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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이어 붙이기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by Boradbury

크리스마스의 절정이라면 역시 선물을 풀어보는 시간이다. 엄마가 깨워야 겨우 일어나던 아이들도 이 날만큼은 제일 먼저 일어나 트리 앞에 모여있다. 매일 달력 위의 숫자들을 세어가며 기다려온 시간이다. 선물은 과연 무엇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이토록 설레게 하는 걸까? 트리 아래에 쌓여 있는 선물 더미들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선물(膳物) 상자를 열어 보았다. 영어로는 Present. 이것의 또 다른 의미는 ‘현재’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현재, 지금 이 순간이 선물이라고들 한다. 과거를 붙들지 말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란 뜻이다. Present가 동사로 사용되면 발음은 좀 달라지지만 ‘보여주다’라는 뜻이 된다. 뮤지컬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지금 이순간’이라는 노래 가사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Presented by JEKYLL


지킬 박사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지금(Present), 그가 보여주고자(Present)한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선한 면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면이었을까? 어쨌든, 그래도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지킬로써의 정체성은 이 노래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엔 한자가 다른 선물 상자도 한 번 열어 보았다. 바로 선물(先物)이다. 이것은 원래 경제용어인데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현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종목’이다. 하지만 한자 자체의 뜻으로만 본다면 먼저, 혹은 미리 주는 물건이다. 이 선물을 영어로 하면 Futures가 된다. 미래의 복수형이니 ‘미래들’ 정도가 되겠다. 이것들을 모두 이어 붙이면 ‘미래들은 미리 주는 선물’이란 뜻일 수도 있다. 조금 다르게 말을 바꾸어 보면, ‘미래들을 미리 주는 것이 선물’이다. 이것은 아직 풀지 않은, 그래서 언젠가는 풀어볼 선물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풀어볼 날만 기다린다. 그것이 선물이 가지는 본질이며 실망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건 결코 선물이라 할 수 없다.

이번엔 모양이 조금 다른 선물 상자도 열어 봤다. Gift다. 이건 재능이란 뜻도 되는데 신께서 주신 선물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공짜로 주어진 재주이니 이것 역시 좋은 선물이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받을 선물 중 가장 크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선물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걸쳐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자신의 Gift를 사용해 준비한 작은 음악회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선물을 하나씩 뜯을 때마다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그것은 자기가 원하고 기대했던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은 우리를 언제나 행복하게 만든다. 현재와 미래도 그러하고, Present와 Gift도 그러하다. 선물(膳物)도 좋고, 선물(先物)도 좋다. 지금 막 풀어본 선물은 기쁨을 주어서 좋고, 미래에 풀어볼 선물은 기대하기에 좋다.

아이들이 첼로와 피아노, 플룻으로 크리스마스 노래를 연주한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재능(Gift)을 보여주는(Present) 것은 부모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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