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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Jun 20. 2022

당신이 팔로우해 주어서 하추리에 왔습니다

인제, 여행의 움이 트다 1

하루는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 계정 가운데 '카페 하추리'가 있었다. 독특한 이름에 이끌려 곧바로 찾아가 보았다. 카페 하추리는 강원도 인제에 있는 마을 카페였다. 프로필에는 정원카페, 작은 도서관 자작나무숲•곰배령 옆 동네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피드엔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골 사진들이 많았고 ‘거리두기로 지친 지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당신을 인제의 산골마을로 초대한다.’는 알림글도 있었다.

 

내가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그것도 고즈넉한 곳을 말이다. 카페 사진들을 보자 그곳에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면서 산골의 분위기에 취해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작나무가 환상적으로 모여 있는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곁에 있고, 곰배령이 옆 동네라는 것으로도 하추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하추리 하추리라고 입에 올리면 입술에 꽃이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그러자 하추리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하추리’는 설악산 아래 맑은 물이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산골마을이라고 했다. 늘 설악산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내게 하추리는 더 이상 묻지도 따질 곳도 아니었다. 녹음이 짙은 산 아래에 살포시 날아와 앉아 있는 듯한 마을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가마솥에 불을 때 밥해 먹을 수 있다는 체험이 더욱 부채질했다.

  

혼자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고, 나 역시 혼자 다니려고 하고 있기에 하추리도 혼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으면 도쿄에서 올 남편과 여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의향을 물어보았다. 사이트에 들어가 살펴본 남편도 좋다고 했다. 그리하여 신속하게 하추리행이 결정되었다.

  

하추리는 계곡 아래에 가래나무가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추’ 자가 가래나무 추(楸)이다. 현지인과 귀촌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귀농귀촌 우수마을로 이름이 나 있고, 생태 체험이나 레포츠 등의 프로그램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꾸려나가는 공동체 마을이었다. 하지만 우리와 그곳의 일정이 맞지 않았다. 모두가 그림의 떡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프로그램 체험을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푹 빠졌다 오고 싶어 차선책을 궁리해 하추리와 가까운 숙소를 찾아보았다. 하추리도 10분 대, 자작나무숲, 곰배령을 비롯해 우리가 좋아하는 곳들이 30분 전후로 걸리는 곳을 찾았다. 그래서 2박 3일을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남편과 여행할 때 한 곳에서 이틀 이상을 머문 적이 없다. 이제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되도록 한 곳에 머물면서 그 장소와 시간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스타일로 바꿨지만 남편은 “왜 한 곳에서 자?”라고 물었다.

  



인제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간 곳은 당연히 하추리였다. 하추리에서는 카페로 직행했다. 나를 인제로 불러들인 주인공이니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키가 크고 늘씬한 청년이 주방에서 우리를 맞았다. 산골에 청년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든든했다.


하추리커피를 두 잔 시키고 누가 인스타를 하는지 물었다. 카페 직원이 3명이라면서 운영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했다. 순간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당사자를 만나 ‘당신이 팔로우해 주어서 이토록 먼 산골까지 오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1초도 걸리지 않는 클릭이 누군가의 여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까?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 벽에는 책이 가득 꽂힌 서가가 있고 오른쪽에는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자작나무로 만든 책장과 나무 테이블, 목공예품 등이 모두 마을 주민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그리신 듯한 작품집도 진열되어 있었는데 제목이 ‘하추리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하추리가 꽃 이름 같다고 생각한 것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가 보다.





남편과 나는 책장에서 가져온 나무 도감을 함께 보며 커피를 마셨다. 나뭇잎 모양과 이름을 보며 이 나무 이름이 그거였구나, 저 나무 이름이 이거구나 하면서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커피 맛이 어떠했는지 기억조차도 없는 것을 보면 기대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커피를 마신 우리는 청년에게 소개받은 하추리 자연휴양림으로 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쭉쭉 뻗은 적송과 처음 본 나무들과 들꽃들, 그제서 핀 복사꽃 등에서 위안을 받았다.  


인제 여행의 중심이자 기대를 품은 하추리 방문은 그렇게 심심하게 끝났다. 특별한 산골에서 그토록 밋밋한 시간을 보낼 줄은 미처 몰랐다. 마을 행사나 체험 프로그램 때 갔더라면 내용은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마을 안내를 받기만 했어도 어느 정도의 기대를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감성 가득한 글귀와 사진으로 나를 홀린 인스타그램 관리자를 만났더라면, 그 하나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되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행만큼 역동적인 것은 없다.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밋밋한 여행조차도 지나고 나면 특별한 시간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난 떠나기 전에 이미 하추리에서의 즐거움을  거의 다 누렸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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