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분명 이 편지를 보낸 걸 후회하게 될 거네.
많이 보고 싶었다, 정도로 해 주게.
그의 요구는 그가 입은 수트만큼이나 간결했다. 굴곡 하나 없이 직선으로 떨어진 말투는 발밑에서 먼지처럼 흩어졌다. 과거의 그, 자신에게 건내는 첫 인사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뭐라고 적어 드릴까요?
내 질문에 곧바로 답하는 대신 그는 벽에 걸린 거울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미세하게 그의 눈썹이 가라앉고 있다고 생각한 건 내 망상일까. 거울 속 그는 꽤나 신사적이고 위엄있어 보였지만 피부 저변에 깔린 잿빛은 더 선명해 보였다.
4차 산업 혁명 이후 최대 수혜자, 그는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모두가 지구의 중심을 향해 숨어 들어갈 때, 그는 알지도 못하는 외딴 행성으로 그들을 인도하며 이미 이 우주의 부 절반을 가져갔다.
그는 검은 거울 같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멀리 언덕 위로 세 개의 위성들이 다른 높이로 떠 있었다. 지구에서의 기억으로 그는 늘 그것을 달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건 달이 아니다.
달의 토양 샘플에서 물 분자를 발견하고 그곳에 최대 이천 칠백억톤의 물이 있다고 했던 이들의 간절한 소망은 그저 잠시 빛났다가 추락하는 별의 꼬리일 뿐이었다. 반짝였지만 이제는 반짝이지 않는 것들. 바스라져 가던 그 생명들을 뒤로 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우주의 이주자가 되었다.
네 서재에 걸릴 그림을 하나 골라주지. 헨드릭 판안토니선의 <스헤베닝언 해변의 풍경>. 마음에 들거야.
두번째 문장이 공중에 잠시 떴다가 홀로그램 책 사이로 빨려들어갔다. 그것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갔을 것이다. 많이 보고 싶었다, 뒷자리로.
간혹 이 행성으로 온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선택받았다고 생각했고, 생존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부가 이제서야 제대로 효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 안도감은 샤덴프로이데에서 온다고 확신한다. 후회는 그 댓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난 놀라운 아이디어 하나를 상품으로 팔았다. 과거의 나에게 홀로그램 편지를 보내는 것. 이미 인간까지는 아니지만, 사물을 과거로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있었고, 홀로그램은 그보다 더 일찍 상용화되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런 감성이 존재하기엔 지구는 시간이 없었다.
사지. 당신의 그 아이디어.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네. 내가 원할 때, 딱 한 가지만 숨겨주겠나?
‘숨긴다’라는 말은 참 재밌다. 뇌의 도파민을 자극한다. 드러나 있는 건 남들도 아는 거니 재미가 없다. 난 그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건 그의 재산보다 더 큰 부를 내게 안겨줄 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돈 이상의 가치를 줄 것이다.
그는 여자 관계도 깨끗했고, 그렇다고 남자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업 방식은 늘 투명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공손했으며 가까운 사람 앞에서도 차림새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질릴 정도의 완벽함은 그의 덜미를 잡으려는 타인의 덜미를 역으로 잡았다. 그랬던 그의 눈썹이 가라앉고 있다.
고래를 본 적 있나? 난 아주 어릴 적 샌 후안 바닷가에서 본 적이 있네. 수면 위로 올라온 고래의 등이 마치 심해서부터 솟아오른, 큰 산봉우리 같았다네. 그게 내가 개발한 우주선의 이름이 되었지. 우주라는 크고 검은 바다에 희망의 명맥을 이어주길 바라면서.
이 행성에서 인류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존재를 맞게 됐다. 지구에는 없었으니 대책 역시 없었다. 순식간에 행성 저변에 잿빛이 먼지처럼 쌓여갔다. 그리고 그것은 돌고 돌아 결국 그에게까지 닿았다. 도망갈 곳은 없었다.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 봤자 끝없는 우주의 심해에서 허우적거리다 우주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그는 편지에 단 몇 개의 문장만 남기자고 했다. 다른 이들처럼 주저리주저리 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평생 군더더기 없이 산 그다운 결정이었다. 난 그의 우주선은, 그리고 이 행성으로의 이주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지금의 그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무릎 꿇은 실패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분명 이 편지를 보낸 걸 후회하게 될 거네. 그러니 이 편지에서 발신인은 숨겨 주게. 익명의 미래인에게서 온 편지라면 과거의 나도 매우 흥미로워 하지 않겠나?
그의 낮은 목소리와 머리가 거의 동시에 비스듬하게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이 글자로 공중에 잠시 떴다가 홀로그램 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할 일, ‘Send’ 버튼을 누르며 누가 고래를 감추었는가, 라는 제목을 붙인 편지가 시간 속으로 날아가는 걸 바라봤다.
창밖엔 여전히 세 개의 달이 희미한 빛을 비추었고, 난 고래가 지워진 바닷가에 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