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시간

난 오늘 그 의자를 태울 수 있을까?

by Boradbury

그저 의자에 앉아 있었지. 내 의식보다 더 뜨겁게 몸을 태우고 있는 붉은 덩어리를 보면서. 그녀는 물었지.

“뭘 보고 있는 거예요?”

난 시큰둥하게 대답했어. 매우 시답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불을 보고 있지.”

그러자 그녀는 불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재차 물었지.

“도대체 뭘 태우는 건데요?”

그냥 저녁 식사할 때가 되었으니 집으로 들어오라 하려는 요량이었을 테지만 저 붉은 덩어리를 보며 그저 궁금했을 거야. 이 양반이 대체 또 무슨 사고를 치나 하면서. 그래서 난 몹시 귀찮았지만 제대로 대답해 주기로 했지.

“의자. 아주 작은 의자를 하나 태우고 있어.”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눈썹과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며 불 속을 훑듯 쳐다봤어. 열기가 사방으로 솟구치는데도 발걸음을 점점 더 붉은 덩어리의 가장자리로 밀어붙이면서 말이야. 그러다가 큰일 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니 입을 다물기로 했지.

“무슨 의자가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데.”

어쩌면 그녀는 내가 허풍이나 떠는 그런 남자로 생각했을지도 몰라. 사실 난 의자를 아직 넣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허풍은 아니야. 언젠가는 꼭 넣을 생각이니까. 내가 곧잘 엉뚱한 짓을 해 왔기 때문에 그녀는 또 속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슴팍으로 두 팔을 감아 넣었어. 머리도 살짝 옆으로 비틀며 날 봤지. 금방이라도 긴 한숨이 흙바닥에 웅덩이를 만들 것처럼 쏟아져 내렸어.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예요?”

그녀는 화가 났거나 짜증이 났거나, 둘 중 하나였어. 하기야 사십 년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전에 그녀가 내게 감자를 좀 심어 달라고 했을 때 큰 구덩이를 파 한꺼번에 묻어버렸지. 그리고 물가에 가서 저녁에 먹을만한 무언가를 잡아 오라고 집에서 내쫓았을 때도 낚싯바늘을 내 입술에 걸고 들어와 그녀를 기절시킨 적도 있어. 난 그저 그녀가 물고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선택지 안에 나를 넣었을 뿐이었는데 말이야.

“시간은 겨울에서 가을로 여름으로 봄으로 흐르고, 내년에서 올해로 다시 과거로 흐른단 걸 당신은 몰라?”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혔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궜어. 그리고 한참 동안 나와 붉은 덩어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지.

“배가 덜 고픈가 보군요. 아직도 그런 말장난과 불장난에 허비할 시간이 남아 있는 걸 보니.”

난 아직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 내 시간의 비밀을. 의자는 이미 다 타고 없으며 그녀와 나조차 타고 없어질 거란 걸 과연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붉은 덩어리가 조금 더 커졌지. 그만큼 병 속 맥주는 줄어갔고. 하늘은 조금만 더 빛을 뿜어내다가 이내 사그라들고 말겠지. 언제 색을 가졌었냐는 듯 소멸할 찬란함. 의자에 앉아 이렇게 이 모든 걸 바라보고, 사그라들고, 또 바라보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엔 재처럼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들을 추모하면서.

“혹시 그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를 잊은 건 아니고요? 다른 의자도 태울 요량이라면 관둬요. 그것들은 다 임자가 있는 것들이니까.”

그녀가 단호히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날 향해 검지 손가락을 세워 까딱거렸어. 나도 알아. 그 의자들의 임자들을 말이야. 파랗고 팔걸이가 달린 건 내 아버지가 첫 손주에게 만들어 준 것이고, 발판이 달린 아주 작은 흔들의자는 시장에 갔다가 예쁜 딸을 주겠다고 사 온 것이고, 무지개색으로 크레용 칠이 되어 있는 의자는 막내가 어머니날에 제 엄마에게 주겠다고 온종일 공들여 색칠한 것이지. 그러고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아. 내가 태울 수 있는 의자는 오로지 내가 가진 이 의자 하나지. 이건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곧 끝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 생뚱맞게 갑자기 그런 말을 하고 그래요... 난 그저 당신이 뭔가를 태우고 싶은 것 같기에 태우려면 그 오래되고 낡은 의자를 태우라고 한 것뿐인데.”

그녀가 앞치마에 마른 손을 연신 닦아대며 눈을 깜빡였지. 미안할 때 으레 하는 그녀의 습관. 내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디선가 날아와 묻었지.

“위험해요. 얼른 불 끄고 들어와요. 밥이나 먹게. 국 다 식겠네.”

난 지금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어. 내 낡은 의자에 앉아서. 이제 예정된 시간이 되었네. 의자를 태울 시간 말이야. 오늘 태우지 않는다면 다시 적당한 때를 찾지 못할지도 몰라. 그래서 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던 의자를 높이 들어 올렸어. 그런데 드디어 의자를 붉은 덩어리 속으로 던져 넣으려던 순간, 내 몸이 바닥으로 단숨에 무너져 내렸지. 이 의자의 진짜 임자가 생각나서 말이야.

막내는 자기가 아빠처럼 크면 이 의자를 달라고 했어. 투박하고 못생긴 이 의자가 아빠처럼 힘이 세 보여 좋았다나. 난 그러겠다고 했지. 그때부터 이 의자의 임자는 바뀌었던 거야. 하지만 임자를 잃어버린 이 의자를 다시 내 것이라고 불러도 될까.

난 의자를 문 앞 붉은 덩어리가 잘 보이는 곳에 조심히 내려놨어. 결국 오늘도 멈추지 못했군. 자꾸 막내가 있던 시간으로 회귀하는 내 습관을 결국 태우지 못한 채 멍하니 붉은 덩어리만 바라보고 있어. 언젠간 태워야겠지. 거꾸로 가는 내 시간의 습관을 거슬러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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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못생긴 이 의자가 아빠처럼 힘이 세 보여 좋았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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