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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

부제: 가끔은 인해전술이 필요하다.

by enish

얼마 전 가까운 직장 선배와 저녁을 먹었다. 그는 회사에서 평판도 좋고, 역량도 뛰어난 분이었다. 그런데 식사 중에 그 분이 불현듯 털어놨다. "내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더라구. 그게 참 마음이 아프다." 이 말을 듣고 난 두 가지에서 놀랐다. 첫째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분도 '어디선가는' 불편한 시선을 감당한다는 것, 둘째는 20여 년 되는 직장 경력자에게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거 글에서 직장 평판 하락에 따른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약하면, 직장 초년차에 이런 저런 실수를 하고, 안 좋은 주위 시선을 겪더라도 꾸준한 모습으로 내 편을 만들면 중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인간관계와 평판이 개선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내가 깨닫는 것은, 연차와 직장 특성과 무관하게 한국 사회는 자신의 역량과 무관하게 늘 주위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초년생에게는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특히나 직장 내 뒷담화와 험담에 따른 사건 사고도 발생하는 요즈음이다. 안 좋은 직장 문화를 경험한 신입 사원의 퇴사를 두고 누군가는 'MZ세대의 약한 멘탈'을 지목하지만, 나는 기존 선배 세대에서 쌓아놓은 고인물 문화, 역량 대신 연공을 선호하는 문화가 직장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든다. 툭하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워 마녀사냥으로 몰아가는 직장 문화는 (아마 해외도 비슷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기업 고유의 집단주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마음앓이 하는 사람이 존재할테니깐 말이다. (서두에서 50세 다 된 선배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판인데, 젊은 이들은 오죽할까.)


나를 불편해 하는 사람, 혹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 사람과 직접 소통으로 정면 돌파하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가든가. 두 선택지 모두 용기 있고 존중 받을 만한 선택이다. 아울러 나는 두 가지 선택을 모두 경험해봤다. 그런 입장에서 내 경험을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선택지부터 살펴보자.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과 술 한 잔 하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아니면, 티타임도 괜찮다. 툭 터놓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그만큼 진심어린 행동이다. 그런데 이 선택지는 호불호가 강할 수 있다. 먼저 '호'의 경우 상대방과 직접 오해를 풀며 서로 마음을 누그러트릴 수 있지만, '불호'의 경우 내가 진심을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꼿꼿한 태도를 보이거나, 마치 자신이 이겼다는 듯한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보여준 진심어린 마음이 아깝게 느껴진다.


개인적인 생각엔, 10~20년 전이라면 이런 류의 접근이 인간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선 유튜브 등 SNS의 발달로 '확증 편향'이 강해짐에 따라 '인간 대 인간'의 소통과 이해보다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욱 빠져드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마음의 장벽을 세우는 경향 생겨난다. 뿐만 아니라, 진심어린 모습에 마음을 여는 부류라면 애당초 남의 험담은 쉽사리 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든다.


내가 추천하는 것은 두번째 선택지이다. 상대방의 험담과 시선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말 그대로 인해전술(人海戰術)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1명이라면 그만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10명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인간관계 맺기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나를 불편해 하는 사람의 의견이 '극소수'에 불과할 수 있다. (단, 단기적으로 이런 방법은 가시적 효과를 내기 어렵다. 직장 생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사람 사귀기에만 쏟아부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첫번째 선택지이든, 두번째 선택지이든, 중요한 것은 사람이 적당히 외향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내가 억울하거나 불리하더라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제3자로 하여금 '저 사람이 정말 잘못했나?'라는 잘못된 오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잘못된 시선과 편견으로 마음 아프더라도, 담담하게 주변인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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