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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Jun 08. 2022

혜옥아, 경옥아, 재식아!

10년 후 나는(2)

세런디피티78에서의 아쉬움을 보상받은 건 다름 아닌 노루목향기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여주에도 그런 깊은 산골이 있나 싶게 굽이굽이 돌아서 들어갔다. ‘와, 좋다 좋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계령이 거기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길 양쪽으로 쭉 펼쳐진 연둣빛 숲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신비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영화 속 한 장면 이었다. 오 가는 차들도 없어 아름다운 숲길을 혼자서 다 차지하며 달렸다.


  

그렇게 달리는 가운데 마을이 나타나고 내비게이션 안내가 끝나는 지점에서 차문을 열고 내리니 마당 한쪽에 있는 개 두 마리가 낯선 여행객을 향해 짖어댔다. 잠시 후 한 어르신이 오셨다. 심재식 어르신이었다. 유튜브 영상으로 먼저 뵈었기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르신이 반갑게 맞으며 안내해 주신 방에 짐을 내려놓고 곧바로 마당으로 나갔다. 역시 낯익은 이혜옥 어르신과 심재식 어르신이 앉아 가시가 가득 박힌 가지에서 두릅순과 엄나무순을 따고 계셨다.

  

노루목향기도 깊은 산골에 있어서 고즈넉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이었다. 노루목향기엔 세 어르신이 함께 산다. 심재식•이혜옥•이경옥 어르신으로 모두 70세 동갑내기 친구다.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그분들의 삶을 ‘세 할머니의 유쾌한 동거’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난 세 번이나 보았다. 처음엔 숙박권을 선물해준 이의 페이스북에 링크되어 있어서 예전에 우연히 보았고, 예약하고 나서 한 번, 여행 떠나기 전 날 또 한 번 보았다. 예습하느라 그랬다고 했더니, 이혜옥 어르신이 “그래서 조회 수가 많이 올라갔구나!” 하며 웃으셨다.  

  

2년 후면 60대에 진입하기 때문에 요즘 내 관심은 노년의 삶에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 분들의 삶은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져주었다. 배우자가 먼저 떠난 뒤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 과연 우리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하며 살까?


친정 엄마는 4년 전에 요양병원에, 시어머니는 올해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코로나로 면회마저 쉽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친정 엄마는 작년에 한 번, 며칠 전 어버이날을 맞아 겨우 면회했다. 다녀오면 더욱 마음이 아프고, 모셔오지 못하는 나를 자책도 하게 된다. 따라서 내 노년을 위해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건강이다. 시간 내어 열심히 걷고 영양제 챙겨 먹으면서 건강 챙기고, 노년에도 외롭지 않기 위해 하던 일 꾸준히 하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소망하듯 나도 잘 먹고 잘 움직이며 살다가 어느 날 자다가 조용히 떠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세 친구가 한 식구 되어 사는 노루목향기 어르신들의 삶은 아름다운 시니어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먼저 함께 살기 시작한 심재식 어르신과 이혜옥 어르신은 직장 동료로서 관리 이사와 공장장으로 일했다. 용인의 시골에서 자란 심재식 어르신은 시골살이를 꿈꾸었다. 노루목향기를 짓기 10여 년 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터를 알아보았다. 인연은 따로 있는지 계약 직전까지 갔던 곳들은 틀어지고 우연히 노루목향기 뒤에 있는 한 대학교수의 조형 작업실에 놀러 갔다가 땅을 사게 되었다. 두 어르신은 결혼하지 않았는데 때 마침 이혜옥 어르신의 어머님이 돌아가시어 함께 살기로 했다.

  


땅을 산 두 분은 교보문고로 가서 건축에 관한 책을 한 권 샀다. 거기에서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그 집을 설계한 이에게 연락해 의뢰했다. 방이 4개인 네모난 집의 노루목향기는 관리하기에 많이 커 보인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잔디마당은 원래 밭이었다. 중간에 집을 팔려고 했더니 잔디마당으로 해야 잘 팔린다는 소리 듣고 그리 바꾸었다. 너른 정원은 나무와 꽃이 단정하고 예쁘게 잘 가꾸어져 있다. 정원에 문외한이 내가 보기에도 적지 않은 노동력이 필요해 보였다. 시골에서 느긋하게 살려고 했는데 날마다 출퇴근하듯 노동 속에 산다고 하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르신들이 하는 강의나 행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서 산 이혜옥 어르신과 심재식 어르신이 집을 지어 둘이 살던 중에 합류한 이경옥 어르신은 직장에 가고 안 계셨다. 4월 말에 그만두신다고 했다. 이경옥 어르신은 분당에 살았는데 남편의 요양 차 그 마을에 왔다가 남편이 먼 길 떠나시고 펜션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함께 살게 됐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상하게 되는 일도 생기게 마련인데 어떻게 한 집에서 살 수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심재식 어르신이 그랬다. “살아보니 100가지 가운데 99가지가 부딪힌다.”라고. 직장에서 고충상담을 해 주면서 나름 배려 많고 자비가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동료들 사이에선 자신이 ‘전두환’이라 불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 받았다고 하셨다. 자신만 모르는 별명이었다면서 그때 많이 돌아보았다고 한다. 세 분은 겉으로 보기에도 성격이 많이 달라 보인다. 종교도 식성도 제각각인 개성 강한 분들이다. 한 번은 심재식 어르신이 도저히 함께 살기 힘들어서 언니에게 가서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언니는 “이것아, 혼자 살면 굶어 죽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심재식 어르신은 그때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정말로 괜찮아졌다.





세 어르신은 가사 노동을 분담하고 개인 공간과 공동의 공간을 명확히 구분한다. 그리고 개인 생활을 존중하는 동시에 함께 돌보며 살아가기로 했다. 나이 들어 요양원 들어가지 않게 하고, 아픈 사람 있으면 서로 돌보자는 것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 조리사 자격증도 딴 심재식 어르신은 주방을 맡고 있고, 몸집이 크고 성격도 걸걸하신 이혜옥 어르신은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잔디밭과 나무 관리를 맡고 있다. 이 날도 가시가 가득 박힌 두릅나무 가지와 엄나무 가지를 맨손으로 버리고 계셨다. 정원의 꽃들은 심재식 어르신과 이경옥 여사님 몫이다. 밥상을 차리는 건 심재식 어르신, 설거지는 이경옥 여사님이셨다. 숙박 손님 담당은 심재식 어르신이었다.

  

집안 곳곳에는 프랑스 자수가 놓인 장식품들과 서예 액자가 눈에 띄었다. 심재식 어르신 작품들이었다. 코로나가 오면서 하셨다고 한다. 프랑스 자수는 젊었을 때 잠깐 배운 것 밖에 없다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혜옥 어르신은 코로나 시기에 기타를 사셨다. 직장 다닐 때에도 노래 잘 부르는 사람으로 불리었다. 실제로는 듣지 못하고 영상으로만 보았다. 이경옥 어르신은 요리 쪽 일을 하신다.

  

노루목향기 어르신들을 더욱 존경하게 만든 일이 있다. 코로나 시기가 오면서 실내에서 하는 교육 활동들을 할 수 없게 되자 노루목향기 마당에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하시도록 한 것이다. 이혜옥 어르신이 차를 가지고 나가 칠십, 팔십 대 어르신들을 집집마다 다니며 모셔와 마당에서 그림 그리기 활동을 하시도록 했다. 마당은 난타와 천연염색 등의 교육 공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시공간이 되기도 하며 직장인들의 워크숍이나 모임 공간으로 쓰인다. 이토록 세련된 모습을 보고 어찌 이 분들을 만나 뵙고 싶지 않겠는가.

  

어느 책 제목인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 겨?’의 버전이다. 어르신 자신들뿐만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과도 연대해 ‘노인이 살기 좋은, 노인을 위한 마을’로 만들어가는 이 분들의 개방적인 삶의 태도가 존경스럽다. 종종 귀촌한 이들이 마을의 텃세 때문에 도시로 되돌아온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 분들의 경우는 오히려 마을 분위기를 바꾸어 놓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으로 달력까지 만들었지만 색연필을 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힘든 일을 많이 하신다는 이혜옥 어르신은 저녁 식사 후에 거실에 누워 졸음에 겨워하다가도 중간중간 끼어들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이경옥 어르신은 내가 선물로 드린 책을 한참 펼쳐보셨다.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심재식 어르신은 처음 뵈었을 때엔 수줍음 타는지 말을 많이 안 하시고 주로 이혜옥 어르신이 내 질문에 답해주셨다. 예를 들면 어떻게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여주에 터를 잡게 되었는지, 펀딩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등이었다. 그런데 저녁엔 심재식 어르신이 조곤조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와 시간을 보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어르신들이 8시에 주무신다는 것이었다.

  

우렁찬 닭 울음소리가 새벽 4시경부터 시작되었다. 7시 40분경에 아침 식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눈을 떴을 때 한 시간 정도 늦은 줄 알고 후다닥 일어나 주방으로 뛰어갔더니 다행히 식사 전이었다. 이혜옥 어르신은 치과에 가 안 계시고, 이경옥 어르신은 머리에 롤을 말고 있고, 심재식 어르신이 밥상을 마저 차리고 계셨다. 전날 저녁엔 내가 좋아하는 두릅순과 엄나무 순, 버섯 등의 채소 반찬들이 나왔었고, 아침엔 생주스와 샐러드, 과일 등이 나왔다.

  

이경옥 어르신도 출근하고 나자 심재식 어르신 혼자 남았다. 닭장에 가서 모이 주시는 것도 구경하고 이웃분이 타 온 믹스 커피를 함께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한쪽에서 조용히 마시고 짐을 챙겼다.


캐리어를 챙겨 방을 나오자 주방에 계시던 심재식 어르신이 거실로 불러 앉혔다. 그리고선 혹시 어르신들에게 고쳐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물으셨다. “아뇨, 전혀요. 배울 점만 가득 안고 돌아갑니다. 올 때도 그랬지만 새로운 노년의 삶을 제시해주셨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친구가 모여 산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일 텐데 이렇게 잘 사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내 말에 어르신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셨다. 정말 그럴까? 나이 들수록 더욱 고집스러워져서 자신의 것을 주장하고 앞세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심재식 어르신이 작은 상자 두 개를 내미셨다. 국내산 무형광 소창 행주와 무명천에 라벤더 꽃을 수놓은 덮개였다. 난 공짜로 받을 수 없다면서 얼른 지갑을 꺼내 5만 원을 드렸다. 사양하시는 어르신에게 프랑스 자수가 얼마나 비싼지는 사 봐서 알지만 현금이 그것밖에 없어서 드리는 것이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받으십사 간곡히 부탁드렸다. 둘이 소파에 앉아 두런두런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송을 보고 비슷한 삶을 꾸리시려는 분들이 찾아오시곤 한단다. 심재식 어르신은 한 명 더 들어와 4명이 살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노년층이 증가하는 요즘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대안을 보여주신 세 어르신들이 참 멋지다. 내 일처럼 든든하다.     


남이 한 일을 따라 하기는 다. 하지만 ‘처음’을 만들어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본부인과 후처가 함께 살거나 사돈이 한 집에 살거나 자매가 함께 사는 등의 특별한 가족 형태를 보기는 했지만 동갑내기 세 친구가 가족이 되어 사는 경우는 노루목향기 어르신들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70살 어르신들이 재식아, 혜옥아, 경옥아 하며 지내시는 모습이 낯설지만 보기 좋았다. 이제 인생 후배인 우리들은 그분들의 삶에서 힌트를 얻어 곁가지 삶의 형태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롭고도 큰 그림을 그려주신 심재식•이혜옥•이경옥 어르신들에게 경외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행주 상자 안에는 세 어르신이 다정하게 앉아 있는 그림과 함께 편지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렸다.   

   

노루목향기는 고령화시대를 맞아

우리는 노후에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노인 돌봄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할매들이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하여

주변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여행 참 맛있다. 역시 사람 여행이다.    

 


노루목향기에서 먹은 건강  저녁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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