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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나를 위해 낭비가 필요해

지친 일상 속, 조용히 나를 회복시킨 하루

by 엔조

5월 1일부터 6일까지 이어진 긴 연휴. 주변 사람들은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며 행복한 한 주를 보냈지만, 나는 5월 6일 하루를 제외하곤 매일 강도 높은 근무를 하며 보냈다.


직업 특성상 빨간 날에도 쉬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속적으로 이어진 무리한 일정은 나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수인계는 매끄럽지 않았고, 책임감은 무겁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혹시 이 일이 나를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울함이 드리운 한 주였다.


일은 바쁘고 몸은 점점 지쳐가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법이 필요해


예전 같았으면 운동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지인들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이번 연휴에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헬스장은 운영시간이 맞지 않아 이용이 어렵고, 하루 10~11시간씩 서서 일을 하다 보니 퇴근 이후에 운동하기에는 다리에 무리가 너무 컸다.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그저 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뿐이었다.


음식을 통한 해소법은 그나마 클래식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이전엔 포만감이 행복이었는데, 이제는 포만감이 그저 일을 방해하는 더부룩함으로 다가온다. 배가 부르면 몸이 무겁고 느려진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먹는 양도 줄고, 식사 시간도 늘어났다. 예전엔 10~15분이면 다 먹던 식사를 이제는 30~40분에 걸쳐 먹게 되었고 그마저도 억지로 먹으려고 노력하는 날이 많아졌고, 식탐도, 주량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사람으로 받은 스트레스는 사람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했던가. 지인들과의 만남은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남은 힐링 루트였다. 하지만 긴 연휴 기간, 대부분은 여행을 떠나거나 고향으로 떠나버렸고. 긴 연휴 동안 서울에는 나 혼자 남았고, 평소 같으면 유튜브나 침대만 있어도 충분히 즐거웠던 나였는데, 이번엔 달랐다. 억지로 자가격리당하는 듯한 기분으로 집에 머무르다 보니, 그조차도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가 나답지 않아


그래서였을까. 요즘 들어 내가 이전의 나 같지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나는 스스로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집 안에서도 더 이상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면 이제는 외향인이 다 되었나 싶기도 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던 나, 커피 한 잔에도 기분이 좋아지던 내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마치 ‘나’라는 좌표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외출을 통한 회복의 시작


이번 주 토요일은 2주 만에 처음 맞는 주말 휴일이었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났고, 마침 지인이 피아노 연주회를 한다고 해서 응원차 다녀왔다.


지인들과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꽤 오랜만에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 웃고, 떠들고 그렇게 단순한 것들이 나를 조금씩 회복시켰다.


그때 느꼈다. 나는 어쩌면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일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과 감정을 나누는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니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요즘엔 쉬는 시간조차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진짜 휴식”이 더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다.


낭비 같지만 필요한 시간


그날은 오랜만에 정말 낭비처럼 느껴지는 하루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연주회의 여운, 딱히 생산적이거나 발전적인 활동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피아노 연주회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건반 소리가 커서 놀랐고, 아는 곡은 거의 없었지만 “이건 어떤 장면을 상상하며 만든 곡일까?” 상상하면서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연주자들의 에너지와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 그리고 곡 자체가 주는 집중감 덕분에, 익숙하지 않은 곡이더라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만약 곡에 얽힌 스토리나 배경을 더 잘 알고 있었다면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꽤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취업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나는 늘 미래에 대한 걱정, 취업 이후에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압박감, 그리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자기 계발의 강박에 계속 시달려 왔던 것 같다. 그 속에서 어느새 나는 쉬는 법도 잊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시간을 통해 배웠다.


낭비처럼 보이는 시간이 때로는 나를 회복시키고, 나를 숨 쉬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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