정 기준은 어떤 것이 있는지' 가 모니터내용으로 참신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모둠별로 금요일 오후교육에는 직접 모니터지를 들고 도서관을 찾아가 조사하는 현장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오늘 하루, 관저동 해뜰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동영상을 보면서, 모니터지를 만들기 전 작업을 하면서 반디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 해뜰도서관 경험을 보고 들으면서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함께 하기 때문에 희망이 생긴다. 마을어린이도서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 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드는 일이 마치 특공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하고 발표하고 몹시 피곤하다. 일들이 구체적으로 보이면서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 모니터지 사전 작업을 하면서 흰종이를 보고 막막했다. 처음엔 머리가 하얘지더니 여럿이 같이 해보고 내용이 채워지면서 ‘힘을 합치니까 되는구나' 깨달았다.     

- 아기 모유를 먹이고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참 귀하다고 생각되었다.     

- 아침에 왔다 돌아가는 시간이 복잡하지만 평범한 아줌마들이 모여 서로 힘을 합쳐 나오는 것들이 신기할 정도다.     

- 즐거움에서 오는 피로감이 느껴진다. 밀고나가는 ‘무대뽀'정신이 필요하다.

- 오늘이 나흘째인데 한달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일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면서 머리가 아프지만 한발짝씩 걸어나가는 것 같다.     

- 머릿속에 온통 도서관 생각으로 가득하다. 일과 사명감 사이에서 일에 힘이 실어지고 자꾸만 열정이 생겨나는 것 같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해뜰 동영상을 보면서 나름대로 ‘상'이 세워진다. 나도 결과물에 대해 앞에 나가 뿌듯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반디들과 교육의 힘을 믿는다.     

- 해뜰 동영상에 나오는 글을 내 수첩에 적었다. 내가 약해질 때마다 이 글은 힘이 될 것이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사회를 맡은 김성훈반디는 ‘교육훈련의 목적'이 어린이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일을 좀더 여유롭게 하기 위한 것으로, 실전에 나갈 때는 이 훈련이 오히려 약이 되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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