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dbury Oct 01. 2024

무언가 상상

미쳤어. 내가 무슨 상상을 한 거야.

   코나가 산책길 옆, 땅 속을 파헤쳐 물고온 건 아주 작은 ‘무언가’였다. 그건 윗쪽에서 보면 조개 껍데기의 일부 같기도 하고, 옆쪽에서 보면 인간의 뇌 같기도 했으며 아랫쪽에서 보면 자물쇠 같기도 했다.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센티미터 가량 되어 보였고, 어느 부분이 열리거나 모양이 변형될만한 소재로 되어 있지도 않아 그저 침식된 편마암처럼 보였다. 물론 편마암 자체가 침식이 어려우니 그것이 편마암이라고 단정하긴 어렵겠지만, 육안으론 그랬다는 뜻이다. 

   산책하다가 땅을 파고, 뭔가를 물어오는 건 코나의 취미였고,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다 보니 아주 작은 이 ‘무언가’에 의미 부여하기 보단 코나가 안 볼 때 다른 쪽으로 멀리 던져 버리는 걸로 일을 마무리했다. 분명 그랬다. 다음 날, 코나가 다시 물어오기 전까진. 

   코나, 이걸 또 어디서 찾아왔어? 꽤 멀리까지 던져 버렸는데 말이야. 특별한 냄새가 나는거야?

   그 ‘무언가’를 코 가까이에 들이댔다. 시큰한 흙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특별한 냄새는 아니었다. 개들의 예민한 코라면 인간이 맡지 못하는 냄새도 맡을 수 있으니 그것도 내 추측이다. 흙냄새 그리고 미스터리한 냄새가 더해졌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전날 던진 쪽과 반대쪽으로 멀리 던져 버렸다. 분명 그랬다. 다음 날, 코나가 다시 물어오기 전까진.

   뭐야, 너. 이런 적 없었잖아. 같은 돌을 세 번이나 찾아오는 이런 일 말이야. 혹시 딱딱하게 굳은 개껌인가?

   그 ‘무언가’를 들어 살짝 깨물기 위해 입안을 벌렸다. 이런 쓸데없는 호기심에 어릴 적 개 사료나 비스킷을 먹어본 적이 있다. 결론은 맛없다, 였지만 이건 확실히 동물을 위한 음식인지, 먹어서는 안 되는 독극물인지 알 길이 없으니 무모한 호기심에 큰 댓가를 치를 수도 있지 않은가. 위험 신호를 감지하자 입안으로 향하던 손이 벌린 입 앞에서 딱 멈췄다. 분명 그랬다. 코나가 태클을 걸어 날 바닥에 쓰러뜨리기 전까진.

   코나... 코나?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모래 속에 잠긴 것처럼 온몸이 껄끄럽고 눈도 뻑뻑했다. 코나는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복기해 봤지만 절단기로 단번에 잘라버린 것처럼 뚝 하고 끊겼다. 손에 ‘무언가’가 없어졌다. 넘어지며 어디론가 떨어졌을 거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되레 회전초처럼 굴러다니는 코나의 털뭉치만 보일 뿐이었다. 

   코나, 이 녀석 사고치고는 혼날까 봐 무서워서 도망친 거냐? 그래, 너도 한 번 혼나 봐야 해. 그래야 다시는 이런 사고를 안 치지. 

   말을 내뱉고 나니 명치가 뜨거워졌다. 아니, 누군가 날카로운 송곳으로 깊게 찔러 만든 통증의 열기였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상상일지도 모르는 장면 하나가 섬광처럼 지나갔다. 내가 코나를 집 밖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얼마나 지났을까. 통증은 사라지고 온몸이 다시 가벼워졌다. 우주의 에너지가 몸 중심에 채워진 기분이었다. 벌떡 일어나도 스프링을 발바닥에 단 듯 온몸이 튕겨올랐다. 근래에 이렇게 체력이 좋았던 적이 있던가. 사춘기 때 이후로 이런 적은 없었다. 결단코 없었다. 

   코나? 어딨니? 이리 와. 간식 먹자.

   보이지 않는 코나를 찾아야 했다. 어쨌든 찝찝한 옷은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뭐든 먹을 거라면 가리지 않는 코나는 간식이라는 단어에 가장 몸이 빨라진다. 멀리서도 그 단어를 들으면 공간이동을 한 듯 내 앞에 딱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코나가 보이질 않았다. 설마. 설마. 뒤통수를 당기는 어떤 힘에 이끌려 집 밖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그쪽으로 다가가며 아닐거야, 를 백 번도 더 되뇌였는데 쓰레기통 안에서 낑낑거리는 코나의 소리를 듣자, 불안은 확신이 되어 행동을 폭발시켰다. 얼른 달려가 쓰레기통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상상 속에서 봤던 코나가 진짜 있었다. 

   코나! 너 왜 여기 들어가 있어? 얼른 나와! 

   가슴 선까지 올라오는 쓰레기통에 거꾸로 들어가다시피 몸을 깊게 넣었지만 코나까지 손이 닿지 않아 쓰레기통을 별수 없이 통째로 뒤집어 엎고 나서야 코나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가 더 문제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나는 꼬리를 아래로 말아 넣으며 날 피해 도망갔다. 

   그 장면은 도대체 뭐였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코나에게 너도 한 번 혼나 봐야 한다고 말한 것이 만들어 낸 내 상상인가. 하지만 난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없다. 결단코 없다. 내가 얼마나 코나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상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어떻게 그럴수가.

    코나미쳤어. 내가 무슨 상상을 한 거야. 너를 진짜 내가 던져 넣은 거야? 세상에... 

   누가 봐도 미쳤다 하겠지. 상상이 현실이 되었더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더라, 아니, 모르겠더라, 내가 한 건지 우주의 힘이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건지. 

   실험이 필요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 확인은 해야 한다. 단전에 힘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하도록 집중하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코나, 네가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말을 내뱉고 나니 다시 명치가 뜨거워졌다. 그리고 밀려드는 통증. 섬광처럼 지나가는 장면 하나. 이번엔 코나가 내가 저번에 놓아둔 쥐덫에 걸려 있었다. 한번 학습한 건 좀 더 빠른 동작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처음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재빠르게 일어나 쥐덫을 놓아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덫에 발이 걸린 코나를 발견했다. 확실해진 건 코나의 위치 뿐만이 아니었다. 이 상상인지 뭔지가 내가 한 말과 관련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결과는 끔찍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 

   코나가 물고온 ‘무언가’, 그 침식된 편마암 같던 것의 행방이 혹 내 뱃속은 아닐까 하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것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코나의 태클로 넘어졌고, 그래서 놓친 ‘무언가’는 내 입안으로 들어갔으며 난 정신을 잃었던 것은 아닐는지. 멋대로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난 믿어야만 할까. 다만, 지금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내 말이 끔찍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리가 떨렸다. 입이 모래를 먹은 것처럼 껄끄럽고 불편했다. 어둔 우주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그랬다. 쥐덫에 발이 끼인 코나가 발버둥치다가 다시 내게 태클을 걸어 쓰러뜨리기 전까진.

   코나! 너 죽고 싶어?

   입 밖으로 나와 버린 말 한 마디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칼이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진다면. 

   쿵.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모래 속에 잠긴 것처럼 온몸이 껄끄럽고 눈도 뻑뻑했다. 코나는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복기해 봤지만 절단기로 단번에 잘라버린 것처럼 뚝 하고 끊겼다. 그런데 통증이 없다. 몸이 가볍지도 않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회전초처럼 굴러다니는 코나의 털뭉치가 바람에 날아가고 그 자리에 침식된 편마암 같은 ‘무언가’가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알리지 말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