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의 메인 퀘스트는 결국 나.

스트레스로부터 회복, 그리고 생각의 도약

by 엔조

이번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매주 하나씩 글을 쓰는 일이 때로는 귀찮고 번거롭지만, 쓰다 보면 나의 하루와 한 주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스트레스나 감정의 결까지 마주하게 되고, 때로는 그 자체로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기도 한다.


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고 연주회를 보며 스트레스를 푼 덕분인지 이번 주의 시작은 조금 가벼웠다. 월요일은 여전히 별로인 상사와 함께 시작했지만, 화수 이틀을 붙여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어후 또 지랄이네 하고 흘려보낼 수 있었다.


어차피 그 사람은 곧 떠날 사람이다. 그리고 혹여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다른 일을 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기 시작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책임감을 미리 짊어지고 스트레스받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내 인생의 메인 퀘스트는 결국 ‘나’고, 다른 일들은 그저 서브 퀘스트일 뿐이다.


화수 이틀을 평일에 연달아 쉬는 건 거의 두 달 만이었다. 약속을 잡기엔 애매한 날들이었기에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목욕탕에서 지난 피로를 씻고, 맑게 갠 하늘 아래 한강을 산책했다. 비가 오지 않은 휴일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피로가 씻겨 내려가던 와중에 기분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10년 가까이 응원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도재욱 선수가 드디어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그는 ASL 시즌 1부터 19까지 꾸준히 16강에 오르긴 했지만 성적은 아쉬운 편이었다. 오프라인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아 “도재욱은 오프라인의 도재욱은 별로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물량과 전투는 언제나 팬들의 가슴을 뛰게 했고, 이번에는 테란의 이재호를 꺾고 마침내 결승에 올랐다.


매 경기마다 티켓팅은 실패해 집에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랜 시간 응원해 온 선수가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로였다.


이번 주에는 ‘생각의 도약’이라는 책을 구매해 읽었다. 제목만 보면 참신한 관점의 사고법을 소개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80년대에 쓰인 내용을 최근에 번역한 책이었다.


책의 주된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동적인 공부를 배워왔다. 누군가 알려줘야만 배운다고 믿었고,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타인의 답을 찾는 데 익숙해졌다.” 즉, 우리가 지금처럼 사고에 서툰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 탓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런 내용은 익숙했다.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어본 입장에서, 이 책은 전반적으로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지 못했다. 아침에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정보를 발효시키듯 묵혀야 한다, 잊을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자기 계발서에서 자주 접했던 익숙한 문장들이 반복되었다.


책의 리뷰나 평점 역시 호불호가 갈린다. 자기 계발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괜찮은 책일 수도 있지만, 나처럼 여러 권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건질 것이 적다.


그럼에도 인상 깊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매체가 달라지면 사고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메모장에 적어둔 아이디어를 노션이나 옵시디언 같은 툴로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나며 내 경험이 덧붙여지고, 시각화된 자료가 텍스트로 바뀌거나 텍스트가 그림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매체가 바뀜으로써 생각의 형태도 함께 유연해지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건 딱 두 가지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힘, 그리고 같은 정보를 다른 매체로 정리해 보는 시도가 창의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이 두 가지뿐이다.


이번 주는 무난한 한 주였다. 지난 스트레스를 날려준 산책과 목욕, 빛나던 응원 선수의 승리, 크게 감동은 없었지만, 작은 통찰 하나는 건질 수 있었던 책 한 권.


정말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나를 다시 세우는 데는 충분했다. 가끔은 이렇게 돌아보는 글쓰기가, 지친 나를 다시 일으키는 한 페이지가 되어준다.



keyword
이전 28화가끔은 나를 위해 낭비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