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유성 한 조각
학원 아르바이트를 완전히 그만두기 직전의 일이다.
나는 아르바이트 기간 중 생겨난 편두통 때문에 고통받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질병은 사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발생한 건 아닌 것 같다.
어쨌든 편두통 때문에 골머리를 썩던 중.
결정적으로 내가 완벽하게 몸져눕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 또한 나의 어머니가 큰 주역을 맡았다.
어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게 ‘아빠한테 돈 보냈어?’라며 채근하는 전화를 했다.
단지 그 전화를 받았던 날은 내가 편두통 때문에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머니의 말이 너무나도 야속하게 들렸다.
장소가 병원이었기에 잠시 대기를 하던 중, 아픈 와중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내심 기대를 했었더란다.
휴대폰을 들고 병원 문밖에 있는 층계까지 잠시 나가서 전화를 받았지만, 결국 또 돈 얘기가 우선인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당연히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그래서 터졌다.
아니, 처음으로 폭발했다.
“나한테 무슨 돈 맡겨 놨어?!”
“… 왜 화를 내고 그래?”
“나한테 무슨 돈 맡겨 놨냐고! 그리고 내 돈이야! 내가 보내건 말건 내가 알아서 해! 왜 자꾸 전화질이야!”
'내가 누구 때문에 아픈데.'
불현듯 그 생각이 번쩍 고개를 쳐들었던 것도 같다.
평소 부모에게 잘 사용하지도 않던 ‘―질’이라는 과감한 어휘 표현까지 거침없이 내뱉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던가.
진심으로 자신의 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상황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신의 형제를 위해 자기 딸을 제물처럼 받치겠는가.
나의 격한 언어 표현에 어머니가 되려 흥분했던지, 그녀는 나보다 더 거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퍼부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전화지일?? 야, 정수아! 너 미쳤어? 그게 무슨 네 돈이야! 아빠 돈이지!”
“대체 또 무슨 헛소리야! 그 건물이 내 건데!”
“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 건물이 어떻게 네 거야, 삼촌 거지? 그리고 네 돈이라고 해봤자, 꼴랑 500만 원? 그거 고작 명의 이전 비용밖에 안 됐어! 근데 무슨 네 건물이고 네 돈이야!”
“뭐…?”
“하이고오. 누가 보면 뭐 엄청난 돈 들인 줄 알겠네. 꼴랑 그 돈밖에 없었으면서! 건물 값이 얼마였는 줄 알아? 그 돈 다 네 아빠랑 막내 이모 돈으로 메꿨어. 네 돈은 진짜 십 원 한 푼 안 들인 거나 똑같아! 알아!?”
삼촌의 건물을 인계받을 때. 분명 나에게는 전 재산이었지만.
나의 어머니 입에서 나오는 ‘꼴랑’이라는 단어로 인해, 나의 재산의 가치는 물론 내 존재의 가치까지 모두 급격히 하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하나하나 폭언들이 더해질 때마다, 내 첫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모든 노력이 처참히 짓밟히는 심정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결국 또 손가락 마디마디 마저 힘이 빠지는 것 같았지만.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로 나는 다시 반박을 해보고자 했다.
“… 그래도 지금 명의가 내 거잖아… 내 말이 틀려…?”
“차암나! 이거 뭐 다 죽어가는 사람 보따리까지 빼앗을 기세네. 허 참! 그 건물 삼촌 거라고 계속 얘기했지! 그리고 원래 네 것도 아냐! 아니, 애초에 네 거였던 적이 없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엄마가 법무사 시켜서 네 아빠랑 막내 이모가 그 건물 실제 주인이라고 법적 공증받은 서류가 있다! 알아들어!? 그 서류 내가 갖고 있다고!”
“…….”
그때의 절망감이란.
‘법적 공증’.
어머니로 인해 삼촌 건물에 명의를 붙들리고 난 후,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들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상황 파악이 채 되지 않은 채로 멍해져 있는 내게, 그녀는 또 최종 통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니까 넌 아빠한테 보낼 돈이나 똑바로 보내! 끊어!”
언제나 일방적인 통보.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 그 현실이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누군가는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이미, 그저 자신의 돈을 받기 위해 내게 직접 전화를 하는 것보다, 어머니를 통해 나를 채근한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더욱이 불가능했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었을까.
그러던 중 며칠 전 언니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그래서 너한테 하자고 나랑 엄마랑 둘이 결정한 거야.’
‘나는 네 언니잖아. 이 언니가 동생인 너를 손해 보게 할 것 같아?’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지며, 나는 나의 휴대폰에서 언니의 연락처를 찾아,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언니는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전화를 받았고, 순간 나는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언니. 지금 통화 돼?”
“어. 말해.”
“그… 나 지금 이상한 소릴 들은 거 같은데. 법적 공증이 뭐야…?”
“아아. 그건…”
당시 언니는 명문대 법대를 다니고 있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법적 지식을 설명하고자 했다.
나에게 중요한 건 그 얘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아니, 그니까. 그건 나도 대충 아는데.”
“그럼, 왜 나한테 물어?”
“그니까. 그건 아는데. 엄마가 나보고 이상한 소릴 해서… 삼촌 건물이 내께 아니래. 아빠하고 막내 이모가 실제 주인이라고 법적 공증받은 서류가 있다던데. 언니 알아?”
“어. 당연하지! 나도 있었으니까.”
“… 뭐? 언니도 있었다고?”
“응. 저번에 말했잖아. 그거 나중에 삼촌이 다시 가져갈 거라고. 근데 너만 이름 해놓으면, 삼촌이 나중에 분명 나쁜 짓 할 수 있으니까. 아빠하고 막내 이모를 실권자로 공증받아놓은 거지. 삼촌이 함부로 못 가져가게 하려고. 왜?”
“…….”
그 후 이어진 언니의 말에 의하면, 과거에도 삼촌이 자기가 돈 필요하다며 나의 어머니의 기타를 몰래 갖다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 또한 삼촌이 순진한 나를 꼬드겨서 어떻게든 나쁜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결정을 했다며.
언니는 마치 나를 위하는 듯 말했지만, 그 내용 속에서 나를 위하는 행위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언니 본인이 그렇게 믿고 있는 듯했다.
진정 나를 위했다면, 애초에 삼촌이 사업하는 건물에 내 이름을 갖다 쓰지도 않았겠지.
목 끝까지 그 말이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어머니 못지않게 언니 또한, 평소에 자신이 잘못하고도 오히려 역정을 내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아팠던 나는 도저히 싸울 기력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고, 학원 원장에게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월급날이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말했다.
「원장님 죄송한데, 저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그만두겠습니다. 후임 구하는 것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학원에서 뵙겠습니다.」
이번에도 감사한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내는 게 맞다 생각했다.
어머니로 인해 알게 된 아르바이트 장소이고, 어머니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학원에서 1년 넘게 잘 일해 왔노라고. 그래서 학원 원장하고의 관계도 그다지 망치지 않고 원만하게 정리하는 것이라고… 결코 어머니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는.
내 마지막 자존심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