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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Jul 09. 2022

그녀의 시골집 '파랑새'

파랑새는 분명 그녀의 슈필라움이었다. ‘슈필라움’이란 놀이와 공간이 합쳐진 독일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여유 공간이라 할 수 있다고 문화심리학자이자 김정운이 말했다. 좀 더 풀이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며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한다고 한다.

  

50대에 돌연 교수직을 그만두고 교토의 한 미술 대학에 들어가 젊은 친구들과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온 김정운은 여수 바닷가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공간 슈필라움을 만든 것이다.

  

김정운이 여수의 남쪽 섬에서 쓰러져 가는 미역 창고를 개조해 슈필라움을 마련했다면, 그녀는 화성의 쓰러져가는 한 시골집을 개조해 꿈에도 그리던 슈필라움을 마련했다. 우아한 외모에 따스한 성품을 지닌 그녀가 사랑한 것은 차와 책과 예술이었다. 공간을 마련해서 하고 싶었던 것은 차를 마시는 것과 독서모임이었다.

  

그녀는 수원 행궁동의 골목 책방 ‘브로콜리 숲’에서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 북토크할 때 참여해 나와 인연이 되었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책 북토크에도 와 주었지만 그녀가 시골집을 마련했을 때까지 딱 한 번 만났다. 주로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브로콜리 숲에서 인연이 된 세 사람을 화성의 시골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수리 과정을 보며 몹시 궁금하던 차였다. 폐가였던 집을 아는 동생과 4년 간 빌려 쓰기로 하고 내부만 수리했다. 따라서 외형은 시골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오래된 모습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동공에 지진이 날 정도이다. 단아하고 세련된 그녀의 미적 감각이 집안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주방과 차 마시는 방, 음악방, 모임방 등으로 꾸며져 있다. 외양간은 작은 테이블과 화분들로 꾸며 놓고 노을방이라 부른다. 마당에는 불멍할 수 있도록 벽돌로 만들어 놓았다. 시골집은 소박하면서 고급스럽다. 한적하고 조용해서 우리들 말소리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마치 외갓집에 놀러 간 느낌이었다. 방 하나를 빌려서 읽고 쓰는 공간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도 했다. 나도 언젠가부터 나의 슈필라움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공간을 마련하면 쓰겠다고 전부터 준비해 둔 ‘파랑새’로 이름 짓고 자신의 슈필라움으로 탄생시켰다. 전부터 하고 싶었던 독서모임도 현재 3팀이나 만들어졌다. 파랑새가 생긴 뒤로 그녀는 행복에 겨워한다. 논과 산이 보이는 시골길로 들어서면 기운이 난다 하고, 자신이 꿈꾸던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도 한다. 주말엔 남편과 함께 손바닥 텃밭을 일구며 재미난 소꼽놀이인 양 시골집을 오간다. 그녀는 그 공간을 취향이 같은 이들과 나누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나도 하루 빌려 쓰기로 했다. 비록 4시간이지만 예약하고 나자 들뜨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그 공간에서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약간 무서울 것도 같고 기대도 되었다.


 그런데 무엇을 준비해 가면 좋을지 고민이 됐다. 카페도 아니고 식당도 아니며 숙소도 아니지 않는가. 카페라면 차를 주문해 놓고 창밖 풍경이나 카페 안을 둘러보고 눈치 채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당이라면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주문하고, 기다리고, 드디어 나온 음식을 즐겁게 먹을 것이다. 숙소라면 주변 산책도 하고, 음악도 듣고, 가져간 책을 읽다가 노트에 끼적거리기도 할 것이다.

  

쉬이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거꾸로 상상해보았다. 만약 시골에 집을 마련하고 산다면 오후 시간에 무얼 하고 있을까라고. 살아보지 않았으니 내가 꿈꾸는 모습이 그려진다. 바보 같이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고 지금의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차를 마시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겠지. 결국은 어떤 책을 가져갈지 고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책 저 책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일반 책 한 권과 그림책 2권을 골랐다. 인제 여행 때 머문 펜션 사장님(명상 수련인)이 선물로 준 《오래된 질문》과 소풍가는 기분으로 고른 《14마리의 봄 소풍》과 《14마리의 이사》였다. 그리고 간식을 조금 챙겼다. 

  

그런데 당일 아침 갑작스레 천둥이 쳤다. 요즘 봄 가뭄이라 할 정도로 맑은 날이 계속되었고 전날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밖을 종종 내다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있었다.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오히려 천둥소리가 커졌다. 속으로 어찌할 바 몰라했다. 같은 마음이었는지 파랑새 주인인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괜찮겠느냐고, 혼자 있을 거라 걱정된다고, 그러니 취소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천둥소리도 잦아들고 하늘도 개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얼른 날씨 검색을 해 보니 오후에 비가 없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하면서 간다고 당당히 말했다. 다행히 지나가는 비였는지 출발할 때쯤에는 완전히 개어 해가 나왔다.

  

콧노래 부르며 상기된 마음으로 상기리에 있는 파랑새에 가니 그녀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공간 사용 안내와 문단속 방법까지 알려 준 뒤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아 차 한 잔이라도 같이 마시자고 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2시간을 훌쩍 넘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슈필라움이자 꿈의 공간인 파랑새를 만드는 데 내가 작은 힘이나마 보태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는데 이번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평범한 엄마에서 작가로 변신해 작은 책방을 순회하며 꿈을 이뤄나가는 내 모습이 인상 깊었단다. 그리고 브로콜리 숲에서 북토크할 때 내 얼굴에서 행복이 가득해 보였단다.      


그 뒤로도 꿈을 멈추지 않고 연속해서 책을 내고 이루시는 모습에서 큰 용기 얻어 저 역시 긍정마인드로 꾸준하게 노력한 결과 파랑새를 이루게 했네요. 한참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다며 끝없이 고민하고 정처 없이 방황하던 시기에 브로콜리 숲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열린 샘의 북토크라 제 가슴에 불을 활활 지폈어요.     

  

그녀가 총총히 사라지고 난 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혼자 남은 나는 그냥 거실에서 햇살이 내려앉은 마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실내에만 앉아 있기엔 좀 서늘하고 햇빛을 쏘고 싶었지만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나설 수가 없었다. 오롯이 혼자 있으니 나도 그 고즈넉함 속에서 화분 속 식물인 듯 가만히 있었다. 몇 년 만에 보는 것인지 제비가 날아들고 까치도 드나들었다. 마당으로 나와 한가로이 거니는데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나무 대문을 열어젖히고 중정의 의자에 앉았다. 가져온 책 따위는 잊기로 했다. 아니 그런 공간에서 책을 읽는 것은 나에 대한, 공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최대한 오감을 열어 놓고 보고 듣고 느끼기로 했다. 그 순간 보고 들은 것들이다.


바람이 분다.

산이 보인다.

수레국화가 피어 있다.

풀이 흔들린다.

참새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농기계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그러는 가운데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할 정도로 바람이 부는 앞에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영화 초반에 졸 듯, 소파에 앉아 TV 보다 잠에 빠져들 듯 졸았다.

  

한참을 그리 앉아 있었더니 적적함이 몰려왔다. 시골 타령하는 내가 적적함인지 외로움인지에 몰린 느낌이라니 시골살이는 내 이상에 불과했던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30분 정도 남았을 때 불현듯 상추를 뜯어가도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손바닥 텃밭에서 상추를 뜯고, 둑에 나 있는 미나리를 자르는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잠시 전의 적적함이나 외로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공간이라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아니다. 그때 내 마음에 약간의 구름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춘천 산골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던가.

  

다행히도 마지막의 그 생기가 이 날의 역할을 다 했다. 예약 종료 시간인 4시에 열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풀이 가득한 둑을 총총히 걸어 나왔다. 지금 생각하니 그녀의 슈필라움을 내 슈필라움으로 잠시 빌려 쓴, 한적하고도 약간 고독했던 그 시간이 파랑새 마당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그녀는 파랑새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다른 이들과 공간을 십분 활용하여 재미난 일들을 꾀하고 싶어 한다. 가끔 나처럼 공간을 빌려서 쓰는 사람이 있지만 주로 그녀가 좋아하는 모임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골집을 만나기 전에 계약하려고 했던 공간도 어떤 수익을 내는 공간이 아닌 소모임 공간으로 쓰려고 했단다. 생활비 절약해서 월세 내고 독서 모임 공간으로 쓰고 싶었다는 말에 놀랐다. 오늘의 파랑새를 탄생시킨 원동력일 것이다. 누구나 꿈꾸지만 실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나온 다음 문장이 그녀의 마음 아닐까.       


양말 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박완서 작가의 글은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으로 공헌하고 있고, 파랑새는 공간을 함께 쓰는 일로, 누군가에게 꿈을 실현하는 용기를 주는 일로 공헌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평범한 엄마’였다고 했는데 오랜 시간 학교 밖 선생이었다는 것을 몰랐기에 책방을 탐방하고 책까지 낸 것에 더 자극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허전해서 더욱 갈망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매던 그 시절을 이제는 파랑새에서 여유롭게 회상하곤 하는 그녀가 참 근사하다.   


그런데 정말로 평범한 엄마였던 그녀가 감히 따라 하기 힘든 그녀의 공간을 만든 일이 지금은 거꾸로 나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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