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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Jul 06. 2022

호숫가 작업실과 할머니

두 은행에서 볼 일을 마치고 나자 오후 2시였다. 간단한 일이라서 금방 끝날 줄 알고 카페 갈 준비를 다 해왔는데 망설여졌다. ‘기껏 두 어 시간 있다 오려고 그 먼 데까지 가?’ 내 기준으로 볼 때 자동차로 40분 거리면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다른 날에 갈까 했지만 고민도 잠시, 내비게이션 앱을 열고 달리기 시작했다.

  

두 도시를 지나 세 번째 도시에 위치한 호숫가의 무인카페에 닿았다. 1층에도 2층에도 손님이 있었다.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자동판매기에서 사 온 아이스 복숭아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다른 자리엔 모녀 사이로 보이는 이들과 부부로 보이는 이들이 각각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페 안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통창으로 호수와 호수 너머에 있는 낮은 산이 보였다. 창가엔 버드나무가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거리고 호수 위엔 파문이 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운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가져온 책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소설 《할머니와 나의 3천 엔》과 그림책 《레미 할머니의 서랍》 《지금이 딱 좋아》였다. 모두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지금 누가 나한테 책을 팔고 싶다면 ‘할머니’가 들어 가 있는 제목만 보여주어도 된다. 아니면 할머니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말 한마디만 해도 된다. 그 정도로 나는 요즘 할머니란 단어에 바로 꽂힌다. 머지않아 할머니가 될 거라서 그런가. 예전이라면 설마 내가 ‘할머니’가 될 거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거니와 부정을 먼저 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대명사가 아니니까. 앞서 ‘아줌마’란 말이 그러했다. 하지만 내가 그 싫던 아줌마가 되고부터는 달라졌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다 날려버리고 아줌마의 힘이 사회와 가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 자부하니 어깨에 뽕이 가득 들어가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선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강한 에너지의 상징으로 여겨져 자연스레 나를 아줌마의 대열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이제 할머니 차례이다. 할머니라면 지혜와 인자함과 포용력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혼자 정의한다.  

  

어제 배송되어 아직 펼쳐보지 못한 그림책을 먼저 읽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틀어 올리고 빨간 스웨터와 노란 바탕에 오렌지 줄무늬의 긴치마를 입은 할머니가 민트색 3단 서랍장을 열고 있는 뒷모습이 무척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레미 할머니의 서랍》이다. 사람의 뒷모습은 그 무엇보다 진실되고 숨길 수 없다고 한다. 할머니의 뒤표지 그림만큼이나 제목도 호기심을 많이 자극했다.

  

맨 아래 서랍에는 이미 자신의 역할이 끝난 물건들이 들어 있다. 초콜릿이 들어 있던 작은 상자, 쿠키가 들어 있던 깡통과 사탕이 들어 있던 유리병, 꽃다발을 묶었던 리본, 소매를 푼 털실 뭉치 등이다. 물건들은 서랍이 열릴 때마다 할머니에게 꺼내어져 다른 것으로 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할 일을 다 했다고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에요.

아주 멋진 새로운 역할이 있을 거예요.      

  

문장이 마음에 콕 와닿았다. 나는 지금 50대 후반에 있으니 곧 빈병 하나가 또 생긴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30대의 병, 40대의 병이라고 하겠는데 지금은 50대의 병이라기보다는 ‘젊음’이 다 쓰이고 남은 병이란 생각이다. 50대는 완숙미가 발해지는 시기인 반면 60대는 쇠해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할머니란 말이 좋아졌다고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피할 수 없는 거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애정도 생긴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바로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50대 중반쯤에서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머릿속 세포들이 긍정적인 할머니 상을 그려내고 있었을 것이다.

  

창밖 풍경을 보면서, 젊음이 다 쓰이고 비워진 병에 무엇을 채워 넣으면 좋을지 생각의 배를 띄웠다. 새로운 역할로는 무엇이 좋을까? 이번에 여행을 시작하면서 어떤 목적을 만들지 말자고 했지만 어쩌면 끝에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기대감이 생겼다. 목적이 없다고 아무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고 가만히 있을수록 생각의 별은 더 많이 돋으니까.


여기서 세상 다 보인다.

여 다 있는데, 뭣 하러 밖에를 나가….     


 애순 할머니가 내려져 있는 베란다 커튼을 일부 젖혀 놓고 밖을 향해 하는 혼잣말이다. 집안에 있는 물건들에게 사람 이름들을 지어주고 그들에게도 말 거는 할머니다. 참 다정한 할머니다. 실은 혼자 사는 삶이 많이 외로우신 거다.

  

커튼이 활짝 열려 있던 날 할머니는 차를 만들어 보온병에 담아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지나가는 이웃들을 불러 따스한 차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고 나자 애순 할머니에겐 세상이 달라 보인다.        

  

세상에! 하늘 파랑이 이랬나….

이 나이 먹도록 태어나 처음 보는 파랑이네.           

  

이 날 나도 창밖으로 보이는 버드나무꽃을 처음 보았다. 아카시아꽃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하얬다. 하지만 아카시아꽃은 탐스러운데 버드나무꽃은 길쭉했다. 이 나이 먹도록 늘어진 잎만 보았지 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애순 할머니가 밖으로 나오자 하늘색이 달리 보인 것처럼 밖으로 나도 요즘 밖으로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만난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던 할머니가 밖의 의자에 앉아 “아이고, 딱 좋네. 여기가 딱 좋아. 지금이 딱 좋네.”한다. 카페 안에 비어 있던 테이블에 젊은 커플이 와서 말소리가 더 많아졌지만 창밖의 고즈넉한 풍경이 그것들을 모두 품어버린다. 나는 애순 할머니처럼 속으로 좋다, 참 좋다고 되뇐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하나 둘 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그제야 카페 안을 자세히 본다. 테이블은 전부 7개에 안락의자가 하나 있다. 모두 창가에 놓여 있고 가운데는 텅 비워두었다. 2개 정도는 더 두어도 될 만한 공간이다. 1층 밖에도 테이블이 있다. 큰 화분이 3개, 작은 화분이 3개. 아래층에는 7개가 있다. 콘센트도 여러 개 설치해 두었고, 와이파이도 있다. 홀은 물론 화장실도 깔끔하고 쾌적하다. 주차장도 넓다. 하지만 외형만 보았을 때는 들어갈 생각이 들지 않는 조립식 건물이다. 작은 회색 건물로서는 마음을 끄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안에 그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그러잖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품고 있어 평온한데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여백을 많이 두어 마음이 여유로웠다.

  

1시간 정도 아름다운 공간을 온전히 나 혼자 누렸다. CC카메라가 보였지만 사람들이 없으니 난 산만해졌다. 모든 테이블마다 앉아 뷰를 살펴보고 안락의자에도 앉아 어느 자리가 좋은지 보았다. 다음에 면 어디에 앉아 노트북 꺼내 놓고 글을 쓰고 책을 읽을지 머리에 그렸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와 나의 3천엔》을 읽었다. 내가 그곳에 있는 시간만큼은 호수가 보이는 우리 집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런 행복을 누리고 있자니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나누어 쓸 수 있게 한 주인이 누구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호숫가에 집이나 작업실을 마련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없었다’라고 한 것은 이 공간을 만나고 나서 앞으로는 꾸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이런 공간을 지어 다른 이들과 풍경과 시간을 넘어 작업실로도 나눌 수 있게 해 준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

  

앞으로 종종 내 멋진 작업실이 되어 줄 이 카페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TV에 방송된 영상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30년 넘게 맨손으로 아름다운 들꽃 정원을 가꾸시는 80대 할머니 이야기였다. 여행도 마다 하고 뜰에서 꽃 가꾸는 데 시간을 다 쓰는 할머니는 꽃을 닮아 있었다. 흥남두부에서 배를 타고 내려왔다는 할머니는 어릴 적 고향에서 본 들꽃들을 가꾸시며 향수를 달랬다. 정원이 더 아름다웠던 것은 바로 호숫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원도 할머니도 호수도 보고 싶어 찾아갔다. 정원은 코로나 때문에 개방하지 않는다는 팻말이 있었지만 정원은 밖에서도 다 보였다. 그런데 정원엔 풀이 가득했고, 할머니는 보이지도 않았다. 옆 식당에 가서 물어보니 역시나 편찮으시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정원 가까이에 이 무인 카페가 있다. 그날은 살짝 안을 살펴보기만 하고 나왔었다.

  

이번에 갔을 때도 할머니의 정원에 가 보았으나 달라진 점이 없었다. 병원에라도 계신 것인가 걱정이 됐다. 뒷산에 피어 있는 아카시아 꽃들이 쓸쓸해 보인 건 순전히 기분 탓이었다. 다음에 가면 나는 또 가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카페는 온통 ‘할머니’와 연관이 있다. 조용한 말씨와 태도 그리고 고운 얼굴이 선녀를 떠올리게 하는 정원 가꾸는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고, 카페에 가져간 책도 모두 할머니가 나오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돌아올 때는 차가 밀려 1시간 20분 정도나 걸렸다. 그러나 아무리 길이 막혀도 짜증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딸아이 먹일 카레를 만드는데 나도 모르게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라는 말이 나왔다.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해동이 덜 된 소고기를 써는데그 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렸다. 아름다운 풍경이 몸을 거쳐 삶 속까지 스며들었던 것일까. 멋진 작업실 하나를 발견한 이유일까.

  

아, 호숫가 작업실을 너무 비워두었네. 어서 가 봐야지. 그래서 ‘아내의 정원’ 할머니가 계신지도 보고, 할머니 된 내 미래 모습도 그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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