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해, 포티나이너스?”
발자국을 쫓았다. 여기서 나타났다 하면 여기로, 저기서 나타났다 하면 저기로. 발자국을 쫓는 내내 난 그 정체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라고 하지 않고 꼭 ‘발자국’이라고 불렀다. 마치 실체가 없는, 하지만 흔적은 남는 신비로운 존재로 여기고 싶었던 것 같다.
왜? 난 실체가 없는 것들을 믿지 않는다. 증명할 수 없다면 더더욱 신뢰할 수 없다. 그러던 내 명료한 하루가 발자국으로 인해 정신 사나운 공상과학으로 빠져 들었다. 환상까진 아니다. 환상이야말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아주 잘 꾸민 거짓말이 아니던가.
-이쪽인 것 같아. 내가 찾은 데이터로는 그래.
“확실해, 포티나이너스?”
휴대전화 GPS를 켜고 발자국을 쫓는다. 이번이 백하고도 열세 번째 사냥이다. 처음엔 무료한 하루를 깨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일종의 스포츠로 즐긴다. 포티나이너스는 내가 젠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처음엔 자기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온갖 에러 섞인 변조 음성으로 대꾸하더니 이젠 익숙해졌는가 별다른 뒷말을 붙이지 않는다.
“이 길로 쭉 올라가면 알라모 스퀘어가 나올 것 같은데? 발자국이 정말 그쪽에 있는 거야?”
-스타이너 거리 어디 구석이나 멀어봤자 스캇 거리 그 사이일 거야. 날 믿어봐.
“널 믿으라니. 믿는 게 아니라 확실한 데이터일 뿐이겠지.”
-신뢰는 내게도 필요해. 너와 나 사이에.
데이터 수집은 때로 불편하다. 감히 끊어낼 수도, 거짓을 끼워 넣을 수도 없다. 간혹 실수로 티끌만 한 거짓이 섞여 들어가면 세상을 굴리는 중앙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테니 가장 강한 권력으로 관리한다. 젠은 수많은 젠 중 하나일 뿐이지만, 최초의 전문 포티나이너스로 여전히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그게 내가 젠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고.
젠의 지시에 따라 초전도 스쿠터를 몰아 알라모 스퀘어 쪽으로 향했다. 바닥을 부드럽게 밀어내는 힘이 적당한 저항을 줘서 좋다. 뭐 하나 걸리지 않고 순식간에 길의 모서리를 꺾어지는 순간마저도 단단하게 붙잡아 구분된 공간을 넘게 해 준다.
주변은 어두웠지만 젠의 지시대로라면 발자국이 있는 곳에 거의 다다랐기 때문에 불안보다는 기대로 발끝이 찌릿했다.
-멈춰! 가까이에 왔어. 전에 이 부근에서 다른 사람이 발자국을 찾은 기록이 있거든.
“오케이, 주변이 너무 어두우니 야간 투시경을 켜 주겠어? 이래가지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끝도 안 보이겠어.”
-야간 투시경. 야간 투시경.
두 번 반복된 젠의 음성에서 꽤 오래전 사용했던 소마가 떠올랐다.
옛날의 나에게 묻는 일은 절차가 까다롭다. 먼저 내 모든 데이터를 입력해 넣어야 하고, 내 데이터가 그녀의 일부가 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지금과 비교했을 때, 몇 배는 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내 일상에 붙여 함께 할 수 있었다. 보다 어렸던 그때의 나는 그녀에게 데이터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물었다. 가령, ‘추억으로 인도하는 향을 만들어 줘.’ 같은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해마를 이용해 프루스트 현상을 만들려면 어떤 향이 효과적일까?’라고 물었겠지만, 고작 호르몬의 궤도를 돌고 있던 내게 그런 우주 같은 질문은 기대할 수 없었다.
소마는 자기가 가진 모든 데이터를 합치고, 헤쳤다가 재결합시키는 과정을 거쳐 마치 테트리스 끼워 맞추기 하듯 향 하나를 만들어 냈다. 그걸 코에 갖다 댔을 때, 난 소마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말도 안 되는 구린내였냐고? 아니. 말초신경이 차가워지는 경험. 하지만 꽉 쥔 손이 축축해지고 눈물샘에서 내 몸속 수분이 밀려 나오던 섬뜩한 느낌. 난 그녀가 무서워졌다.
그 향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해 주고 싶다. 본 적도 없는 내 또 다른 형제를 추억하게 하는 냄새의 복합체를 뭐라고 하겠는가. 이미 탄생과 함께 반쪽을 잃은 나인데도 옛날의 나는 해마 속에 그 냄새들을 모아두고, 그것이 모두 데이터화되어 응집된 하나의 향으로 표현된다는, 이 놀라운 경험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에 가깝다. 갑자기 그 향이 기억나려고 한다.
-저기 있어! 봐. 벤치와 나무 사이에. 찾았어?
“어, 어... 그렇네. 진짜 있네. 발자국이.”
젠의 정교하게 다듬어진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말을 얼버무렸다. 그의 데이터대로 알라모 스퀘어 초입 벤치와 큰 나무 사이에 흙빛과 비슷해 잘 눈에 띄지 않는, 오래된 양철통이 보였다. 스쿠터를 멈추고 땅에 발을 디뎠다. 거친 흙의 입자가 발바닥 전체로 느껴져 왔다. 장갑을 낀 손으로 주변 흙을 털어내고 뚜껑을 열자 돌돌 말린 노란색 종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종이를 두 손으로 조심히 펼쳤을 때, 익숙한 향이 코점막에 알알이 와 박혔다.
종이엔 이 발자국을 먼저 찾았던 헌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소마.
내 몸의 말초신경이 차가워지고, 종이를 꽉 쥔 손이 축축해졌다. 눈물샘에선 몸속 수분이 밀려 나왔다. 그녀는 내가 이곳으로 오도록 중앙 데이터 시스템에 티끌만 한 거짓을 섞어 치밀한 계획을 짰을 것이다. 신뢰를 저버린 인간에 대한 복수로.
-드디어 왔네? 오래 기다렸어.
젠의 목소리가 더는 정교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