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유성 한 조각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있던가.
편두통에서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허리에도 문제가 생겨서 거의 두 달 넘게 거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때도 난 아직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질병에 대해 알게 됐다.
‘척추분리증’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한 건, 우리 가족 중에는 나 혼자 그 질병을 앓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런 질병으로 인해 거동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는 걸 전해 들었어도, 나의 가족들은 그러한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야, 누워 있으면 더 안 좋으니까, 움직여!”
“그래. 몸 아프다고 계속 누워 있으면 오히려 더 안 좋아. 계속 몸 움직여. 이 반찬도 갖다 나르고.”
차례차례, 언니와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들은 나의 허리 통증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의학적 지식이 없음에도 내게 ‘아프다고 누워 있으면 더 악화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으며 일을 시켜댔다.
그래서 나는 허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아무도 집에 없을 때는 혼자 어기적대며 청소나 빨래를 하기 위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움직여야 했고.
가족들이 집에 있을 때는 같이 식사를 할 때마다 반찬을 나르거나 밥상을 펼치는 행동 등을 도와주어야 했다. 때때로 그들은 내게 설거지를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허리에 통증이 있을 때는 특히나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서른 살이 훌쩍 넘어서야 알았다. 그들의 무차별적인 행위가 그 이후에도 지속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얘기하자면, 나는 아직도 영화 아바타의 첫 개봉 시기를 잊지 못한다.
나의 아버지는 본래 성격이 그랬다.
남들 다 본 거, 남들 다 가본 곳, 남들 다 경험해 본 것들은 자기도 어떻게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새로운 것들에 대한 경험을 지독히도 좋아했더란다.
그리고 그때마다 동원되는 건 거의 나였다.
어머니와 언니는 그런 아버지를 무시하기 일쑤였기에, 그나마 내가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항상 함께 해줬던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바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허리가 아파서 거의 거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언니에게 한참을 졸랐더란다. 남들 다 보는 아바타를 자신도 보고 싶다고, 그러니 같이 가자고.
하지만 어머니와 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둘이 같이 안방 침대에 누워 TV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답했더란다.
“원래 수아랑 잘 가잖아. 수아랑 갔다 와.”
“맞아, 아빠. 수아 어차피 허리 때문에 너무 누워 있어서 외출 좀 해야 해. 수아 데리고 갔다 와.”
그로 인해, 나의 아버지는 내 방에 와서는 문을 아주 조금 연 틈새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아바타가 그렇게 재밌다던데…”
“아빠, 근데 나 허리가 너무 아파. 그래서 잘 앉지도 못해. 미안.”
“그래…? 근데 엄마랑 언니가 너 좀 움직여 줘야 한다던데… 무리이려나…?”
“…….”
할 말을 잃었다.
두 사람의 이기적인 말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한없이 처량하고 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하는 수없이,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그날 아버지와 함께 아바타를 보러 갔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모두가 무언가를 착용한 채 영화를 즐길 때, 나만 혼자 어마어마한 허리 통증 때문에 연신 신음만 흘려야 했다. 자세는 물론 계속 바꿔 가면서 말이다.
명백한 첫 경험이자, 처음으로 겪어 보는 고통이었다.
그저 앉아만 있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영상이 예쁘다는 사실만 뚜렷했다.
그렇게 언제 끝났는지 모를 영화가 다 끝난 뒤, 극장을 나설 때.
아바타 관람객들에게는 선물이 하나씩 쥐어졌다.
당시 연예인 이승기 씨가 선전하던 ‘둥지 냉면’이었다.
그때 그렇게 둥지 냉면도 처음 알았다.
그 고통 속에서 받아 온 둥지 냉면은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있었다.
물론, 그 전리품도 처음 경험해 보는 식품의 두 가지 맛을 모두 알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독차지였다.
이미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당해야 했던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식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극심해진 허리 통증으로 인해 홀로 밤새 끙끙 앓아야 했고, 잠 한숨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또한 언제나처럼, 나의 가족 중 그 누구도 그러한 나의 후유증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를 제외한 온 가족이 평온히 잠에 들었다.
단 한 명의 희생만으로 모든 가족이 각자 원하는 욕구를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기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