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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키리 ENKIRIE Nov 15. 2024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네 번째 유성 한 조각

우리는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해 배울 때 다음의 인물들에 대해 알 수 있다.

가해자, 조력자, 방관자, 피해자.

피해자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가해자에 속한다.     


나는 가정폭력을 경험하며, 학교폭력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구조가 가정폭력에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통의 가정폭력 집안을 떠올려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때리는 가해자와 맞는 피해자만 생각한다. 특히, 신체적 학대를 일삼는 가해자가 있을 경우,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폭행을 당하는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한 명이라고 착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나 또한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어머니도 때리고 아이들도 때리는 집안이 있다고 보자.

그러면 대다수는 아버지가 가해자이고, 어머니도 맞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동일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지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아버지의 조력자 또는 방관자일 때도 있다.      


‘너네 아빠가 그러면 화내는 거 알잖아. 그니까 아빠 성질을 왜 건드려.’     


아이들이 또 아빠에게 맞는 모습을 볼 때. 이를 목격한 어머니가 안타까운 마음에 내뱉은 소리라고 할지라도 아이들에게는 훗날 그 말이 꽤 큰 상처로 남는다. 이는 마치 아이들에게 ‘맞을 짓을 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라는 가스라이팅 표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만난 가정폭력 집안의 어떤 어머니는 그녀의 아이가 아버지한테 맞아서 죽고 싶다고 자살 시도를 하려고 했을 때, ‘아이구, 저년 저거 또 쑈 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맞는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어머니도 있다는 경험담도 들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끼리 모인 집단에서 꽤 많은 조력자 또는 방관자에 관련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 물론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형제, 자매 관계에서도 가정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구조가 발생했다.


내가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이론의 내용 중 하나이다.     

사티어의 경험적 가족치료에서는 가계도를 그릴 때 다른 가계도와 달리, 첫째와 둘째, 셋째를 일자로 나열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막내가 가정폭력의 최대 피해자라고 한다. 부모가 가하는 폭력과 위의 형제들이 가하는 폭력이 모두 막내에게 내려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 수업을 듣고 놀랐지만, 당시 내가 놀란 이유는 어쩌면… 무의식 중에 나 또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속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는 나의 편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버는 아르바이트 월급이 늘어났다는 점은 나에게 결코 일 할의 도움도 주지 못했다.

버는 족족 전액을 아버지에게 이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이체해야 하는지 이유도 몰랐다.

다만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에는 아르바이트 퇴근 후, 한 숟갈도 입에 뜨지 않은 채 넋이 나간 상태로 누워있었다. 갑자기 늘어난 아르바이트로 인해 몸이 고된 점도 있었지만, 매월 은행으로부터 날라 오는 ‘이자 납기 안내 문자’가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가중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였던 건지. 나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저녁 시간, 그런 나를 지켜보던 언니가 내게 걷기 운동을 하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기에 나 또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평소처럼 자주 밤 산책을 다니던 도로 위를 걷기 시작했고. 그 당시 계절이 초여름이었던 만큼, 저녁임에도 날씨는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이 기분 좋을 만큼 선선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처럼 내가 아직 멍청했기 때문이었을까…     

어떠한 이유였던지 간에 나는, ‘그나마 언니는 믿을만하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물론 그러한 믿음은 조금 먼 훗날, 언니의 막말과 폭력적인 행동들로 인하여 매년 산산이 부서져 버리게 되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래도 언니는 믿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저 내가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내게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결코 그녀를 믿어서는 안 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내가 왜 그 건물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 것도 아닌데….”

“으이구, 이 바보야. 그거 내가 엄마하고 얘기해서 너한테 주자고 한 거야.”

“뭐?”

“우리가 알아보니까 그 건물이 있는 곳이 조만간 재개발 지역이 된대. 그러면 건물값도 당연히 뛰겠지? 그니까 이 언니가 너 돈 벌게 해 주려고 너한테 주자고 한 거라고.

“근데 엄마는 내 건물이 아니라 삼촌 거라고 했는데… 나중에 삼촌이 다시 가져갈 거라고 갖고만 있으라고 했어….”

“그건 당연하지. 삼촌은 계속 거기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니까. 근데 일단 네 명의로 되어있으니까. 삼촌이 나중에 다시 가져갈 때는 건물값이 오른 만큼 너에게 돈을 주고 가져가야지. 그게 맞지.”

“… 그래? 그게 가능해…?”

“당연하지! 그러라고 내가 너한테 명의를 주자고 적극 추천한 건데. 그리고…”     


언니의 말은 마치 나를 위하는 것처럼 들려서 정말 그런 건가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지만, 망망대해에 떠다니던 아주 작은 조각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처럼 일단 언니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      


“사실 지금 삼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아빠하고 막내 이모밖에 없어. 근데 막내 이모는 막내 이모부가 욕심이 많으니까. 막내 이모 앞으로 건물 명의를 했을 때 막내 이모부가 그걸 욕심내서 뺏어가려고 할까 봐 안된다 한 거지. 원래 막내 이모가 자기 앞으로 할까 하긴 했었어. 그 건물이 재개발 지역에 들어간다는 걸 막내 이모도 알고 있거든.”

“….”

“근데 그건 삼촌이 사업을 해야 하는 건물이니까. 결국 삼촌에게 돌려줘야 하잖아. 그래서 엄마가 막내 이모도 욕심이 있으니까 막내 이모한테는 절대 안 된다고 한 거고. 아빠는 삼촌을 불신하거든. 그니까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도와주니까. 네가 그 건물에 관련됐다는 걸 알면 너 때문에 아빠가 도와줄 테니까. 그래서 너한테 하자고 나랑 엄마랑 둘이 결정한 거야.

“…?”     


사실 그 당시 마지막 말이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나의 재산에 대한 결정을 그들이 했던 것이었을까?

그리고 나중에 깨닫고 보니, 나는 마치 ‘볼모’와도 같은 신세였던 것이다. 

공무원이었던 아빠와 막내 이모가 공무원 대출을 받아서 둘째 삼촌을 도와주기 위해 꾸며진, 어머니와 언니의 계략에 내가 철저히 이용당한 상황.      


그러나 그때 나는 이제 막 성년이 됐을 뿐이고, 성장 과정에서 내 가족들로부터 항상 ‘너는 틀렸어.’라고 지적받고 비난받아왔기 때문에. 가족들이 항상 가족 중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치켜세워준 언니의 말이 맞는 줄 착각했다.      


그래서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도 무의식 중에 ‘뭐지?’하는 의문이 문득문득 고개를 들었지만, 가족들이 항상 맞는 말만 한다고 세뇌했던 언니의 말이었으니. 그저 언니 말이 맞겠지… 하고 막연하게 믿어버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네 언니잖아. 이 언니가 동생인 너를 손해 보게 할 것 같아? 언니가 항상 너한테 맛있는 것도 해주고 얼마나 잘 보살펴 주는데. 맞지?”     


나를 위한다고 강조하는 언니의 말에 제대로 방심한 것이다.     

이 사태를 제대로 설명해 주길 바랐던 어머니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주로 어머니하고만 소통했던 아버지에게도 그 어떠한 내용도 물어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내 가족 중 유일하게 나를 위해주는 건 언니라고 믿었을 뿐이다.     


결국, 그렇게 말하며 내 한쪽 손을 살포시 잡아 오는 언니를 보며, 나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징그러워’라며 손을 빼냈고. 나의 어머니로 인해 철저하게 상처받았던 마음을 언니가 위로해 준다고 믿었기에…      


그렇게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절벽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더 깊이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끼리끼리라고 했던가. 어머니의 친구는 결국 어머니와 똑같았다.

월급을 올려준 학원 원장은 그걸 빌미로 내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일을 너무 많이 줘서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날도 점점 늘어났다. 

야근을 할 수밖에 없던 날에는 학원 원장이 밥을 사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급여를 추가해 주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몸이 안 좋아졌고, 병치레가 잦아졌으며, 어떤 날에는 아예 학원에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급격히 악화된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나의 어머니는 학원 원장을 탓하기 시작했다. 

정작 그 사태를 만든 사람은 본인이면서. 내 건강 문제를 모두 학원 원장 탓으로 돌리며, 어머니 자신은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결국 나는 급여가 오른 지 한두 달 만에 학원을 그만둬야만 했다.

점점 더 과해지는 업무량과 부당한 대우가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학원 원장으로부터 과다 업무를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 후임으로 왔던 사람들이 두 명 넘게 도망갔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누군가 새로 왔다고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긴 했지만, 그 사람도 도망갔다고 얼핏 들었던 것도 같다.      


특히, 당시 학원 원장은 40대의 미혼 남성이었는데, 새로 뽑으려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외모를 어지간히 따지기도 했다. 그렇게 외모 품평을 해놓고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모두 도망가자마자 자신이 외모 때문에 탈락시켰던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해 보라고 지시했던 모습이란.      


어쨌든 그렇게 아르바이트생들이 계속 바뀌다가, 결국 내가 혼자 일하던 보직에 총 3명의 직원을 앉히고 난 후에야 아르바이트생들이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 인간이 수아 네 안부 묻더라. 수아 네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 알바생이었는지 그제야 깨달은 것 같더만.”     

혀를 차며 학원 원장의 소식을 전해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소개해 준 아르바이트는 그저 나를 대하는 어머니와 닮았던 것 같다.     


매번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식인 나를 이용하고 언제든지 내팽개쳤던 어머니.      


그 학원에서도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음에도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4대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던 나는 그저 학원 원장이 시키는 대로 현금으로 급여를 받았기에. 그로 인해 나는 4대 보험의 소중함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여러모로 상처만 빼곡하게 남아 버린 첫 아르바이트 경험이었다.                






슬프게도.

이후에도 나의 어머니는 삼촌 건물에 얽힌 빚을 내게 갚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인들이 있는 곳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보냈다. 또한 자신이 소개해 준 아르바이트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 개인에게 필요한 부수적인 업무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떠맡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훗날.

내 가족들은 다 같이, ‘그래도 네가 네 엄마 덕분에 계속 알바도 하고 돈도 벌었잖아!’라며, 어머니의 행동이 내게 큰 이득이 된 것처럼 단체로 우기기를 시전 한다.    

 

그 당시에는 삼촌 건물이 주는 여러 문제들로 인해, 급급한 심정으로, 어머니가 소개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받아 일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저 가해자가 깔아놓은 판에서 끊임없이 착취당한 피해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몸 여기저기 질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 질병들이 지금까지도 내 삶에 크나큰 발목을 잡고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에….     


나는 피해자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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