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만들어도 비싸게 팔리겠어요
가죽을 자를 때만큼은 숨을 참았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는 종이와는 다르게 질긴 시간과 깊은 사연을 끊어내는 것만 같아서였다.
“오늘은 가죽이네요?”
“응. 재활용 센터에서 가방이랑 벨트가 잔뜩 들어왔거든.”
“그럼 이것들은 이제 무엇으로 업사이클링될 예정이에요?”
우진의 질문에 가죽을 자르던 공예용 칼을 잠시 내려놨다. 그리고 책상 구석에 있는 작은 액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글쎄...”
“어라? 선생님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항상 쓰레기로 버려질 것들을 보면 바로 어떻게 새생명을 입힐지 아이디어가 솟구치신다던 분이.”
실로 그랬다. 누군가에겐 필요없어 버려지는 쓰레기들이 내 손에서 또다른 생명을 얻어 작품이 될 때마다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간질거렸다. 보람이라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어느 정도의 설렘이었던 것같다. 가치를 되찾은 것들이 다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손을 사로잡고, 마음을 사로잡길 바랐다. 그래서 한번 쯤은 세상에서 난 이제 쓰레기가 아니야, 하고 어깨를 펴길 소원했다.
지난 9월, 밀라노에 갔었다. 리니아펠레(Lineapelle:밀라노 피혁 박람회) 참석을 위해 몇 개월 전부터 휴가를 냈다. 그땐 한창 가죽 공예에 내 모든 혼과 열정을 쏟아부었을 때였다. 내게 종이나 나무, 청동 같은 건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가죽은 달랐다. 손대면 느껴지는 생명의 서사. 격동적으로 꿈틀대던 근섬유에 붙어 땀에 젖고, 숨쉬었을 대체 불가의 가치. 어쩌면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잊지 않게 다른 생명의 가죽을 소장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결국 한낱 인간의 욕심일테지만.
그를 다시 기억하기 전까진 확실히 그랬다.
<인체의 경이로움, 그 충격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입구에 큼지막하게 걸린 현수막이 거센 바람에 펄럭이며 호객행위를 했다. 좋은 교육이 될 거라며 학교에서 등 떠민 까닭에 언니랑 함께 간 전시장에서는 역대 최고의 전시가 열렸다. 인체의 신비전. 하지만 그건 ‘신비’가 아니라 ‘기괴’에 가까웠다. 실제 인간의 시체로 만든 전시물들은 온통 피부가 벗겨져 벌건 근섬유가 드러나고, 아주 세세한 핏줄까지 다 볼 수 있었다. 더욱이 그건 마치 살아 움직일 듯한 동작까지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한쪽 팔에 자신의 살가죽을 걸쳐 들고 있는 한 사내. 난 그가 사도 바돌로매 같다고 생각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순교했다던 그를 눈앞에서 생생히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의 살가죽은 무두질 당한 건지 작은 털 하나 없이 깨끗하게 가공되어 있었고, 얼굴과 손, 발까지 온전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내심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게 피부를 떼어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그에게 따로 이름이 붙어있진 않았지만 뭔가 간절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분명 바돌로매를 모티브로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후에 이 전시는 시신의 출처가 불분명하단 이유로 구설수에 올랐다. 인간의 시신을 전시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도덕적 이슈가 불거져 다시는 한국에서 ‘인체의 신비전’을 볼 수 없었다.
“선생님, 또 바돌로매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진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녜요? 지금 저 사진 보고 계셨잖아요. 저거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찍은 바돌로매 입상 맞죠? 저도 올해 밀라노 갔다가 봤어요. 저거 처음 봤을 때, 저 깜짝 놀랐잖아요. 마치 어렸을 때 봤던 ‘인체의 신비전’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우진이 어렸을 때라면 내가 봤던 전시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전시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나와 같았을까. 그들이 선사하겠다던 경이로움? 충격? 감동? 그런데 이야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 그거 아세요? 전시된 시체들의 출처요. 그거... 중국 사형수들의 것이라던데.”
“사형수?”
“네. 그런데 그러고보니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사회에선 인간 쓰레기라고 불렸을 사형수들의 시체가 과학과 교육을 위해서 다시 쓰여진다면 우린 그걸 업사이클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뭐라고?”
말을 마친 우진이 공예용 칼을 들어 내가 자르던 가죽의 모서리를 세모지게 잘라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가치 없는 인생에 가치를 더하는 일인 거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인간을 쓰레기라고...”
“아주 좋네요, 이 가죽. 뭘 만들어도 비싸게 팔리겠어요.”
내 손에 다시 공예용 칼을 쥐어주는 우진의 손에선 생명의 서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마치 인간 가죽을 입은 AI 로봇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