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십 분만 더 이야기합시다.
사람의 표정을 읽는 건 여전히 곤란하다. 실에 묶어 당기듯 치켜 올라간 입꼬리와 감정 없이 뜬 눈은 서로 다른 단추를 눈으로 단 곰 인형 같다. 논리가 사라진, 맥락 없는 얼굴. 공식은 아니지만 흐트러진 표정에선 정답을 도출할 수 없다.
“지금 하품하신 거예요? 헐... 어이가 없네. 정말.”
지루한 문제를 풀듯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실수로 터져 나온 하품. 하지만 민망하거나 미안하단 감정은 안 든다.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이니까. 그래도 사과 정도는 해야 한단 걸 안다. 이런 걸 나름의 사회생활이라고 명명하면서.
“죄송해요. 어제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서 좀 피곤했나 봐요.”
“됐어요. 물건이 마음에 안 드시면 도로 가져가면 되니까.”
서둘러 가방 안에 책을 넣는 그녀의 손톱엔 비광이 그려져 있다. 우산을 든 오노 도후까진 봐 줄만 했지만, 그 아래 그려진 개구리는 마치 잘 구운 통닭 같아 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니, 또 겉으로 드러내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으니 속으로만 조심히 웃기로 했다. 그리고 자꾸 곁길로 새는 생각을 붙들어 놓기 위해 재빨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얼마라고 했죠? 오만원?”
“네? 아, 네. 그런데... 혹시 오천원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이것 때문에 아침부터 먼 길 왔거든요.”
오늘도 신사임당의 위대함을 재차 깨닫는다. 갑자기 공손해진 건 그녀의 말투뿐만이 아니다. 겹쳐 잡은 두손엔 손톱 위 비광마저 허리를 굽힌다.
난 오만원 짜리 한 장을 테이블에 먼저 꺼내어 놓은 후 오천원 짜리는 반쯤 꺼낸 채 지갑과 함께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십 분만 더 이야기합시다. 별 건 아니고... 그냥 이 책 이야기.”
“아저씨, 전 이 책 내용 하나도 몰라요. 제 거가 아니라 엄마 책이니까.”
그녀가 가방에서 다시 책을 꺼내어 놓으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알았어요. 책 내용은 묻지 않을게요. 지루한 옛날얘기 뭐 재밌다고 학생에게 묻겠어요.”
그제야 여러 겹으로 포장하려 했던 그녀의 표정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흡족하게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책은 내 선생님이 쓰신 책입니다. 보다시피 빛바랜 색만큼이나 아주 오래된 책이죠.”
구겨진 소가죽 같은 두 손을 뻗어 바스러질 것 같은 책 표지를 넘겼다. 거기엔 진짜 선생님의 글씨가 있었다. 바람의 흔적처럼, 곧이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네 글자.
“저 한자는 뭐라고 쓴 거예요? 사람 이름인가? 일본 만화 보면 작가 이름이 한자로 네 글자 막 이렇게 되어 있던데.”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 안 개구리.”
“아, 그거. 나도 알아요. 우물 안 개구리. 그런데 좋은 한글 냅두고 왜 한자로 적으셨대? 똑똑하다고 자랑하려고 하셨나?”
그녀의 표정이 다시 맥락을 잃어간다. 하지만 인조 속눈썹이 떨어질 것처럼 빠르게 깜빡이는 눈과 벚꽃 향이 날 것 같은 볼 색이 솔직해 보여서 좋다.
“선생님께선 항상 자기 자신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부르셨어요. 그 당시 지식인들은 다 그랬습니다.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다녀 볼 수 없으니 방안에 처박혀 책을 읽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죠.”
“에이, 세계 여행 다닌다고 다 똑똑해지나요? 그분도 뭘 모르셨네요. 우리 엄마는 평생 한국 밖으로 다니시며 나름 존경받는 작가가 되셨지만 나와 아빠의 마음 같은 건 하나도 모르시던걸요. 정말 멍청해. 바보 같아.”
시무룩한 그녀의 얼굴이 이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자꾸 아무 잘못 없는 손톱 위 비광을 긁어댔다. 그녀의 표정을 읽는 것이 매우 곤란하다. 생각과 감정이 스멀스멀 테이블을 넘어온다.
“그러게요. 나도 선생님의 마음을 몰랐으니까요. 나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지요. 선생님이란 넓은 세상을 깨우치지 못하고 늘 반대로 나갔으니.”
“그럼 아저씨는 개구리 중에서도 청개구리시네요.”
그녀가 웃었다. 입을 가린 열 손가락에서 비광 속 오노 도후가 우산을 들고 격하게 춤춘다. 그 모습에 나도 웃었다. 그리고 둘의 웃음이 그칠 즈음해서 결국 난 물어야 할 것을 묻기로 했다.
“어머니 성함이 김혜란 맞죠?”
“어? 아저씨가 우리 엄마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이 책이요. 내 선생님의 책, 아니 우리 선생님의 책. 우린 선생님의 청개구리였어요. 선생님께서 이 책을 내시고 우리에게 한 권씩 선물하셨는데 이렇게 안에 정중지와라고 써 주셨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는 건가?”
혜란의 눈동자를 한 그녀가 그날처럼 스스로 물었다.
“우린 선생님의 뜻을 따라 넓은 세상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은퇴하고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네요. 돌아오자마자 사람을 찾으려는데 좀처럼 찾을 수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이 책을 찾는다고 인터넷에 올리셨던 거로군요.”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책등을 감싸 쥐었다.
“그런데 많이 늦었네요. 책은 찾았지만 혜란이는... 혜란이야 워낙 유명한 작가고 그 친구의 죽음은 대한민국이 다 아는 뉴스였으니까.”
그녀와 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난 누군가의 죽음을 가볍게 이야기할 만큼 세상의 지식을 다 가지지도, 그 무게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무거운 사람도 아니었기에 더 꾹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녀의 표정에선 수많은 장면이 콜라주되어 쌓여갔다.
“그나마 난 우물만 기어 나오면 됐었지만 혜란인 우물을 덮고 있는 유리천장까지 뚫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손톱에 그려진 비광 속 개구리처럼 남들은 안 된다고 해도 죽을힘을 다 했어요, 혜란인.”
약속한 십 분이 다 지났다.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이젠 그 뒤통수만 봐도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지갑에서 오천원 짜리를 마저 꺼내어 오만원 짜리 위에 겹쳐 놓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책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우물 안에서 빠져나와야 할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실 처음부터 그럴 요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