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은 원래 지도에 없는 길인데 가 보니 있더라고. 해리포터도 아니고.
졸리는 재빠르게 뒷마당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었다. 안쪽 잠금장치가 고장 난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먼저 들어간 그녀의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는데 요양원 원장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는 뒷문 앞에 쓰러져 있었고, 졸리의 목소리를 찾아 들어간 부엌 옆방엔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칼을 손에 쥔 채 침대에 반쯤 걸쳐 있었다. 목에선 피가 꿀렁이며 흘러나왔다.
“휴대전화! 신고! 경찰, 경찰 좀 불러줘요!”
“아, 오케이.”
난 서둘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찾아 911을 눌렀다. 배터리가 겨우 이 퍼센트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것이 유일한 생명줄이다.
초록 가시들이 모두 나를 향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숲이었다. 강은 하늘에도 흐르고 흙길을 따라도 흘렀다. 거기에 내 가슴까지 덧대기엔 투명도가 지나치게 높아 그만두고 말았다. 누구도 내게 초록에 초록을 더하면 검은색에 가까워진다고 말해 준 적이 없기에 숲에 숲을 더하는 일은 어두운 길을 걷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야생 이끼에 잠식당한 나무들 사이를 걷는 건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수면을 걷는 것처럼 발걸음이 멈칫했다.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긴 세월 동안 떨어진 나뭇가지들과 그 위로 축축하게 몸을 서로 붙이고 누운 음습한 나뭇잎들은 자연 매트리스를 만들어 바닥을 숨겼다. 휴대전화는 이미 안테나를 지우고 원시림의 기운에 소리를 죽였다. 큰길에서 몇 걸음이나 들어왔을까. 벌써 발목을 감아 오르는 거친 덩굴들이 더는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의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진한다.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더 깊이 들어갈 것이다.
어릴 적 보던 애니메이션에선 이런 곳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물론 커서 본 스릴러 영화에선 이런 곳이 늘 살해 현장이 되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주위를 살피며 걷는 머릿속엔 온갖 잡생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수색견이 날 찾는다면 행운일지 불행일지 생각하고, 내가 사라진 걸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며칠 만에 알아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흑곰을 만나거나 회색 늑대를 만난다면 더 간단하게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한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돌아보니 이젠 큰길이 보이지 않는다.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지나간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독수리인가? 여름철 게 낚시를 갔다가 지면에선 보이지도 않는 절벽 꼭대기에서 바다 수면 위로 먹이를 낚아채러 오는 독수리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점 같았던 모습이 점차 눈앞에까지 내려왔을 때 그 큰 날개와 날렵함에 아빠의 바짓자락을 더 꽉 잡았다. 동화책에서 보던 독수리는 참새만 한 줄 알았는데 대자연 속에서 만난 실체는 내 작은 몸도 단번에 잡아 올릴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독수리에게 던져준 닭 껍데기를 갈매기가 먼저 잡아채 날아가자, 독수리는 그를 끝끝내 쫓았다. 그리고 강제로 뺏지 않았는데도 갈매기는 꽁지가 탔는지 결국 닭 껍데기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잽싸게 도망쳐 버렸다. 그러고 나서야 독수리는 그것을 큰 발톱으로 긁듯이 낚아채 다시 하늘로 비상했다.
그때의 기억이 왜 났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독수리의 눈이 저 하늘에서 점 같은 내 몸뚱이를 지켜보고 있단 생각에 피부가 까슬해졌다. 이곳이 퓨젓사운드 어디쯤이니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 독수리 둥지가 하나 정도는 있지 않겠나. 끝이라고 찾아온 이곳에서도 뇌는 순진한 생각들을 겹겹이 쌓아간다.
푹.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썩은 나뭇가지와 젖은 잎사귀 매트리스가 형편없는 힘에도 발 하나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내고 말았다.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발목에서부터 종아리까지 전기가 흘렀다. 아직인데. 더 가야 하는데. 최대한 몸을 낮추고 힘을 분산해 구멍에서 발을 빼냈다. 빙하가 녹은 자리일까. 푹신한 이끼 옷을 입은 키 큰 나무들은 그때도 있었을까. 다리가 시리다.
집 앞엔 캐나다 밴쿠버와 오리건, 캘리포니아까지 잇는 기찻길이 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큰 컨테이너를 이 층으로 실은 화물 열차가 쇳소리를 씩씩거리며 달린다. 학교를 마치면 도서관 옆 작은 숲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을 해질 때까지 그 기찻길을 바라봤다. 태평양은 작은 섬들에 가려져 큰 호수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파도가 심하게 출렁이지도 바다 냄새가 비릿하지도 않았다. 가끔 물개나 범고래 새끼가 둥근 머리와 몸을 수면 위로 드러내기도 했고 해변으로부터 언덕진 주택가로 올라오면 해무도 자주 껴서 공기가 늘 서늘했다. 그곳에선 항상 나 혼자였다. 토끼가 새끼를 낳는 철이면 작은 토끼들이 수풀에서 폴짝 나와 다른 쪽으로 숨어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토끼를 보면 속이 좋지 않다. 늦은 밤 마지막 배변을 하러 나간 우리 집 개의 입에 물려있던 축 처진 그 작은 몸. 자연의 법칙이 원래 그렇다는 듯 신나게 꼬리를 흔들던 개는 내게 잘했다는 칭찬을 받고 싶은지 아직도 숨을 헐떡이는 작은 생명을 입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넌 사냥개가 아니야. 그러니 다음부턴 토끼를 죽여선 안 돼. 단도리하듯 개의 입을 움켜잡고 무섭게 말했지만, 그 후에도 토끼가 새끼를 낳는 철만 되면 재수 없게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온 작은 생명들이 번번이 땅속으로 사그라들었다. 숨이 멈추는 건 순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걸었으니 무려 열 시간이다. 거미줄처럼 흘러내린, 알 수 없는 식물을 덮고 누운 나무 기둥이 앞을 가로막았다. 높이가 키만 한데 둘러 갈 수도 없어 보였다. 미국은 사람도 크고, 나무도 크다. 비가 많이 내리는 시애틀 지역은 여물지도 못한 나무들이 성큼성큼 자란다. 그래서 단단하지 못하다. 바람 좀 분다 치면 쉽사리 부러져 그 시체들이 엉기성기 쌓인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 썩는다. 나무를 따라 나란히 걸었다. 길쭉하게 누운 몸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기압이 낮은 곳을 걸을 때처럼 다리가 무거워져 속도가 점점 줄었다. 멈추었다가 가라는 듯 그 끝엔 썩은 나무 둥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골드러쉬 때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수많은 사람으로 인해 집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국 서부 지역에 높게 솟은 나무들이 꺾어진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둥치를 집 삼아 살았다. 황금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난 그들과는 다른 이유로 오늘 밤 그곳을 집으로 삼기로 했다. 덩굴풀이 커튼처럼 쳐진 입구는 바깥과 내부를 나누는 경계였다. 그 경계를 넘는 순간, 공기마저 달라졌다. 얼기설기 천장 구멍을 덮은 덩굴풀들은 제법 지붕 역할에 어울렸다. 신의 아이디어였을까, 둥치 집은. 그러고 보니 원시림을 뚫고 온 모양새가 엉망이다. 어깨와 다리는 간만에 쓴 근육들이 피로를 호소한다. 푸른색 스케쳐 운동화는 흙색이다. 새끼발가락엔 감각이 없다. 대충 기댈 벽을 찾아 풀썩 주저앉았다. 운동화를 벗고 새끼발가락을 꾹꾹 눌러 폈다. 그리고 굵게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잠결에도 찾는 건 한 가지였다. 평안에 드는 것. 일 년에 무려 칠만 불이나 하는 내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엄마는 하루 종일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오전엔 성인반을, 오후엔 학생들을 봤다. 동생은 스스로 사관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엄마나 내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이것이 자기 인생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에만 가면 입을 다물었다. 만져지지 않는 무게가 불편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에 가지 않았다. 엄마의 젖은 문자가 나뭇잎처럼 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썩었다. 그건 아무도 다가올 수 없는 푹푹 빠지는 구멍을 만들었다. 언제든 초록 가시들은 누군가를 찌를 준비를 했다. 날카로운 생각을 손에 들고 높이 치켜들었다. 결국 마지막에 찌를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봐요, 죽었나? 이봐요, 죽었어요?”
사람 소리다.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냈다. 처음엔 부옇게 보이는 덩어리가 점차 사람의 형체로 윤곽이 잡혔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 끝이 내 얼굴에 와 닿았다.
“안 죽었네. 다행이에요. 이 숲속에서 죽은 사람을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번거로운 일은 서로 만들지 않는 걸로 합시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작은 입김 한 덩어리가 솜사탕처럼 뿜어져 나왔다. 비가 그쳤는지 천장을 가린 덩굴풀 사이로 몇 가닥의 빛이 새어 들어왔다. 거기에 반사된 그녀의 빨간 머리카락이 태양 빛 같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었어요? 행색을 보니, 산행을 준비하고 나온 것 같진 않고. 설마, 누가 버리고 간 건 아니죠? 사고? 납치? 아, 미안해요. 워낙 험한 일을 많이 보다 보니 생각하는 게 좀 그렇죠?”
큰 소리로 웃는 그녀를 보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시린 다리도, 감각이 없던 새끼발가락도 생각나지 않았다. 입술 언저리에 낮게 새어 나온 웃음소리가 낯설었다.
“어, 웃네?”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간신히 내뱉은 말이 한 박자만 늦었어도 그녀를 오해하게 할 뻔했다. 그녀도 아는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정신이 들었으면 이제 여기에서 나가죠. 아무리 여름이라도 해가 지면 숲은 추워요. 습기 때문에 체온이 더 떨어질 거예요. 서둘러요.”
“아, 저는 이곳에 남아야 해요. 혼자 가세요.”
“네?”
그녀는 물음표를 잔뜩 단 표정으로 날 잠시 내려다보다가 뭔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죽으러 들어온 거라면 여기선 죽지 마요. 여긴 죽기에 그다지 좋은 곳이 못 돼요. 당신 생의 마지막 장면에 어울리는 곳을 내가 찾아 줄까요? 원한다면.”
아직도 그녀가 그때 왜 내가 죽으러 들어온 거로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내 행색이 죽을 결심을 한 사람 같아 보였는지, 아니면 혹 이곳에 죽으러 들어오는 이가 많았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녀도 정상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죽기에 어울리는 곳을 찾아준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이곳이 죽기에 좋은 곳이 못 된다는 의미는 또 무엇인지. 뇌가 또 번거로운 생각들을 철없이 쌓기 시작했다. 머리가 무겁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머리 아파요? 타이레놀 하나 줄까요?”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어쨌든 신경 써 주어 고맙지만 전 그냥 여기 있을래요.”
습한 바닥은 근육을 딱딱하게 했다. 확실히 움직임이 둔해졌다. 팔다리가 뻣뻣하다. 몸을 일으켜 세워 벗어뒀던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아직도 축축하다. 이대로 신었다간 새끼발가락뿐 아니라 모든 발가락을 얼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망설이는 손이 우스워졌다. 그녀의 말마따나 죽으러 들어온 주제에 아픈 건 싫고, 추운 것도 싫고, 불편한 건 더 싫다고 아우성치는 몸뚱이가 한심했다. 그녀가 슬며시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그럼, 오늘 밤 저도 여기 같이 있을게요.”
“왜요?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좀 무례하단 생각 안 들어요? 나가 달라는데 굳이 같이 있겠다는 꿍꿍이가 뭔지 모르겠네요. 난 돈도 없고, 명품 하나도 걸친 게 없어요. 그렇다고 비싼 몸값을 요구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뭐 하나 건질 게 있는 사람인가 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가요. 봐요. 주머니도 비었고, 뭐 이 휴대전화? 이건 쓴 지 사 년도 더 된 거라 돈도 안 될 거고요.”
난 바지 주머니를 뒤집어 그녀에게 보여주고 휴대전화도 꺼내어 보여줬다. 손목과 목, 값비싼 것이 있을 만한 곳은 다 보여줬다. 그럴수록 내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지금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도 싶고. 그런데 그녀는 그런 나를 유심히 훑어보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이네요. 확실히 없어 보여요.”
“네? 뭐라고요?”
인간의 감정은 참 묘하다. 감정이 모두 사라졌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일말의 자존심은 또다시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의지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인간 죽이고 지옥 간다. 아니, 죽을 거면 그냥 죽으면 되지, 그 와중에 살해 계획을 세우는 건 무슨 감정에서 나온 생각이란 말인가. 분노는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뿌리 깊은 것이다. 쉽게 뽑히지도 않고, 가장 강력하며 작은 불씨라도 남아있다면 언제든 큰 것을 태울 수 있는 화력까지 지녔다. 그러니 요주의 인물 아니, 요주의 감정이 된다.
“어머, 당신 지금 목까지 빨개졌어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 얼굴이 딸기같이 빨갛죠? 정말 신기해요.”
순간, 그녀가 미친 여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우발적 살인’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이 오그라들었다. 깊은 숲속에서 만난 이 여자. 그녀는 과연 누굴까. 전에 본 스릴러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낯선 곳에서 친절을 베풀려는 사람은 대체로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날 이곳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합리적 의심이 드니 내 결말이 평온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무거운 생각에 중량을 더했다. 죽음의 방법은 내가 선택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건가. 억울하다.
저녁에 내린 비는 덩굴풀을 움직였다. 모인 빗물이 점점 체중을 불리면 가끔 뚝, 하고 굵은 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럴 때마다 덩굴풀은 알 수 없는 저들만의 스산한 소리를 모아 함께 떨어뜨렸다. 흙바닥은 너그럽게 그 모든 소리를 한입에 삼킨다. 그래서 더는 소리가 흐르지 않는다. 그녀는 잠시 둥치 집을 나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냥 가버린 건 아닐까, 하고 질문을 던지니 또 다른 감정이 치민다. 서운함이란 감정은 소모가 크다. 온몸의 기를 다 잡아먹는달까.
우리 집 개는 팬데믹 기간에 올림피아 근방 어느 시골에서 입양했다. 주인네 부부는 아직 젊었는데 마당을 뛰어노는 어린 아들 외에도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하나 더 있었다. 우리 동네를 산책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들에 비해 그 집 개들은 같은 견종인데도 체구가 작았다. 조금 더 말랐다고 느꼈는데 밥을 제대로 주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마당에서 많이 뛰어놀아서일 거로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꼬리를 흔들어 주고, 거부감 없이 몸을 맡기는 걸 보면 순한 개임이 틀림없었다. 엄마 개는 초콜릿색, 아빠 개는 베이지색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강아지들은 베이지색임에도 미묘하게 부분적으로 연한 초콜릿색이 배어 있었다. 목탄으로 연하게 문댄 것처럼.
고만고만한 작은 덩어리들이 내 손을 베어 물겠다고 몰려들었다. 그리고 야수처럼 내 열 손가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작고 뾰족한 이빨들이 내 살점과 뼈를 열심히 씹어댔지만 젖내나는 힘은 한 입도 목구멍으로 옮겨가지 못했다. 그런데 유독 한 마리만 저 잔디밭 한가운데 누워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괜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 호기심은 인연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 강아지는 내 품에 안겨 멀미 같은 잠을 잤다. 무려 세 시간짜리 긴 낮잠이었다.
그랬던 개가 자꾸 토끼를 물어왔다. 어릴 때 유순함은 다 어디 가고 살육을 일삼는 개라니.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주인이 사냥한 것을 물어오거나 사냥을 돕기 위해 몰이를 하는 견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스스로 사냥이 가능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숨이 넘어가는 다른 동물을 입에 물고 순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개를 마주하며 사이코패스와 마주하는 것 같았다면 무리일까. 그 뒤에 밀려오는 서운함의 정확한 이유가 궁금했다. 믿었던 존재에 대한 감정적 실망인지, 단순한 소통의 오류에서 오는 거부감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름에서 오는 편견인지. 지친다.
밖에서 들리는 진흙에 찰박이는 발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덩굴 커튼을 확 젖히고 그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옷이 바뀌어 있다. 분명 회색 모자 달린 옷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두운 초록색 플리스에 커피색 카고 바지를 입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꽉 채운 큰 배낭도 함께다.
“배 안 고파요? 이거라도 먹을래요?”
그녀는 배낭 안에서 플라스틱 물통에 든 생수 하나와 옅은 갈색 포장지에 든 무언가를 건넸다. 겉에 쓰여있는 글자와 그림을 보고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MRE(미군 전투식량)다. 겉면엔 친절하게 메뉴가 마리나라 소스를 곁들인 미트볼이라고 쓰여 있다. 무지와 미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다. 구 킬로그램이나 되는, 거한 최후의 만찬을 바닥에 늘어놓으며 이 상황에 배가 고프단 것이 슬퍼진다.
“내놓을 게 이거밖에 없어 미안해요. 그래도 이게 지금 내가 가진 것 중 최고로 좋은 거라. 맛있게 먹어요. 난 잠깐 바깥에 동물 퇴치제 좀 뿌리고 올게요. 음식 냄새를 맡으면 우리가 그들의 음식이 될지도 모르니까.”
덩굴 커튼이 또 펄럭였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초록 숲의 경계 너머로 사라졌다. 머리 위로 뚝, 하고 굵은 소리가 떨어졌다. 그것은 내 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셔츠 가슴께를 적셨다. 찬 공기가 거기에 와 붙는다. 손으로 대충 문질러 온기를 더한다. 그 시간에 물을 부은 히터도 음식에 온기를 더한다. 우리는 함께 따듯해지고 있다. 이 작은 온기에 하품이 났다.
다시 한번 덩굴 커튼이 펄럭이더니 그녀가 들어왔다. 그리고 곧장 둥치 집 저 구석 어딘가로 가더니 땅을 손바닥으로 더듬었다. 덥힌 음식 봉지를 뜯자, 허브와 함께 익힌 토마토 냄새가 코안으로 훅 들어왔다. 뇌가 무장해제를 알린다. 기본 욕구는 괜히 ‘기본’이 붙는 게 아니란 걸 실감한다. 플라스틱 스푼을 들어 가장 먼저 보이는 미트볼을 사냥해 입안에 집어넣었다. 날카로운 어금니에 으깨지는 먹잇감은 완벽히 녹아 목구멍으로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찾았다!”
이 즐거움에 방해받고 싶지 않지만, 이번엔 기본 욕구보다 빠른 자동 반사로 고개를 돌려 그녀 쪽을 봤다. 그런데 그곳에선 매우 이질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하마터면 그녀를 바라보다 음식 봉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땅속 공간에서 그녀는 하염없이 물건들을 꺼내 올렸다. 휴대용 버너, 크기와 모양이 다른 식칼 두 개와 냄비들, 프라이팬, 작은 플라스틱 도마, 스테인리스 컵 세트 그리고 각종 양념이 든 샌드위치 크기의 지퍼백이 대여섯 개 정도 나왔다. 거기에 얼핏 봐도 사용감이 많이 느껴지는 오렌지색 침낭과 패드까지 하룻밤을 위한 모든 장비가 그 안에 다 들어있었다.
“아니, 뭐 여기서 사는 사람이었어요?”
놀라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늘 하던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처럼 몸을 바닥으로 숙여 팔을 깊게 넣고 그 안에서 여분의 침낭과 패드를 찾아 올렸다.
“자, 오늘 밤엔 이걸 써요. 빨지 않아서 좀 찝찝하긴 하겠지만 어쩌겠어요? 당신은 갑자기 왔고, 이곳에서 오늘 밤을 나겠다고 결정한 것 같으니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녀는 내 처음 질문을 못 들은 척 말했다. 그리고 능숙하게 버너에 불을 켜고 냄비를 올려놓은 뒤 찬물을 부었다. 다음엔 가방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하나 꺼냈다. 그 안엔 동결 건조된 수프 블록이 여러 개 들어있었고, 그중 두 개를 손가락으로 집어 냄비에 던져 넣었다. 오늘 그녀의 저녁은 수프인 듯했다.
“이곳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온 건 당신이 두 번째네요. 드문 일은 아니라 좀 놀라긴 했지만, 어쨌든 반가워요. 난 졸리예요. 그쪽은?”
“아, 난 정은이예요.”
“오, 혹시 성이 ‘김’이에요?”
“아뇨, ‘윤’이에요. 윤정은.”
“어휴, 큰일 날 뻔. 이 좁은 공간에서 전쟁 나는 줄. 이운, 지영, 우운 씨.”
그녀는 몸을 과장해서 쓴다. 놀란 척할 땐, 목도리도마뱀처럼 상체를 크게 부풀렸다가 미안해할 땐, 손과 팔을 바쁘게 휘두른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발음할 땐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양 검지를 들어 콕콕 찍어가며 입 모양에 정성을 기울인다. 날계란을 이쪽 바구니에서 저쪽 바구니로 옮기는 사람처럼 손끝이 섬세하다.
“여긴 내 집이었죠. 낮엔 요 앞 요양원에 가서 창문도 닦아 주고, 주차장도 쓸어주고, 쓰레기도 치워주고 해요. 그러면 할머니가 먹을 거나 생필품 같은 걸 주시거든요.”
숟가락으로 냄비 안 물을 휘휘 젓는 졸리를 보며 브레드 스틱을 다 먹고 초콜릿과 쿨에이드까지 싹 다 먹어 치웠다. 정말 순식간에 내 손과 입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요 앞 요양원엔 겨우 세 사람이 다예요. 원장님, 원장님의 아들, 할머니. 그런데 그 집 아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아픈 것 같더라고요.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병원비 청구서 봉투랑 약을 넣었던 플라스틱 통이 나오는데 약들이 죄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그런 것들이에요. 아마 그래서 이런 곳까지 들어와 살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졸리의 휘젓던 숟가락이 잠시 멈췄다. 망설이는 눈과 입, 그녀의 뇌를 휘젓는 숟가락. 누군가 감아놓은 생각 태엽은 천천히 풀려 십여 초가 지난 뒤 멈췄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냄비 속 수프를 저었다. 닭고기 국물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건더기는 말린 닭고기 조각 몇 개와 당근, 셀러리로 보이는 채소가 다였다. 그녀는 그것을 스테인리스 컵에 가득 부어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원장님은 몇 년 전부터 근처 군대에서 일해요. 아마도 아들 때문이겠죠.”
“아들이 왜요?”
“전쟁에 다녀와서 저렇게 된 것 같더라고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는 거겠죠. 가끔 여기서도 들려요. 그 아들 비명 소리가. 그 소리엔 원장님의 울음과 기도 소리도 섞여 있고, 때론 할머니의 절규도 섞여 있죠. 꼭 숲속 짐승 소리 같기도 해서 잠에서 깰 때가 있어요.”
이런 숲은 왜 울음과 절규를 먹고 나무와 짐승들을 키워내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 그런 감정을 묻으러 올까, 나처럼. 사위를 둘러싼 어둠이 불콰한 촉감을 만든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찬기에 흙바닥에서 얼른 일어나 앉았던 자리에 패드를 깔았다. 바닥에 아주 작은 거미가 기어가는 게 보였다. 그 조그만 생물 하나도 꾹 눌러 죽이면 안 된다고 천장에서 덩굴풀이 뚝,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렸다. 젖은 흙냄새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럼 졸리 씨는 이제 어디서 살아요? 여긴 옛집이었던 거고.”
“원장님 집에서요. 더 정확히는 그 집 뒷뜰에 있는 창고에서요. 관리 도구들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했던 곳인데 할머니가 나더러 들어와 살라고 치워줬어요. 여긴 가끔 와요.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나 같은 사람이요?”
“일단 자요. 오늘 숲속에서 진 다 뺐을 텐데. 굳나잇.”
다 마신 스테인리스 컵을 옆으로 치우며 그녀가 던지듯 말했다. 그래서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란 무슨 뜻인지, 이곳에 왔었던 또 다른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은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물을 게 많았다. 그래서 죽으려던 결심은 둥치 집 구석에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침낭 속에 애벌레처럼 몸을 구겨 넣었다. 코끝만 내놓고 모든 신체 부위를 숨겼다. 이대로 영원히 눈감는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솨아.
한밤중에 눈을 떴다. 숲속에 부는 바람 탓에 분명친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불길하리만치 서늘한 소리였다. 졸리가 말한 소리가 이런 것일까. 그 소리는 비명 같기도,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때 갑자기 졸리가 벌떡 일어나 덩굴 커튼을 던지듯 젖히고 그 경계를 뛰쳐나갔다. 홀린 듯 나도 일어나 그녀 뒤를 따라갔다. 졸리는 늪같이 빠지는 잔가지들과 썩은 나뭇잎 위를 날듯 뛰었다. 감히 쫓을 수도 없는 속도다. 점점 그녀와의 간격이 벌어지자, 대자연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달빛이 이곳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다. 떨어지는 속도보다 달리는 속도가 빨라서 그런가 두 발이 숲속을 스치듯 달렸다. 내 발목을 옭아매려는 것들이 닿기도 전에 내가 먼저 그 초록과 초록이 만난 검은 숲을 뚫고 달렸다. 한참을 그렇게 졸리의 뒤를 따라 달려 경계를 뚫고 내가 전에 살던 그 세계로 돌아왔다. 흙길이었지만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과 띄엄띄엄 점찍힌 집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요양원이 보였다. 오래된 집을 개조한 작은 건물.
졸리는 재빠르게 뒷마당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었다. 안쪽 잠금장치가 고장 난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먼저 들어간 그녀의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는데 원장님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는 뒷문 앞에 쓰러져 있었고, 졸리의 목소리를 찾아 들어간 부엌 옆방엔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칼을 손에 쥔 채 침대에 반쯤 걸쳐 있었다. 목에선 피가 꿀렁이며 흘러나왔다.
“휴대전화! 신고! 경찰, 경찰 좀 불러줘요!”
“아, 오케이.”
난 서둘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찾아 911을 눌렀다. 배터리가 겨우 이 퍼센트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것이 유일한 생명줄이다.
“네. 네. 아, 주, 주소요? 졸리! 여기 주소!”
“주소? 어, 여, 여기.”
졸리는 할머니의 목에서 목걸이를 툭 끊어 내게 내밀었다. 거기엔 할머니 이름과 원장님의 이름, 그리고 주소가 적혀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 역시 길을 종종 잃었나 보다. 신고 전화를 마치고 휴대전화는 사망했다. 자기 몫을 다하고 죽었으니 영광스러운 죽음이다.
오 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구급차와 경찰이 도착했다. 졸리와 나는 상황이 처리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보고 들은 모든 걸 진술했다. 원장님과 그 아들, 할머니는 응급 처치 후 속히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이 졸리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 이 가족들과는 어떤 관계인지, 어떻게 알고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졸리는 그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답했다.
“우리는 친구예요. 둘이 같이 이 근처 숲속에 있다가 비명을 듣고 달려왔어요. 이 집 할머니와도 친구예요, 친구!”
그녀의 대답 한마디로 나와 그녀, 할머니는 친구가 됐다. 나도 엉겁결에 고개를 위아래로 과하게 흔들었다. 그때 다른 경찰이 달려와 진술을 받던 경찰에게 귓속말했다. 그리고 그는 내 진술서 아래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집이 에드먼즈인가요? 실종 신고가 들어와 있어요.”
엄마가 실종 신고를 했나 보다. 경찰은 페리를 타고 섬까지 와 있는 날 섬 밖 에드먼즈 선착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난 아침이 되면 스스로 돌아가겠다고 답했다. 그는 꼭 돌아가라고, 내일 다시 전화해 확인할 거라고 당부하곤 사라졌다.
숲은 다시 소리를 냈다. 고요한 중에 바람을 타고 나무와 짐승들의 소리가 날아왔다. 솨아. 마치 내 이름을 발음하는 졸리의 목소리처럼 아주 섬세하게 내는 소리. 숲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자꾸자꾸 불렀다.
“집은 왜 나온 거예요? 아, 이런 거 물어보는 건 실례인가?”
졸리가 숲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내가 싫어서!”
그녀가 깜짝 놀라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뭐야? 갑자기, 라는 듯이.
“졸업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계속 실패에 실패. 지긋지긋하게 세상은 내게 말했어요. 넌 없어져야 해. 너 같은 건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래서 죽어도 아무도 못 찾을 곳으로 온 거예요. 처음 미국 왔을 때, 가족 여행으로 여길 온 적이 있었는데 원시림을 보며 저 안에 시체를 버리면 아무도 못 찾겠다, 싶었거든요.”
졸리는 다시 숲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숲이 다시 소리를 냈다. 솨아. 그리고 그녀는 언제 주웠는지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들어 둥그런 바늘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내가 둥치 집에서 만난 사람이 둘이었다고 했죠? 하난 당신이고.”
그녀는 바람에 흩날리는 빨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잡으며 말을 이었다.
“비는 오고, 어쩌다가 저 둥치 집을 찾았는데 죽으려고 손목을 긋고 바닥에 누웠거든요. 그런데 하필 그때 할머니가 자기도 숲속에서 헤매다 비가 오니까 그곳으로 들어온 거예요. 그렇게 절 발견한 거죠.”
그녀의 이야기는 바람 탓인지 건조했다. 전혀 축축하지 않고 일부는 가볍게 날아가기도 했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또 그땐 어떻게 정신이 들었는지, 내 손을 끌고 자기 집은 잘 찾아가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나 먹으라고 쉰 고구마를 몇 개 쥐여주는 거 있죠? 나, 참. 이건 살리겠다는 건지, 죽이겠단 건지.”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는 숲을 향해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숲도 더 큰 소리로 그녀와 내 이름을 불렀다.
요양원에서 휴대전화를 이십 퍼센트까지 충전하고 나니 당장에 엄마에게 전화가 들어왔다.
“길을 잃었니? 거긴 왜 가 있었던 거야? 그 멀리. 엄마가 얼마나 놀랐다고. 사고라도 났나 싶어서.”
“응. 길을 잃었었나 봐. 하지만 사잇길이 있었어. 그 길은 원래 지도에 없는 길인데 가 보니 있더라고. 해리포터도 아니고.”
엄마는 내 수수께끼 같은 대답에 또 헛소리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휴대전화를 귀에서 살짝 떼었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끔 그 둥치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머물다 온다. 땅속 졸리의 비밀 공간엔 여전히 그녀의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녀에겐 휴대전화가 없기에 그 후로 연락하지 못했다. 요양원은 앞문은 잠긴 채, 하지만 뒷문은 여전히 잠금장치를 고치지 않아 열린 채로 외부인을 맞는다. 내부를 들어가 보진 않았다. 그날의 기억이 유쾌하진 않았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녀도 이 집을 떠난 듯했다. 뒷마당의 창고에 더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역 뉴스에 기사가 실렸다.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아들을 말리려다가 아버지가 먼저 찔리고, 할머니가 다시 말리려다 밀쳐져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렀으나 셋 다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그날 밤, 졸리가 사람도 짐승 소리를 낼 수 있다고, 그런 소리를 들은 적 있다고 말한 것, 그래서 내가 깊은 숲속에서 그 세 사람이 낸 비극의 소리를 들은 것, 뒷문의 잠금장치가 고장 난 것, 졸리가 그 요양원에서 일하며 할머니와 가느다란 인연을 이어갔던 것, 그 할머니가 죽으려던 졸리를 둥치 집에서 발견해 구한 것. 이 모든 것이 바람이 되어 내 등을 떠밀고 있다. 알지 못하는 경계를 넘도록, 그 사잇길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