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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키리 ENKIRIE Nov 17. 2024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다섯 번째 유성 한 조각


대학에서 우연히 들었던 가족상담 및 치료 수업은 의외로 내 인생에 여러모로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거기서 처음으로 마주한 이론적 개념들이 내 삶의 여러 문제를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희생양(Family's scapegoat)'


가족들이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희생양으로 이용하며, 여기서 이용당한 가족구성원이 가족희생양이라는 것이다.


브래드쇼(Bradshaw)는 가족희생양 역할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부모의 부모 역할(부모화된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구 또는 우상, 가족상담사, 완벽한 아이, 성자, 실패자, 가족 내 평화주의자, 광대, 문제아 등.

나는 그중에서도 실패자와 평화주의자, 성자, 부모화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가족희생양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미 가족 내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특정 인물을 한 명 지목하여 꾸준히 이용하고 착취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이용한 건 삼촌의 사업 문제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유치원 때부터 보호자가 없이 혼자 병원을 다녀야 했다.

태어나길 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로 인해 병원 신세가 잦았으며, 그때마다 나의 어머니는 그런 자신의 아이를 '성가시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의 필름을 담는 통은 검은색의 작은 원형 케이스였는데, 아마도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양이 그려질 것이다.


필름통에는 500원짜리 동전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500원으로 시내버스를 탈 수도 있었고, 초코파이 같은 간식을 사 먹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500원은 꽤 큰돈이었다. 

마치 쥐고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나의 어머니는 어린 나의 그러한 심리를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수아야. 네가 혼자 병원 갔다 오면, 그때마다 엄마가 500원씩 줄게."


유치원 아이들은 아직 한참이나 어리다. 나 또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아이였다. 한 번 본 드라마의 대사를 거의 다 외울 정도였으니까. 

나는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대를 살았고, 때때로 나의 부모는 그런 나의 기억력에 기대어 길도 무리 없이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는 나의 그런 장점을 자주 칭찬해 줬다. 그리고 보란 듯이 이용했다. 

내가 아플 때마다, 딱 한 번 병원에 같이 가준 이후에는 항상 혼자가게 유도했다.


어머니가 준 500원짜리 동전을 필름통에 소중히 담아서 병원에 다녀오는 것.

그게 어린 나의 삶에는 꽤 흥미로운 모험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또한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내게 500원을 주지 않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 혼자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대신 다른 강력한 보상을 받았다.


"우리 수아는 유치원 때부터 혼자서도 병원에 다닐 줄 알았어!"


언제부터인가 나의 어머니는 나에 대해 주변에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혼자 병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할 때마다, 나는 묘한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평소 어머니에게 칭찬을 거의 받지 못했던 어린아이에게는 그만큼 강력한 보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떠한 문제의식도 인지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이걸 자랑처럼 여겼고, 주변에 얘기하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철저히 세뇌당한 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잘못된 인식을 일깨워 준 건 나의 상담 선생님이었다.

내 말을 듣던 상담 선생님은 평소처럼 필기를 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이 필기를 하기 위해 쥐고 있던 볼펜을 힘주어 잡으며 언성을 높였다.


"그게 아동학대야! 어떤 엄마가 그렇게 어린애를 혼자 병원에 보내! 그냥 저가 편하려고 애를 돈으로 꼬시고 이용한 거잖아!"


처음이었다. 누군가 그게 문제라고 화를 내준 건.


그리고 불현듯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장면들이 있었다.


유치원생인 내가 혼자 병원에 갈 때마다, '혼왔니? 엄마는?' 하고 묻던 주변 어른들의 걱정 어린 음성들. 유독 나를 챙겨주고, 달콤한 사탕을 건네주셨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모습들.


나는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남들에게 사랑받은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어른으로서' 나를 진심으로 염려했던 것이다. 아직 보호자가 옆에 붙어 있어야만 했던 내게, 혹여 나쁜 일이라도 생길까 봐, '진짜 어른'으로서 살펴주었던 것이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당시 병원을 혼자 다니던 어린아이는 나 혼자 뿐이었다는 사실이...

모든 아이들의 옆에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등 보호자가 있었지만, 내게는 그 누구도 없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의 상담 선생님의 첫 분노를 마주했던 날.

그날, 나는 상담이 끝난 후. 운전을 하며 돌아오던 길에.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올 때마다, 운전대 위로 고개를 묻고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더란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

30년이 넘어서야 마주한 진실이... 그렇게 아팠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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