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아재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당시엔 왜 그렇게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는지, 왜 그런 고난이 내게 왔는지 불평만 가득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면, 참으로 괴로웠던 순간이었음을 떠올린다. 나에게 그 고난의 주인공은 엄마였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온라인 강사일을
시작하면서 미국인 영국인 미얀마 유럽 등
다양한 학생들을 알게 되면서
깨달은 게 한 가지가 있다
그들은 한국어로 이걸 원한다 이런 걸 알고 싶다
난 이런 걸 배우려고 신청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음식부터 어떤 스타일의 학습을. 선호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갑과 을의 관계가 동등한 관계가 성립이 된다는 걸 처음 느꼈던 순간이었다
심지어 머리 안 깜고 화장 안 하고 잠옷으로 수업
을 받아도 부끄러옴 한점 없이 본인이 말하고
싶은 주제부터 가끔은 sns상의 자신들의
비하하는 비꼬는 인종차별도 튀어나온다
즉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그들은 통해서 배웠다
나는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미학을 그들을 통해
천천히 배우고 있었다. 그 결과인지,
나의 사춘기는 마흔에 찾아온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유치원에 가기 전, 밥상머리에서 늘 밍그적거렸다. “엄마, 이거 좀 매운데 안 먹으면 안 돼요? 다 먹어야 학교 갈 수 있어요?”라고 묻곤 했지만, 엄마는 늘 오빠와 비교했고. 어디서 반찬
투정을 하냐면서 한 톨도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얼음장을 놓았다
그렇게 화가 속에서 타고 있었고 억지로 먹은
음식은 결국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배설물로
나왔다
어느 날은 "넌 애가 먹을 때는 안 먹고, 조카 밥을 뺏어 먹니?"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엄마
에게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왜 나는
먹고 싶은걸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엄마음식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너무 짜다 맵다고 못하고
꾸역꾸역 먹었을까?
용기 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엄마, 왜 나는 조카 반찬 먹으면 안 돼요? 제가 좋아하는 걸 물어보신 적 있으세요?”라는 말에 엄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쯧쯧 차셨다
“어느 딸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조카 반찬을 뺏어 먹고 화를 내니?”라고 하셨다. 오랜 시간 나를 억누르고 살았고, 엄마에게 나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고, 알아달라고 소리쳤다.
그 용기를 내기까지는 제임스의 힘이 컸다,
그가 밥 먹을 때 혼자 먹는 게 안쓰러워서 늘
같이 먹어주었고, 고수도 안 먹어도 되는데
그가 좋아하는 쌀국수에 늘 고수를 같이 시켰다
재임스는 내가 구토를 하고 피부가 뒤집어질 때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던 것이다
네가.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리고
나서 내가 먹고 싶은 거 먹자고 했다
엄마였다면 넌 언제 철들래?"라며 혀를 차셨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이제 더 이상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당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를 몸이 보낸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아귀찜
2인분을 같이 먹으러 가기 시작했다
그 대신 재임스는 다른 걸 시켰고 나머지 아귀찜은 집에 포장해 온다
사람은 말을 해야 그 사람이 무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선물도 이걸좋아하겠지가 아니라
어떤 거 좋아해라고 장확 하게 물어보는 게 에너지 낭비도 그의취형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걸.
외식을 할 때마다 누군가의 입맛을 맞추려 애를
썼을까,
그날 이후 엄마와 가족과 외식을 할 때면 난 이거
먹고 싶다 또는 이거 같이 파는 집으로 가자고 당당하게 말한다
마치 사춘기에 걸린 고등학생 같았다. 나도 이제 내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감정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아재 재임스 덕분에 난 마흔에서야 내가 무얼 좋아하고 내가 어떤 감정을 자주 느끼는지 알게 되었다 마치 인사이드아웃 2에 나오는 14살의 사춘기 라일리처럼 말이다
사춘기든, 오춘기든 결국 자신을 찾기 위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재임스에게 고마웠다
엄마가 밤늦게까지 드럼학원에 혼자 연습하는 이유도 나다움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